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붐이 캘리포니아를 주로 승격시킨 원동력
독일태생 스위스인 존 수터가 채금 시작
1848-1855년까지 금찾아 33만명 밀려들어
“캘리포니아”는“몽탈보”라는 스페인의 중세기 소설가가 그의 작품에 지상천국이며 황금이 넘쳐 흐르는 고장으로 묘사한 공상의 섬 이름이었다. 따라서 캘리포니아는 대항해 시대(16-18세기)에 황금을 찾는 많은 세계적인 탐험가들의 탐구의 대상이었는데, 드디어 1848년에 공상이 현실화되어 “California Gold Rush(황금 붐)”라는 엄청난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지게 되었다.
“황금 붐”의 주역은 캘리포니아가 아직도 멕시코 영토였던 시절인 1839년 7월1일, 이곳에 농업 천국을 꾸며 보겠다며 이주해온 독일태생 스위스인 존 수터(John Sutter)라는 사람이다. 그는 당시 캘리포니아의 멕시코 주지사 후안 알바라도(Juan Alvarado)를 만나 1840년 8월에 멕시코 시민으로 귀화한다는 조건하에 지금의 새크라멘토 지역에 약 5만 에이커에 달하는 광대한 토지를 무상으로 취득했다. 그는 개발 본부를 아메리칸 리버 강변에 설치했는데 바로 이 지역이 훗날 “새크라멘토”라는 도시로 발전된다. 개발 본부를 군대의 요새처럼 담으로 두르고 작업장과 작업요원들의 숙소도 같이 건립하고 ‘수터스 포트’(Sutter’s Fort)라고 이름 지었다. 수터스 포트는 캘리포니아 주 보호구역으로 수터스 포트 주립 역사공원(Sutter’s Fort State Historic Park)라는 이름으로 새크라멘토 중심부에 유적으로 보존되고 있다.
미국이 멕시코전쟁 후에 캘리포니아를 자국 영토로 인수한 것이 1848년 2월2일인데, 1840년에 그가 멕시코 정부로부터 받은 토지 소유권은 평화협정상 그대로 인정을 하게 되어있었으므로 수터는 소정의 법적 수속을 거쳐서 이를 본인소유로 확정지으면서 미국시민권도 자동적으로 취득했다.
수터는 새크라멘토 근교인 콜로마(Coloma)에 제재소를 갖고 있었는데, 그 작업장 매니저로 있던 존 마셜(John Marshall)이라는 사람이 48년 1월 24일에 물방아의 방수로(放水路)에서 사금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 고장에 금맥이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Sutter는 채금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 소문은 삽시간에 미국 전역 뿐만 아니라 세계 방방 곡곡에 퍼지게 되어 미국인은 물론 호주, 남미인 등 외국인도 많이 모여들게 되었다. 이때 중국인들 역시 많이 참여를 하였는데, 이때 들어온 중국인들이 동양인으로서는 첫 이민이었다.
캘리포니아의 황금발견 소식이 급작스럽게 퍼지게 된 것은 뉴욕의 뉴욕 헤럴드(New York Herald)라는 신문이 캘리포니아의 황금붐을 대서특필 한데서부터 시작이 되었고, 당시의 대통령 제임스 폴크(James Polk)가 국회의 연설에서 캘리포니아 황금설(黃金說)을 정식으로 확인을 함으로 해서 세계의 이목이 쏠리게 된 것이다.
역사상 황금붐 시대를 1848년부터 1855년까지로 보는데 이 기간 동안에 미국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과,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이민 온 사람 합쳐서 약 33만명이 되었다고 한다. 붐이 시작되기 이전에는 북부 캘리포니아는 유럽계백인인구 약 1,000명에, 원주민(아메리칸 인디안)인구 약 3만명밖에 안 되는 한산한 농촌에 불과했는데 붐과 더불어 인구가 급증하고 지역의 생태가 급변하였으므로, 주정부(임시)에서는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 새로운 행정체계를 만들고 법도 제정했다. 때문에 캘리포니아는 멕시코 전쟁 이후 미국의 영토가 된 다른 지역보다 훨씬 앞선 1850년 전후 첫번째로 주로 승격이 되었다. 참고로 종전(終戰)과 더불어 동시에 미국 영토가 된 타 지역의 주 편입 연도를 보면 네바다주 1864년, 콜로라도주 1876년, 유타주 1896년, 뉴멕시코주 1912년, 애리조나주 1959년 이다.
일확 천금을 꿈꾸며 금광을 좇아다니는 “산사람(山師)”을 Gold-Seeker 또는 Argonaut라고 하는데 특히 캘리포니아의 “황금붐”에 모여든 사람들을 Forty-niner라고 한다. Argonaut라는 말은 고대 그리스의 신화에서 나온 말인데 황금 양털을 찾아서 배를 타고 모험의 길을 더듬던 용맹한 일행이 타고 떠난 배의 이름에서 나왔다. 그 배를 건조한 사람인 Argus라는 사람의 이름을 따서 배 이름을 Argo라고 하였는데 Argonaut이라는 말은 어의상 “Argo를 탄 선원”들이라는 뜻이다.
황금이 발견된 해인 1848년도에는 금을 건지는(최초에는 개천에서 砂金을 건졌음) 사람들은 북가주에 거주하던 유럽계사람들, 원주민(미국 인디안), 그리고 Californio (스패니쉬를 쓰던 캘리포니아인)들이었는데, 모두 평화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상부 상조하면서 일을 했었다. 곧 이어서 인근 오리건 주에서 Oregonian(오레곤 사람)들이 수천명 모여들었으며, 다음은 선박편으로 황금붐 소식을 비교적 빨리 들은 하와이 사람들, 남미사람들이 모여들어 1848연말까지 약 6,000명의 Argonaut이 모여들었다는 것이다. 이중에는 불과 500명 정도 밖에 안 되는 동부 미국인이 섞여 있었다. 이 모여든 사람들은 1848년에 온 사람이라고 해서 “forty-eighters(48년도 사람들)”라는 별명으로 통하게 되었으며, 비교적 온화한 분위기에서 착실하게 돈벌이에 몰두했다. 이 사람들의 거의 반수는 토박이가 아니고 외국에서 몰려든 신 이민자들인데 훗날 문제가 되는 중국인들은 빠져 있었다.
이어서 1849년에 접어들면서 미국 동부와 세계각지에서 본격적으로 황금광(黃金狂)들이 모여들게 되는데, 이 사람들을 Forty-niners(1849년도 동참자)라고 하며 캘리포니아의 역사는 이때부터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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