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는 바다풀이 발끝에 차이는 모래 둔덕을 있는 힘을 다해 페달을 밟았다. 자전거가 속도를 줄이면 바퀴가 모래 속으로 빠져들 것만 같았다. 어서 시원한 바다가 얼굴을 내밀 때까지 달려야 한다. 모래 바람이 수지의 머리 위를 스쳐갔다. 짓궂게도 모래는 축축이 젖은 수지의 눈을 감기게 하고 입속에서 씹혔다.
수지는 엄마가 좋아하는 이 바닷가에 하루도 거루지 않고 왔다. 엄마가 요양원에 오신지 이제 꼭 한 달이 된다. 엄마는 중한 병을 앓고 계셨다. 늘 창밖의 바다만 바라보셨다.바다풀이 시야에서 사라지면, 백지같이 창백한 모래사장이 펼쳐지고 바다와 하늘이 분별없이 모래사장을 이어갔다. 수지는 으레 신발을 벗고 살포시 모래를 밟았다. 영겁의 세월이 이 모래처럼 쌓여간 이곳이 엄마가 가실 영혼의 입구라는 생각에서 그랬다. 온종일 달구었던 모래의 분자가 발가락 사이로 온 몸을 따뜻하게 했다. 엄마가 불쌍했다.
엄마가 이곳에 온지 만 19년이 된다. 엄마는 항상 왜 이곳에 왔냐고 묻는 사람에게 “시카고는 너무 추워서요”라고만 대답했다. 그리고 손을 부비셨다.
수지가 다섯 살 때 엄마의 손에 이끌려서 뉴올리언스의 유람선 사무실에 갔을 때도 엄마는 그랬다. 거구의 선장이 측은한 듯 쑤지를 내려다 볼 때 더욱 그랬다.
엄마와 수지는 배 밑바닥 창고 곁의 작은 방을 얻었고 식당과 선장의 식사를 맡았다. 엄마는 손과 발이 부르트도록 일하셨다. 때도 없이 선원들과 관광객들의 심부름까지 했다. 영어가 서투른 엄마는 같은 일도 두서너 번 해야 했다. 그래도 엄마는 불평 없이 일만 하셨다.
수지는 거의 엄마를 볼 수가 없었다. 낯에는 깜빡거리는 전등 아래 동화책이나 손님들이 버린 책들을 보았다. 손님이 잠든 밤에는 선상을 오르내리며 어둠이 깔린 미시시피 강과 하늘에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을 세었다. 엄마는 말해주지 않지만 나의 아빠는 누구일까, 어디 있단 말일까 밤하늘 별들에게 물었다. 수지가 방에 돌아와도 엄마는 새벽이 되어야 오셨다.
때로는 선장 할아버지의 눈에 띠면 선장은 그 큰손으로 쑤지를 잡아 선장실에 데려다 미시시피 강 이야기를 들려주고 책 읽는 법도 가르쳐 주셨다. 물론 맛있는 초콜렛도 주셨다.
수지가 여섯 살이 되는 아침에 선장실에는 정장을 한 부인과 주 정부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주법에 따라 수지가 학교에 가야하므로 뉴올리언스에서 보호 부모가 온 것이다. 엄마는 차근하게 수지의 옷가지를 챙겨서 수지의 손을 꼭 잡아 보호 부모에게 건넸다. 수지는 눈물을 글썽이며 엄마를 바라봤다. 엄마는 웃고 게셨다. 수지는 엄마가 미웠다. 그래서 얼른 돌아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앞장을 섰다. 엄마의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뒤에서 나직이 들렸다.
보호 부모의 집은 백년이 넘는 불란서식 3층 집에 보호 아이들이 5명이나 되었다. 백인 아이 세 명과 흑인 아이 두 명이 모두 고만고만한 나이라 시끄럽고 하루도 그칠 사이 없이 싸움질을 했다. 이때마다 보호 부모는 아이들을 모두 각자 방에 가두었다. 수지가 있는 다락방은 누워서도 하늘이 보였다. 그리고 멀리 바다가 보였다. 수지에게는 익숙한 혼자만의 시간을 엄마와 본 적이 없는 아빠 생각에 골몰했다.
비가 억수처럼 오는 날 반가운 선장 할아버지가 주 정부 사람과 함께 왔다. 엄마가 이 근처에 오셨다는 기쁜 소식과 함께. 선장 할아버지는 그 큰 손으로 수지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넓은 어깨 안에 포근하게 수지를 감쌌다. 그리고 수지의 귀에 속삭였다. 이제부터 너는 나의 사랑스런 손녀야.
엄마는 하얀 시트 속에 산소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수지를 보고 웃고 있었지만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엄마는 수지를 안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수지에게 바다로 난 큰 창을 가리켰다. 가까이 보이는 바다는 흰 거품을 물고 창밖까지 올 듯 분주했다.
며칠 후 선장 할아버지는 수지를 챙겨서 저녁 만찬에 데리고 갔다. 부두에 한국 차를 실어온 화물선 선장을 위한 만찬이었다. 할아버지는 축사를 했다. 옆에 앉은 한국 선장이 수지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수지는 부끄러워 얼굴을 붉혔다. 할아버지는 축사를 마치자 박 선장을 수지에게 소개했다. 박 선장은 수지의 이름을 다시 물었다. 수지는 가느다랗게 “수지 박이에요”라고 대답했다. 그는 미소를 지었다.
엄마는 다음날 바다가 훤히 보이는 창 곁에서 수지와 바다가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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