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L 투수몫 황금장갑 차지…ML 최다 18번째 영광
포지션별 골드 글러버 선정기준은 오직 ‘수비력’만
곤잘레스, 롤린스, 빅토리노, 벨트란, Y.몰리나 등 선정.
면도날, 컴퓨터, 컨트롤의 제왕, 마운드의 대학교수... 그 남자의 이름 앞에 수식어가 붙지 않은 날이 드물었다. 그런 날이 쌓이고 쌓여 근 20년이 됐다. 강산이 두번 바뀌는 동안 본 대로 뿌리고 뿌린 대로 들어가는 그 남자의 공은 여전했다.
그러나 세월 앞에 장사는 없는 법이다. 방망이질에 관한 한 지구촌을 통틀어 둘째 가라면 서러울 타자들이 그 남자 앞에만 서면 왜 작아지곤 했는데, 정작 그 남자는 방망이도 들지 않고 눈을 부릅 뜨지도 않고 그저 소리없이 왔다가 흔적없이 가는 세월이란 요물 앞에서 꼬리를 내리고 있다.
그리고리 앨런 매덕스(Gregory Alan Maddux), 줄여서 그렉 매덕스(Greg Maddux)다. 텍사스 샌앤젤로에서 1966년 4월에 태어난 마흔두살의 이 우완투수는 지금 은퇴기로에 서 있다. 시카고 컵스 유니폼을 입고 데뷔한 1986년과 이듬해를 빼고, 1988년부터 2004년까지 17년 연속 15+α 승리를 거둔 ‘전설적 현역’ 매덕스가 은퇴카드를 만지작거리게 만드는 것은 나이다. 나이에 부대끼는 몸 때문이다. 이렇다할 부상이나 병고가 덮친 것은 아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몸이 예전의 몸이 아니고, 이에 따라 공도 예전의 공이 아니다.
최근 삼사년, 특히 올해의 성적은 매덕스가 더 이상 매덕스가 아님을 말해준다. 샌디에고 파드레스에 있다 8월19일 LA 다저스로 이적한 매덕스는 올해 8승12패를 기록했다. 20년도 더 된 데뷔 초기 2년만 빼고 그의 시즌승수가 10승을 밑돈 것은 처음이다. 방어율은 4.22나 됐다. 1점대 아니면 2점대였던 절정기는 놔두고, 23년 통산방어율(3.16)에 견줘도 심한 퇴보다. 통산성적은 총744게임(그중 선발출장 740게임)에 나서 5,008.1이닝을 소화하며 355승227패를 기록했다.
한창 때 같으면 그가 마운드에 서면 상대팀 타자들은 밥이 되기를 각오해야 할 정도였다. 어느덧 바뀌었다. 그가 등판하는 날 가슴을 졸이는 건 같은팀 동료들과 코칭스탭과 팬들이었다. 이제는 매덕스가 타자들의 밥이 돼가는 형국이었다. 몇승만 보태면 메이저리그 통산 다승왕 랭킹 2위로 올라서고, 그렇게 두어해만 더 버티면 최다승 왕관을 차지하게 될 매덕스는 그러나 타자들의 밥이 돼가면서 가물에 콩나듯 이삭줍기 승리를 바라지 않은 것 같다. 은퇴설의 배경이다. 거의 마음을 굳히고 있다는 보도다. 다저스가 그에게 남아달라 붙잡는다는 소식도, 다른 어느 구단에서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는 소식도 없다.
그렇다고 매덕스를 효용가치 제로(zero)로 보면 오산이다. 매덕스다운 한칼은 남았다. 피칭(pitching, 투구)이 아니라 필딩(fielding, 수비) 능력이다. 데뷔 초부터 공도 공이지만 피칭 직후 수비능력이 워낙 뛰어나 내야수를 맡아도 손색없을 것이란 호평을 받았던 그는 올해도 수비만큼은 매덕스답게 해냈다. 면도날 컨트롤과 공의 위력 자체가 확 떨어진 올해 그가 8승이나마 거두고 방어율을 4점대 초반으로 묶어둔 것은 수비력 덕분인지도 모른다.
증거가 있다. 매덕스가 올해도 변함없이 골드 글러브를 차지하게 됐다. 4일 ESPN 등 관련보도에 따르면, 매덕스는 내셔널리그의 투수몫 골드 글러브 주인으로 선정됐다. 골드 글러브는 각 리그의 포지션별로 한시즌동안 가장 뛰어난 수비력을 보인 선수에게 주어지는 영광이다. 포지션별 골드 글러브 주인공은 매 정규시즌이 끝나기 전에 각 팀 감독과 코치들의 투표로 결정된다. 투표결과는 통산 비밀에 부쳐졌다가 월드시리즈가 끝난 뒤 발표된다.
매덕스의 골드 글러브 차지는 이번이 18번째다. 1957년 이 제도가 도입된 이래 개인최다 황금장갑 수집이다. 1990년에 처음 ‘내셔널리그 수비왕투수’로 선정된 그는 2003년(마이크 햄튼)만 빼고 올해까지 황금장갑을 독차지했다. 이 소식을 전하면서 ESPN은 수비에 관한 한 매덕스에게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서두를 열었다. 결국 공이 문제다. 올해 연봉 1,000만달러의 매덕스에게 18번째 황금장갑은 은퇴기념 위로선물이 될까 재도전을 위한 불쏘시개 역할을 하게 될까.
포수몫 황금장갑은 몰리나 3형제의 막내 야디어 몰리나(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차지했다. 그는 뛰어난 도루저지율에다 패스트볼이 거의 없을 정도로 물샐틈없는 블로킹 능력을 과시하며 수비최고 포수로 뽑혔다. 1루수몫은 에드리언 곤잘레스(샌디에고 파드레스), 2루수몫은 브랜던 필립스(신시내티 레즈), 3루수몫은 데이빗 라이트(뉴욕 메츠)가 차지했다. 야수 중 수비비중이 가장 높은 유격수로는 지미 몰린스(필라델피아 필리스)가 내셔널리그 으뜸표를 받았다. 좌,우익수나 중견수 구별없이 3명을 뽑는 외야수몫 골드 글러브는 네이트 맥루스(피츠버그 파이어리츠), 카를로스 벨트란(뉴욕 메츠), 셰인 빅토리노(필라델피아 필리스)가 영광을 안았다. 세명 다 중견수다.
몰리나, 곤잘레스, 맥루스, 필립스에게는 난생 처음 황금장갑이다. 필리스의 롤린스와 빅토리노는 2년 연속, 메츠의 벨트란과 라이트는 2번째 영광이다. 빅토리노의 수상으로 NL 외야수 몫 황금장갑은 2년 연속 필리스의 중견수가 차지하게 됐다. 필리스의 2007년 중견수 겸 골드 글러버는 올해부터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합류한 애런 로왠드다.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올해 팀합산 에러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으나 정작 황금장갑 주인공은 배출하지 못했다. 골고루 잘했으되 특출하게 잘한 선수가 없었다는 뜻이다.
<정태수 기자> tsjeo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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