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 철수 실버스프링, MD/무료 뉴스사이트 편집인
얼마 전에 버락 오바마 선거운동 본부에서 이메일이 날아왔다. 버지니아에서 지금 격전이 벌어지고 있으며, 버지니아 쟁탈전이 선거를 좌우할지 모른다면서, 자원봉사로 선거운동에 참여하라는 권고였다.
그런 소리를 들으니 애난데일, 훼어팩스 등지에 가면 혹시 우리 교포들도 만날지 모르니 내가 적격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해보겠다고 답을 보냈더니 토요일에 매나세스로 오라는 통기가 왔다. 호별 방문 작전(door-to-door canvassing)을 하는데 손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훼어팩스보다 멀고 내가 잘 모르는 동네지만 가보기로 결심했다.
지정된 시간인 오후 2시에 매나세스에 도착했다. 오바마 진영은 매나세스 구촌에 있는 한 부동산 사무실을 빌려 선거운동 사무실로 쓰고 있었다. 벌써 베란다에 10여 명의 자원봉사원들이 모여 브리핑을 받는 중이었다. 대부분이 백인들이었다. 우리의 임무는 별 것이 아니었다. 지정된 동네에 가서 명단에 올라있는 집들의 문을 두드려 유권자 등록이 되어 있는지, 오바마와 존 매케인 중 어느 후보를 찍기로 결정이 되어 있는지만 알아내면 되는 것이다.
나는 ‘토리’(Torey)라는 이름의 중년 백인 여성과 한 팀이 되어 나가게 되었다. 나처럼 메릴랜드에서 온 사람이다. ‘토리’는 나보다 매나세스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았다. 어렸을 때 이곳에서 자랐을 뿐 아니라 지금도 친척이 더러 살고 있다는 것이다. 요는, 매나세스는 공화당이 절대적으로 우세한 보수 세력의 아성이라는 이야기다.
오바마 진영이 매나세스에 역점을 두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북부 버지니아에는 훼어팩스 등 민주당이 강세인 곳이 많지만 매나세스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오바마가 마음을 놓을 수 없다는 설명이다. 남북전쟁 초기에 두 차례나 격전이 벌어졌던 매나세스가 2008년 대선에서 다시 격전을 맞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찾아간 동네는 단독주택들만 있었다. ‘투 카 거라지’와 말끔한 잔디를 자랑하는 중산층 지역이다. SUV를 씻고 있는 사람, 잔디의 잡초를 뽑는 부부. 좋은 날씨 탓인지 출타 중인 집이 절반은 되었다.
처음에는 실망스러웠다. 매케인을 찍기로 이미 정했다고 답하는 집들만 계속 나타났다. 그러나 후반에 가서는 사정이 달라졌다. 이민 온 사람들이 많아졌고 그런 사람들은 으레 오바마를 찍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인도에서 온 것처럼 보이는 한 여인은 “우리 가족들이 약 25명이나 되는데 모두 오바마를 지지한다”고 자랑스러운 듯이 말하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그녀는 딸 둘과 살고 있고, 그 숫자는 버지니아 주의 다른 지역에 사는 친척들까지 포함시킨 것이었다.
또 다른 한 여인은 우리가 지나간 뒤에 멀리서 우리를 불렀다. 다시 가보니 유권자 등록은 되어 있는데 투표소가 어딘지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대단한 열성이다. 우리는 카운티의 선거위원회 전화번호와 매나세스의 오바마 선거 사무실 전화번호를 적어 주었다.
약 두 시간 반 돌아다닌 다음 사무실로 돌아가면서 ‘토리’는 우리가 둘이서 다니기를 잘했다고 말했다. 골수 공화당 지지자들 중에는 사나운 사람들도 있으므로 일이 잘못되면 우리가 구타를 당하거나 무슨 봉변을 당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은, 매케인 지지자를 설득하고 오바마 선전을 적극적으로 하라는 임무를 받지 않았기 때문인지 몰라도, 우리의 이날 활동은 싱거울 정도로 평온하게 진행되었다.
FDA(식품 약품 행정처)에서 일하고 있으며 주말에는 파트타임으로 수의 노릇도 한다는 ‘토리’는 4년 전에 부시가 재선되었을 때는 너무 화가 나서 엉엉 울었었다고 묻지도 않는데 자기의 심정을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만약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이 또 지면 어디 다른 나라로 떠나가야 되겠는데 한국은 어떠냐고 나에게 묻는 것이었다. 글쎄…
사무실에 돌아가서 상근 운동원 ‘크리스틴’에게 물었더니, 하루에 50명 이상, 주말에는 200명 이상의 자원봉사 운동원들이 메릴랜드, DC와 버지니아의 타 지역에서 매나세스로 달려와 선거운동을 돕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오바마의 개미 군단이다. 개미들의 소액 헌금과 자원봉사 활동이 획기적인 승리를 노리는 오바마 선거운동의 특징이며 강점이다. 매케인 쪽에서도 이런 식으로 인력을 동원하여 대항하고 있는가. ‘크리스틴’의 말로는, 매케인 진영은 흉내도 못 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 다음 주말에는 못 나오고 그 다음에는 또 오고 싶다면서 ‘토리’는 나에게 말했다. “내가 마땅히 해야 될 의무(duty)를 이행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나도 동감이었다. 그 다음 주에 나는 매나세스에 다시 가서 이번에는 나 혼자 한 동네를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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