“한 특정국가의 이기주의와 위험한 결정은 국제사회에 엄청난 문제를 일으킨다.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제(MD)가 그렇다. 폴란드와 체코에 세워질 미국MD의 전파방해를 위해 레이더기지를 칼리닌그라드에 세우고 필요하다면 해군함대도 동원할 것이다.”
2008년 11월5일, 그러니까 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 탄생과 함께 ‘미국의 역사를 새로 썼다’는 대선 다음날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한 국정연설 내용이다.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에 대한 인사도 생략됐다. 그리고 대뜸 미국에 대한 비난의 날만 세웠다.
전례가 없던 일이다. 과거 동서냉전시절 소련의 강경파들도 미국 대통령이 새로 선출되면 최소 6개월간은 말을 삼갔다. 그 금도가 지켜지지 않았다. 연설 날짜부터가 그렇다. 본래는 10월로 잡혀 있었다. 그걸 미국 대통령 선거 다음날로 고쳐 잡은 것이다.
분명히 저의가 엿보이는 연설이다. 메드베데프가 국정연설에서도 직설적으로 말했듯이 미국 독주시대는 끝났다는 선언에, 정면도전이다. 오바마 당선자로서는 뺨을 맞은 셈이다. 그 발언은 물러나는 부시를 겨냥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당선되면 6개월도 못가 오마바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케 될 것이다.” 바이든 부통령 당선자가 선거유세 중에 한 말이다. 그 발언이 사실상 예언이 돼 적중한 것이다. 무엇을 말하나. 국제사회의 차가운 현실은 오바마 시대가 결코 평화의 시대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미국은 머지않아 또 한 차례의 전쟁에 개입할 수밖에 없다.” 퍽 오래 전부터 워싱턴에 나돌고 있는 말이다. 네오콘의 주장이 아니다.
이란의 핵무장 저지에 외교적 노력을 않겠다는 게 아니다. 외교노력은 외교노력 대로 기울인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그리고 남은 정책적 선택도 별로 없다.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당색을 초월해 이런 방향으로 워싱턴의 컨센서스가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말하자면 이란 핵시설에 대한 미국의 공격은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 타이밍은 오바마 행정부 출범 후 얼마 안 되는 시점이 된다는 것이다.
파키스탄 사태는 상황 진전에 따라 더 위험할 수도 있다. ‘근본주의 회교 무장세력의 핵무기 보유’라는 상황이 이란보다 파키스탄을 통해서 먼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다.
국가재정은 이미 파탄이 났다. 정부는 유명무실한 존재가 됐다. 그 가운데 군부는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하고 있다. 명색이 미국의 맹방이다. 그러나 미군 헬기가 탈레반이나, 알카에다를 쫓아 영공을 침입하면 파키스탄군은 주저치 않고 격추한다.
파키스탄 군부 내에 탈레반 동조자가 하나 둘이 아니다. 그 파키스탄 군부가 어느 날 돌아선다. 그 경우 ‘파키스탄의 핵’은 ‘이슬람이스트의 핵’으로 바뀔 수도 있다. 뒤따르는 것은 세계적 전쟁이다. 문명의 충돌을 방불케 하는…. 이어지는 악몽의 시나리오다.
오바마 행정부가 테러전쟁에서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은 이라크가 아니다. 아프가니스탄이다. 이 아프간 문제는 파키스탄 사태와 맞물려 있다. 오바마의 공언대로 전선이 파키스탄으로 확대될 때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오바마 행정부에 있어 자칫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전쟁’ 같이 될 수도 있다는 게 뉴스위크의 지적이다.
한 마디로 난제 중의 난제가 중동사태다. 이스라엘에서 시리아, 이라크, 레바논, 그리고 이란으로 이어지는 이 지역은 곳곳이 지뢰밭이다.
외교를 통한 평화정책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꿈에 가깝다. 현실주의자들의 냉정한 분석은 이 지역에서 미국은 앞으로 최소한 한두 차례의 전쟁에 휘말릴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때문에 일부에서 진작부터 제기되어 온 전망은 오바마 당선자는 본인의 희망과 관계없이 ‘전시(戰時)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전쟁은 워싱턴에서만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테헤란이나, 또 모스크바에서의 결정이 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으니까.
오바마 행정부가 맞은 외교적 도전은 중동문제뿐이 아니다. 글로벌한 파워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과의 관계 설정도 난제다. 북한의 핵 도전도 만만치 않은 숙제다. 그리고 마약 카르텔의 준동으로 실패한 국가가 될 수도 있는 멕시코도 상당한 외교적 부담이 될 수 있다.
오바마 시대를 맞아 가장 먼저 도전장을 낸 세력은 푸틴의 권위주의 체제 러시아다.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그 첫 단추가 앞으로 ‘지도자로서 오바마의 기질’과 해외정책의 방향성을 가늠케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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