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복 <전통 식생활연구원장>
우리 조상들의 지혜는 첨단 정보화 시대에 사는 지금 생각해도 놀랍다.옛말에 “문지방에 걸터앉으면 논두렁 터진다” “신발이 엎어지면 재수 없다”만약에 문지방에 위험하게 걸터앉은 아이에게 “너 거기 걸 터 앉지마!”한다면 분명 위험 할 줄 알면서도 공연히 반발심이 생길 것이다. 그러나 옛날 하늘에서 비가 내려와야 논사를 짓는 천수답인 시대에 논두렁이 터지면 쌀밥은 구경도 못할 터 스스로 아이에 위험한 행동을 자제하도록 한 것이며,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 보기가 흉한 것을 사전에 방지하여 속담을 만들어 평소 잠재의식 속에 인식시켜 놓으므로 아무렇게나 놓여진 신발을 다시 정도하는 습관을 갖게 하는 조상들의 슬기와 지혜가 담긴 속담들이다.
그 뿐만 아니라 옛날 시어머니들은 장독대에 맨드라미를 심어 1교훈, 1효용, 1방침으로 했다. 1교훈은 맨드라미꽃은 숫닭의 벼슬을 닮아 장닭을 상징 하였고 이 장닭은 때를 맞추어 울어 시간을 알리는 역할 충실했으므로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때를 맞추어 장독 관리를 철저히 하여야 장맛이 변하지 않는다는 교훈적 의미가 담겨 있고, 1 효용은 옛날 고추가 없던 시절(고추는 임진왜란 전후하여 일본에서 전해 짐) 김치에 붉은 색을 내기 위해 쓰여 졌으며, 1방침은 원래 붉은색은 악귀의 침범을 막기 위한 색이므로 울밑에는 봉선화를 심어 집안에 악귀가 안 들어오도록 했고, 우물에는 앵두나무를 심어 우물에 악귀가 침범치 못하도록 하였으며 장독대에는
맨드라미를 심어 장독에 악귀가 침범치 못하도록 하였다.
무언의 교훈적 의미가 담긴 속담이나 습속은 선비사회에서 더 통용이 되었다.선비는 자신과 가까운 벼슬아치가 권력이나 명예욕에 치우쳐 남용하거나 뇌물을 좋아하면 훈계용으로 준치를 선물했다고 한다.준치는 맛은 있으나 가시가 많아 목에 걸릴 수 있으므로 ‘맛있다고 먹어대면 반드시 목에 걸리니’ 조심하라는 훈계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선물이다. 그래서 준치는 참다운 생선이란 뜻의 진어(眞魚)라는 별명도 얻었다.
벼슬아치 중에 아부 근성이 심해 자기 주관 없이 윗사람 비위나 맞추는 사람이나 속이 좁은 사람에게는 밴댕이를 선물해 비아냥 거리도 했고, 의를 위해 고초를 겪고 있는 선비에게는 결코 굴복하지 말라는 의미로 굴비(屈非)를 선물 했다. 원래 이 굴비는 고려 16대 예종 때 난을 일으킨 이자겸은 인종에 의해 체포되어 영광 법성포로 유배를 떠났다. 법성포 특산물인 조기 맛을 보고 감탄한 이자겸은 임금에게 진상하고자 했다. 조기를 받은 인종이 이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이자겸은 네게는 결코 굴하지 않겠다는 뜻을 담아 굴비(屈非)라고 거짓 대답했다.이때부터 사람들은 조기를 굴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제눈에 들보는 깨닫지 못하고 남의 눈에 티끌만 보인다는 속담이 있듯이 우리는 자기 허물은 생각지 않고 남의 허물을 탓하기 쉽다.그렇다 하드라도 우리 조상들처럼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고 지혜롭게 상대를 깨우쳐 준다면 반발심도 안 생기고 자신의 잘못을 깨우치리라 믿는다. 그리고 슬기와 지혜가 담긴 행동은 많은 사람들에게 오래도록 교훈으로 남는다.
그 예가 바로 조선의 실학자 하백원(1781~1844)의 제자 도공 우명옥이다.
도공 우명옥은 조선시대 왕실의 진상품을 만들던 경기도 광주분원에서 스승에게 열심히 배우고 익혀 마침내 스승도 이루지 못한 설백자기(雪白磁器)를 만들어 명성을 얻은 인물로 전해진다. 그 후 유명해진 우명옥은 방탕한 생활로 재물을 모두 탕진한 뒤 잘못을 뉘우치고 스승에게 돌아와 ‘계영배(戒盈杯)’를 만들었다. 이 계영배는 잔의 7할 이상을 채우면 모두 밑으로 흘러내려 버려 “넘침을 경계하는 잔” 이라는 속뜻이 있다.
그 후 계영배는 조선시대 거상 임상옥(林尙沃: 1779∼1855)이 소유하게 되었는데, 그는 ‘戒盈祈願 與爾同死(계영기원 여이동사) 가득채워 마시지 말기를 너와 같이 죽으리라.’라는 글을 계영배에 새겨 옆에 두고 끝없이 솟구치는 과욕을 다스리면서 큰 재산을 모았다고 한다.
사람의 지식이 인격 형성을 하는데, 영향을 줄 수는 있어도 지식의 많고 적음으로 인격을 판단 할 수는 없다. 인격은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이 주는 품격에서 드러난다. 배금주의(拜金主義)가 만연한 오늘날 옛 조상들의 슬기와 교훈이 담긴 속담과 습속 하나쯤 되새겨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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