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붐은“캘리포이아 드림”모체
청교도적“아메리칸 드림”변질 초래
미국 이민선조들과 그 후손들이 키워 논 청교도적 “아메리칸 드림”은 평화롭고 자유스러운 환경에서 열심히 일해서 얻어지는 대가를 점차적으로 조금씩 쌓아 올리면 물질적인 부는 필연적으로 온다는,“근면 성실”을 기반으로 하는 개념이었는데, “캘리포니아 황금 붐”이 불면서 생긴 Forty-niners의 일확천금, 투기, 행운을 기조로 하는 사조가 미국사회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아메리칸 드림”의 기본이 흔들리게 되었지만, 미국사회에서는 이 두 시대사조(時代思潮)를 자연스럽게 잘 받아드려서 신시대의 조화된 아메리칸 드림을 자아냈다. 청교도적 사조를 “구 아메리칸 드림(Old American Dream)” 이라고 호칭하게 되었고, Forty-niner의 사조가 편입된 새로운 흐름을 “신 아메리칸 드림(New American Dream)”이라고 칭하게 되었다. 현재 항간에서 일컫는 아메리칸 드림은 신 아메리칸 드림이다.
아메리칸 드림이 청교도적인 신조(信條)와, 극단적으로 야생적인“캘리포니아 드림”의 결합된 감정으로 자리 잡으면서 미국 사람들의 생활신조도 대폭 진취적인 방향으로 변화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캘리포니아가 신 아메리칸 드림을 빚어낸 고장이기 때문에 캘리포니아를 논하려면 의당 아메리칸 드림의 골자를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 이민1세들은 모두 일종의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에 이주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러한 관찰은 우리 실생활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필요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메리칸 드림은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 미국이라는 환경에서 전 국민이 용
기를 갖고 열심히 일을 하여 생활 목표를 달성 한다는 신조 이다. 이러한 신조는 제도화 되어 있는 사회 계급에 의존하지 않고, 단지 본인의 능력과 합당한 작업윤리(work ethic)를 통해서 성취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조는 다음과 같은 실행 목표를 갖고 있다. (1) 모국에서 얻을 수 있는 물질적인 재산보다 훨씬 웃도는 재산을 모을 수 있다. (2) 자제들이 보다 앞서는 교육을 받게 하여, 원하는 직업 전선에 서게 하며, 발전을 보장 받게 한다. (3) 사회적 위치나, 사회계급제도나, 종교, 인종, 또는 문화적인 소수민족으로서의 차별대우를 받지 않으면서 발전할 수 있다고 요약 할 수 있다.
“캘리포니아 드림”은 역사의 흐름과 같이 농사의 현대화를 실현할 수많은 농군을 유치했고, 항공 산업, 영화 산업, 원유 채굴 산업을 번창케 했으며 세계적인 컴퓨터 산업 중심지인 실리콘밸리의 출현을 가능케 했다.
캘리포니아의 산업발전은 49er들의 줄기찬 중노동으로 기초가 경고하게 다져졌지만, 그 사람들의 노고와 그 세계의 난맥상은 상식을 훨씬 벗어나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금광을 처음 발견한 수터(Sutte)r는 본인의 토지에서는 별로 소득을 올리지 못하고, 인근 토지에서 금맥을 찾아야 하는 어려움에 봉착하였을 뿐만 아니라 예하의 일꾼들이 모두 사직을 하고 금광꾼(gold-seeker)으로 돌변하는 이변이 생겨, 본연의 사업을 망치고 고통에 쌓인 여생을 보내게 되었다.
중남부는 카우보이 문화의 발상지로 한때 살벌하고 무법천지로 이름이 났었지만, 캘리포니아의 49er세계도 못지 안는 야생적인 면이 있었다. 훗날 이러한 양상은 영화의 테마로 곧잘 채택이 되었는데, 카우보이 문화는 서부활극 (Western Movie)으로, 49er 세계는 인디안 영화로 묘사가 됐다.
캘리포니아 황금붐이 세계적인 경사로 떠오르자, 미국 동부에서도 임파가 몰려들고, 유럽, 남미, 아시아 등지에서도 일확천금을 꿈꾸는 금광꾼이 물밀 듯이 몰려들었다.
샌프란시스코는 조그마한 어촌이었는데 황금 발견의 소식을 듣고 너도 나도 배와 사업체를 버리고 쌔크라멘토로 올라가는 현상이 벌어져 동네는 폐허가 되고, 항구에는 주인 없는 배가 즐빗 하게 널려 있었다. 49er시대가 본격적으로 전개 되면서 샌프란시스코는 해로(海路)로 오는 49er들의 기항지가 되었고, 새크라멘토에 생필품과 금광 용구를 공급을 하여야 했기 때문에 번화가로 돌변했다.
그러나 항구에는 폐기된 선박이 부지기수로 많았다는 것이다. 외지에서 보급물자를 싣고 온 배의 선원들이 하역 일을 마치고는 모두 금광을 따라서 도망을 갖기 때문에 그러한 현상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이 버려진 선박은 창고나, 임시 숙소, 간이상점 등으로 활용됐으며 경찰의 유치장으로 쓰던 선박도 있다고 한다. 샌프란시스코의 인구는 1848년에는 불과 1,000여명밖에 않되었는데, 1850년까지 2년 사이에 25,000정도로 증가했다.
급작스러운 인구의 증가로 인근 도시와의 도로도 적절치 않았고, 가옥의 부족으로 주민들은 버리고 간 주인 없는 선박에서 객실을 뜯어다가 임시거처로 삼았으며 천막도 수없이 등장했다.
새크라멘토와 샌프란시스코는 금광붐으로 생긴 전형적인 대도시이다. 당시 금광을 따라 모여든 인구의 약 반은 동부에서 온 미국 사람들이었고, 나머지 반은 외국에서 특별히 금광을 찾아서 모여든 이민이었다. 이 금광꾼들은 지금과 달라서, 교통수단이 빈약할 때었기 때문에 금광 터에 도착하는데 따른 위험과 어려움을 감수하면서 몇 달 동안 여행 끝에 도착했다. 따라서 도착 무렵에는 심신이 지쳐서 정신상태가 강팍해졌는데 금광 터에서 금광채굴권을 얻는데도 어려움이 따랐기 때문에 그 바닥의 풍토는 더욱 살벌 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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