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생각해야 하고 생각하는 사람은 철학(哲學)해야 한다. 철학한다는 말은 단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무엇인가 쩔쩔매는 고민하는 것이 아니다. 철학은 자기를 발견하는 자기성찰의 통로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철학이 마치 철(鐵)이 무거운 것처럼 무겁고 어려운 것으로 여겨진다. 어떤 철학자가 말하기를 철학은 “알 수 없는 물음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이라고 했기에 그 말 자체가 머리를 터지게 하기 때문이다. 또 철학은 배고픈 자의 것이 아니라 배부른 자의 것이라는 편견도 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인간이 되는 것이 낫다”라는 말을 했기 때문에 철학이 현실과 동떨어진 어느 특정한 사람들만의 것이라고 방관하게 된다. 하지만 철학은 학문이라기보다는 삶의 전부이고 일부이다. 철학이 인생이고, 사랑이 철학이고, 노동이 철학이고, 사람과의 관계가 철학이다.
디오게네스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데 그의 스승은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다. 디오게네스는 귀족적인 것을 추구하는 철학자가 아니라 서민적인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철학자였다. 하루는 디오게네스가 대낮에 등불을 켜들고 무엇인가 열심히 찾으면서 거리를 돌아다녔다. 그를 본 제자 한 사람이 물었다. “선생님 무엇을 그리 찾고 계십니까?” “사람을 찾고 있다네.” 제자가 또 물었다. “인적이 드문 깊은 산중도 아니고, 이렇게 사람이 많은 번화가에서 사람을 찾다니요?” 의아해 하는 제자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많아도 정직하고 믿을 만한 사람은 드무네. 나는 참사람을 찾는 것일세.” 이러한 디오게네스의 마음으로 사는 것이 철학이다. 그 철학은 학문적이기보다는 생각이고, 윤리이고, 이념이고, 도덕이며 신앙이다.
2007년 버지니아 텍에서 일어난 총기 사고가 있었다. 총기 사고를 낸 사람이 한국 사람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민자들의 마음에 미국 사회에 대한 죄송함과 그에 대한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어떤 사람들도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지만 결국 우리가 소수민족이라는 위축감이 더 큰 이유이었을 것이다. 이런 한국 이민자들의 태도에 대하여 미국 사람들은 민족적인 시각으로 보기보다는 한 개인의 문제로 보면서 오히려 한국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였다. 한편 한국의 모 일간지 사설에서는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이민자들의 꿈이 종말이 났다고 했다. 이민자들의 삶을 획일적인 잣대로 성공과 실패를 판가름하는 이원론적인 평가를 하고 말았다.
이민자들의 삶을 어느 하나의 기준으로 말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모른다. 이민의 목적이 단지 자녀 교육이나 사업 성공, 그리고 한국의 부정적인 현실의 도피처로서 간단하고 짧게 그려낸다면 이민의 삶이 슬플 수밖에 없다. 이는 마치 밤 하늘에는 북극성과 북두칠성만이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성경에서 세례요한은 선지자로서 예수님이 탄생하기 전 6개월 먼저 태어난 인물이었다. 그는 광야에서 살았다. 그는 석청(산의 절벽이나 바위에서 나오는 꿀)을 먹었고, 옷은 약대털옷을 입었으며 허리에는 낙타의 가죽띠를 띠었다. 세상과는 동떨어져 자신을 지켜나갔다. 그가 살아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복음을 전하시도록 미리 길을 닦아 놓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세례요한의 삶의 철학은 소신이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왜 죽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그에게는 어떻게 사느냐 하는 방법보다는 무엇을 위해 사느냐 하는 본질이 사로잡고 있었다.
이제 무비자 미국 방문시대가 열렸다. 미국에 살고 있는 코리안 디아스포라(Diaspora-흩어져 살고 있는 한인 이민자를 가리킴)는 반갑기도 하지만 조심스러운 면이 많이 있다. 질서가 무너지고, 윤리가 사라지고, 도덕과 신뢰가 없는 혼돈의 모습들이 생기지는 않을까 하는 기우(杞憂)가 생긴다.
이럴 때 철학 있는 삶으로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모습을 만들어야 한다. 철학자 디오게네스에게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디오게네스는 청중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의사나 철학가를 보면 인간만큼 현명한 자는 없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명성이나 부를 자랑하는 의사나 점쟁이들을 보면 인간만큼 어리석은 자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철학자만이 철학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으로서 가장 사람스럽게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은 철학하는 것이다. 이 철학은 행위에 대한 것이 아니고 자기 존재의 파악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김범수 목사
워싱턴 동산교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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