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관찰하는데 있어 프랑스 학자들의 눈은 유독 예리하다. 19세기 초 프랑스의 정치철학자인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미국을 돌아본 후 쓴 고전 ‘미국의 민주주의’를 통해 젊은 나라 미국의 힘과 미래를 놀라울 정도의 통찰력으로 진단했다.
얼마 전에는 역시 프랑스의 저명한 철학자이자 작가인 베르나르 앙리 레비가 미국을 1년여에 걸쳐 이리저리 둘러본 후 ‘아메리칸 버티고’란 책을 썼다. 이 책에서 레비는 버락 오바마를 만나고 난 후의 소감을 이렇게 적고 있다.
“사람들의 죄의식에 호소하길 그만두고 매력을 행사해야 함을 이해한 최초의 흑인, 미국에 대한 비난 대신 미국의 희망이고자 한 최초의 흑인. 그는 모든 흑인들에게 일종의 감옥처럼 작용하는 인종적 정체성을 포함하여 모든 정체성의 살아 있는 방증이다.” 레비의 관찰 속에는 어떻게 오바마가 백인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는지와 그의 등장이 가지는 의미를 함축해 담고 있다.
흑인들이 노예상태에서 해방된 것은 138년 전이다. 그들의 발목을 옴짝달싹 못하게 꽁꽁 묶어 놓고 있던 신체의 쇠사슬은 그 때 풀렸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의식 속의 쇠사슬은 오랜 세월 전혀 풀리지 않은 채 그들을 구속해 왔다.
오바마는 그의 자서전이라 할 수 있는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에서도 이것을 언급하고 있다. 차별이 두려워 검은 문화 속에 안주하면서 왜소해 지는 흑인들. 이들은 패배주의의 감옥에 스스로를 가두는 부류들이다. 간혹 이런 질서에 대항해 백인들에 맞서는 일부 흑인들은 백인들이 ‘폭력주의자’ 혹은 ‘편집증 환자’라는 이름으로 만들어 놓은 또 다른 감옥에 갇혀 왔다. 레비가 지적했듯이 인종적 정체성은 흑인들에게는 좀처럼 벗어나기 힘든 감옥이 되어 왔다.
오바마가 담대한 도전에 나섰을 때 흑인들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과연 흑인이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라는 회의적 인식이 팽배해 있었다. 검은 피부색은 그들에게 곧 실패를 의미했다. 차별에 시달리고 체념하면서 생긴 무력감이었다.
역설적이게도 무기력한 흑인들의 의식에 날카로운 자극을 준 것은 백인 유권자들이다. 백인 일색인 아이오와 주에서 오바마가 극적인 승리를 거두면서 흑인들은 무기력감을 버리고 각성의 눈을 뜨기 시작했다.
오바마의 대선 레이스는 이 같은 감옥의 벽을 조금씩 허물어 내는 장정이었다. 오바마가 선전하면서 “인종에 관계없이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미국인들이 흑인은 물론 백인들 사이에서도 크게 늘어났다. 벽이 점차 허물어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흑인인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으로 혁명은 시작됐다. ‘오바마 혁명’은 대통령과 집권당이 바뀌고 시스템이 변화하는 외형적 혁명이 아니다. 이것은 의식의 혁명이다. 오바마로 인해 시작된 ‘뉴 챕터’ 이전과 이후의 미국이 같을 수는 없다. 흑인이 백인을, 백인이 흑인을 바라보는 눈과 세계가 미국을 보는 시선이 달라질 테니 당연한 일이다.
‘오바마 혁명’은 그의 뛰어난 자질이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그것만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다. 아직은 유권자의 절대 다수인 백인들이 ‘색맹의 지혜’를 발휘했기에 가능했다. 160여 년 전 “미국의 위대성은 다른 나라들보다 더 개명돼 있기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과오를 시정할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데 있다”고 설파했던 토크빌의 혜안이 새삼 돋보인다.
그런 점에서 미국의 위대함을 보여준 하나의 ‘사건’이라고도 평가할 만하다. 이런 사건을 통해 점진적으로 나가던 역사는 ‘축지 효과’를 발휘하며 성큼 발전한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이 나라가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걸 신조로 살아가는 날이 있으리라는 꿈입니다. … 나의 자녀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따라 평가 받는 나라에 살게 되리라는 꿈입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1963년 워싱턴 링컨 기념관에 모인 수십만 군중 앞에서 이렇게 사자후를 토했다. 오바마의 당선으로 킹 목사의 꿈은 하나 둘씩 현실이 되고 있다.
하지만 킹 목사가 소망했던 ‘이 나라가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것을 신조로 살아가게 될 그날’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오바마 자신도 “단 한 번의 선거와 단 한 명의 후보, 특히 나처럼 완벽하지 못한 후보 한 명으로 우리가 인종차별을 뛰어넘을 것이라고 믿을 만큼 순진하지 않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제 큰 걸음을 하나 더 내디뎠을 뿐이다.
한 가지 희망적인 것은 흑인 대통령이 탄생함으로써 다음 세대는 부모 세대보다 피부색의 차이를 훨씬 관대하게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다름에 대한 관용과 이해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보고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바마 혁명’의 가장 큰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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