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이 빽빽한 데 왜 또 옷을 사게 될까? 누구나 부러워하는 멋진 아내(혹은 남편)를 둔 사람이 왜 바람을 피울까? 자동차를 바꾸면 왜 그렇게 기분이 좋은 걸까?
답은 하나다. 새로움 때문이다. 뭔가 새로운 것을 하거나 갖게 되면 그 신선함이 뇌를 자극, 도파민이 분비되면서 쾌감과 만족감이 밀려든다고 한다. 에모리 대학의 행동과학 교수인 그레고리 번스 박사의 말을 빌리면 우리의 뇌는 항상 새로운 것을 동경한다.
그렇다고 모든 새로움이 기분 좋은 것은 아니다. 낯섦, 생경함으로 인식될 때 새로움은 경계와 거부의 대상이 된다. 새로움은 예측불허의 불확실성 덩어리일 뿐이어서 기분 나쁜 불안감의 근원이 된다.
아이오와 코커스를 시작으로 지난 10개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해온 대선전이 이제 결승점에 도달했다. 16년 전 젊은 빌 클린턴이 현직의 조지 부시에게 도전했던 1992년 대선 이후 이번처럼 스릴 넘치고 열기가 뜨거웠던 선거전은 없었다. 민주·공화 양당의 대선후보들은 올 한해 우리 일상의 지루함을 덜어주는 데 분명하게 공헌을 했다.
후보들 모두 나름대로의 역할이 있었다. 하지만 올 대선무대 ‘이상 열기’의 주인공은 버락 오바마, ‘흑인 대통령 탄생’이라는 새 역사를 쓸게 거의 확실해진 ‘신선한’ 혹은 ‘생경한’ 정치인이다. 2008 대선은 한마디로 줄이면 오바마 찬성 대 반대의 싸움이다.
예선전 시작 즈음 오바마는 대부분 미국인들에게 무명의 인물이었다. 당시만 해도 힐러리 클린턴이라는 확실한 후보가 있던 민주당 예선전에서 그는 잠시 이름을 올렸다가 아쉽게 사라질 후보 정도로 치부되었다.
하지만 ‘변화’의 깃발을 내세운 오바마의 카리스마는 진보진영을 예상외로 뜨겁게 열광시켰다. ‘새로운 미국’‘새로운 리더십’을 갈망해온 유권자들에게 그의 새로움은 신선한 충격, 열린 가능성 그 자체였다.
그런가 하면 반대 진영에서 그의 새로움은 전혀 달랐다. 이름이 버락 후세인 오바마이자 인도네시아의 무슬림 지역에서 자란 경력 짧은 흑인 후보 앞에서 보수적 유권자들은 본능적으로 경계태세를 취했다. 그의 새로움은 알 수 없음, 위험함의 동의어이자 거부감의 근원이 되었다.
거부감의 깊이는 생각보다 깊다. 샌디에고 주립대학에서 캠퍼스 내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보고서가 얼마 전 발표되었다. “버락 오바마는 대통령이 될 만큼 충분히 미국인인가?”라는 조사였다. 학생들은 진보성향의 민주당으로 오바마 지지자들이었다.
그런 그들도 무의식 차원으로 진행된 조사에서 흑인인 오바마는 백인인 클린턴이나 매케인 보다 ‘덜 미국인’이라는 대답을 했다. ‘미국인=백인’이라는 고정관념이 너무 깊은 탓이다. 우리 한인들을 포함, 미국사회에서 보편적인 고정관념이다.
그러니 ‘백악관의 주인=백인’이란 고정관념은 얼마나 더 깊겠는가. 그 전통을 깨는 일은 얼마나 어렵겠는가. 오바마 반대의 핵심은 흑인 대통령 등장이라는 새로운 사건에 대한 거부감과 불안으로 해석된다.
‘정치적 두뇌’라는 책으로 유명한 드루 웨스틴이라는 정신심리학자가 있다. 그의 주장은 유권자들이 이성적으로 따지고 계산해서 표를 던진다고 생각하는 후보는 반드시 진다는 것이다. 머리로는 이거다 해도 느낌이 반대로 쏠리면 표는 느낌 따라 간다는 주장이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유권자들은 세가지 ‘느낌’에 따라 투표한다. 이성적 판단은 뒷전이다. 첫째는 당에 대한 느낌이다. 민주당/공화당을 지지하면 후보가 누구든 민주당/공화당을 찍는다. 둘째는 후보에 대한 느낌이다. 후보가 너무 마음에 들면 당을 초월해서 표를 던지기도 한다. 그리고도 마음을 결정하지 못하면 셋째는 후보의 정책노선에 대한 느낌이다.
많은 유권자들은 첫 번째 느낌으로 이미 마음을 정했다. 전통적 민주·공화당 지지 주들의 선거결과는 안 봐도 알 수 있다. 이번 선거에서 관건은 부동층의 두 번째 ‘느낌’이다. 이들이 오바마라는 인물의 ‘새로움’을 긍정적으로 보느냐 부정적으로 보느냐에 따라 차기 대통령이 결정될 전망이다. 여론조사가 ‘오바마 승리’를 장담해도 민주당이 불안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투표장에 서는 그 순간까지 그들의 마음속에서는 어떤 느낌들이 생겨나고 사그라질까?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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