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표적인 네오콘 이론가인 로버트 케이건 카네기 평화재단 선임연구원이 최근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에서 현재의 세계는 열강이 각축을 벌였던 19세기의 모습이라고 썼다. 초강국 미국의 위상이 추락하여 ‘팍스 아메리카나’가 끝났다는 것이다.
미국은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강력한 군사력을 키워 세계의 중심국가로 군림해 왔는데 이제 그 경제력이 흔들리면서 영향력을 잃게 되었다고 했다. 더욱이 100년 만에 한 번 있을 만하다는 이번 금융위기를 계기로 미국 경제를 비관하는 목소리가 도처에서 나오고 있다. 또 심지어 미국은 경제 추락으로 로마제국이 망한 것처럼 붕괴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견해는 월가의 대표적 비관론자인 마크 파버의 주장이다.
그는 미국이 공적자금 투입과 경기부양책 등으로 능력을 초과하는 부채를 지게 되어 달러를 마구 찍어냄으로써 달러 가치가 휴지조각이 될 것이며, 결국 미국이 파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일본의 경제 예측가인 소에지마 다카히코는 최근 ‘연쇄적인 대폭락’이라는 저서에서 현재의 금융위기가 오는 2011년까지 주식과 채권의 폭락, 환율 불안 등으로 세계의 경제를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결국 달러화를 하락시켜 미국의 국력을 쇠퇴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경제가 심상치 않게 악화되고 있다는 생각은 이들 비관론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현재의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이전부터 감지되어 온 사실이다. 미국의 경제성장은 19세기와 20세기 초반에 걸쳐 새로운 과학기술과 자본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성과이다.
그런데 20세기 후반에 들어와서 과학기술을 전수받은 신흥 공업국의 눈부신 경제성장이 미국의 성장률을 앞지르면서 경제적 격차가 좁혀지게 되었다. 아울러 미국은 해마다 천문학적 숫자로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를 누적시켜 왔다.
이런 와중에서 발생한 미국의 금융위기는 미국 경제에 큰 타격을 주는 악재임에 틀림없다. 이 금융위기가 미국 경제를 얼마나 추락시키느냐 하는 것은 앞으로 이 위기가 얼마나 심각하고 얼마나 오래 지속하느냐에 달렸다. 만약 최악의 경우 주택가격이 아주 가파르게 떨어지면서 금융위기를 심화시키고 크레딧 카드 등 가계 부채까지 문제가 생겨서 경제 전반이 침몰한다면 정부는 구제금융과 경기부양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달러화의 가치는 계속 추락할 것이다. 이럴 경우 각국이 보유하고 있는 달러화와 미국 국채를 묻지마 식으로 내던지게 되면 미국 경제는 몰락할 수도 있다.
미국의 경제가 수년 안에 그렇게 침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도 없다. 2년 전 IMF에서 이번 금융시장의 붕괴를 예견하여 주목을 끌었던 NYU의 누리엘 루비니 교수는 최근 “아직 최악의 상황은 오지도 않았고 우리는 파괴점으로 다가가고 있다”고 했다. 현재 세계 각국이 유동성 위기에 직면하여 기축통화인 달러화를 확보하려고 하는 바람에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 추세가 앞으로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번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세계 경제가 미국 중심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고 중국과 러시아가 국제교역에서 달러화 대신 자국 화폐로 결제하기로 추진한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다. 세계 경제가 금융위기 이후의 새로운 체제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달러화의 폭락은 곧 미국 경제의 몰락을 의미한다. 이 경우 미국은 각국이 보유한 달러화와 채권을 회수할 능력이 없게 될 것이다. 그 뿐 아니라 미국에 사는 사람들의 현금자산은 물론 달러 표시의 모든 자산, 즉 부동산, 주식, 채권, 기업 등의 가치가 폭락하게 되고 심지어는 달러표시로 받는 연금과 소셜 시큐리티 혜택도 보잘 것 없는 액수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금융위기와 이에 따른 경제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미국의 운명이 갈리게 된다. 정책 담당자들이 과감하고 현명하게 대처해야 함은 물론이며 미국에 사는 우리들도 사태의 추이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기영
뉴욕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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