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는 이제 닷새 남았다. 지지율은 여전히 ‘오바마 대통령’을 예고한다. 29일 오후 현재 민주당 버락 오바마 후보는 공화당 존 매케인 후보를 6% 포인트 차이로 리드하고 있다. 리얼클리어폴리틱스닷컴이 10개 기관의 지난 한주동안 여론조사 결과를 평균 낸 수치다. 선거인단 확보는 오바마 311명, 매케인 142명으로 매케인이 경합지역 85명을 다 가져간다 해도 패배할 판세를 보이고 있으며 돈을 걸고 내기하는 인트레이드 조사에서도 85% 대 15.5%로 오바마가 단연 우세다. 연방의회 선거 역시 민주당이 10% 포인트의 넉넉한 리드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주와 큰 차이가 없다. 다음 주에도 같은 추세라면 5일후 미국은 ‘민주당 천하’를 맞게 된다. 16년 만에 되살아나는 민주당 대통령과 민주당 의회다.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될 역사적 대통령과 상원 60석을 거느린 민주당 절대다수 의회가 손잡을 막강한 팀이다. 상원 60석은 연방대법원 판사인준도, 불법체류자 사면을 포함한 포괄적 이민개혁안 통과도 공화당의 태클없이 성사시킬 수 있는 매직 넘버다.
워낙 부시와 공화당에 염증을 느낀 현재의 여론은 민주당 천하에 과반수 지지를 보내고 있지만 민주정부의 근간인 ‘균형과 견제’를 어렵게 하는 일당 독주는 드러내 놓고 마냥 좋아할 만한 상황만은 아니다. 표밭에서도 심심찮게 거론된다.
독주의 위험성을 거듭 경고하는 것은 수세에 몰린 매케인이다. ‘가장 리버럴한 세 사람’ 백악관의 오바마, 연방하원의장 낸시 펠로시, 상원원내대표 해리 리드가 “여러분이 땀 흘려 번 돈을 거두어 가도록 그냥 보고만 있을 겁니까?” 세금을 낭비하는 민주당의 소비성향을 일깨우느라 매일 목청을 높인다.
오바마는 물론 대선 승리조차 안심할 상황이 못 된다며 극도로 자제한다. 그러나 이미 ‘민주당 천하’는 정치 분석가들의 핫이슈로 떠올랐다. 득과 실에 대한 진보와 보수의 입씨름이 한창이고 민주당 천하가 얼마나 오래 갈 것인가에 대한 예상 또한 분분하다.
공화당의 보수 진영에선 허약한 안보정책, 절제 없는 소비지출, 헬스케어의 국영화, 글로벌 경제에 맞지않는 보호무역등 정책으로 세금은 늘어나고 부는 증발하며 일자리는 줄어드는 리버럴의 천국이 도래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무슨 소리냐, ‘백악관과 의회의 힘을 합해 민주당은 21세기의 뉴딜정책을 가장 신속하게, 가장 효율적으로 실현시킬 것’이라고 진보진영에선 맞받아친다.
1932년 대공황의 혼란기에 당선된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100일 의회’가 없었더라면 뉴딜정책의 실현은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1933년 3월9일부터 6월16일까지의 100일을 특별회기로 정한 민주당 의회는 민주당 대통령의 경제위기 타개 실현을 위해 숨 가쁜 속도로 법안을 처리했다. 그 짧은 기간에 15개의 주요법안을 비롯한 수많은 안건이 속속 통과되어 시행에 들어갔고 국민은 정부에 대한 신뢰를 되찾았다. 위기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같은 당이었기 때문에 의회의 절대지지가 가능했었다.
민주당 의회와 함께 출발한 민주당 대통령은 그 후에도 여럿 있었다. 린든 존슨은 암살당한 케네디에 대한 기억이 살아있는 동안 민권법에서 빈곤과의 전쟁 등 주요 안건을 대부분 성사시키며 집권당 의회를 성공적으로 활용했으나 지미 카터와 빌 클린턴은, 워싱턴 기류에 생소했던 주지사 출신들이어서였을까, 함께 출발한 민주당 의회와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다. 결국 카터의 실정은 레이건 혁명을 불러왔고 클린턴은 집권 2년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 압승이라는 정치적 대가를 치러야 했다.
백악관과 의회의 미묘한 역학은 공화당이라 해서 다르지 않다. 공화당 의회와 성공적으로 출범한 조지 부시 백악관도 원대한 꿈을 가졌었다. 부시와 브레인 칼 로브가 공화당 장악을 앞으로 한 세대는 더 끌고 가려는 플랜을 세운 건 2003년, 중간선거의 공화당 참패로 그 계획이 무너지기 까지는 3년이 채 안 걸렸다. “정당들이 무너지는 것은 상대의 공격 탓이 아니다. 새로운 환경 적응에 실패하기 때문에 스스로 무너지는 것이다” 정략의 귀재라는 로브는 이렇게 정당의 속성을 간파했다.
모든 여론조사기관이 엉터리가 아니라면 다음주엔 민주당 천하의 새 시대가 열리게 된다. 그러나 새 시대의 주인공이 된 기쁨은 잠깐 일 것이다. 경제위기에서 이라크전, 적자예산과 헬스케어 개혁, 에너지 정책과 미국의 이미지 개선에 이르기까지 온갖 난제가 산적해 있다. 시사만평가들이 백악관을 유령의 집으로 풍자할 정도다. ‘오바마 대통령’은 ‘오바마 후보’보다 더 바쁘게, 더 필사적으로 뛰어야 할 것이다.
위기의 와중에서 일당구도 정부의 효율성은 다시한번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그것은 오바마의 캠페인 주제인 새로운 정치 실현과 맞물려 있다. 분열 아닌 화합을, 이념 보다는 상식을 선호하는 실용적 정치에 대한 약속이다. 오바마가 사사건건 발목을 잡으려는 공화당을 설득하는 것 못지않게 민주당 의회의 무리한 요구에도 과감히 맞설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민주당 대통령과 민주당 의회가 어렵게 되찾은 정치자산을 힘겨루기에 낭비할 것인지, 힘을 합해 ‘21세기의 뉴딜’ 시행에 성공할 것인지, 그 평가는 2년 후 중간선거에서 나올 것이다.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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