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쉽게 설명할 수 있을지, 듣는 분들의 머릿속에 쏙쏙 들어가도록 간추릴 수 있을 지, 고민은 많지만 쉽지가 않아요”
충청북도 충주시의 시티투어 버스에서 만난 40대 초반의 주부는 말했다. 4남매를 키우는 엄마이자 풀타임 직장인이라는 그는 지난 12일 시에서 운영하는 일요 관광프로그램의 문화관광 해설사로 일하고 있었다.
최근 열흘 동안 한국을 다녀왔다. 이전의 방문과는 좀 다른 경험을 한 여행이었다.
평소의 한국방문은 일종의 해갈이었다. 주로 서울과 수도권을 행동반경으로 가족 친지들을 만나는데 시간을 할애했다. 고국을 떠나 사는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근원적 그리움, 의식의 밑바닥에 침전되어있는 고향에 대한, 사람에 대한, 추억에 대한, 모든 익숙한 것들에 대한 목마름을 잠시 해소하는 것이 한국방문의 내용이곤 했다.
그래서 매번 갈 때마다 도시의 아파트들이 더 그악스럽게 위로 치솟고, 정치권에 대한 염증이 좀 더 심해지고, 졸부 티 확연한 소비문화가 더 휘황해지는 외형적 변화들에도 불구하고 정서적 경험의 내용은 비슷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다. 전혀 낯선 사람으로, 낯선 지역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충주에 연고가 있었던 덕분이었다. 평생 처음 가보는 그 도시에서 친지의 도움 없이 독자적으로 여행하려고 마음먹은 것이 한국을 새롭게 경험하는 기회가 되었다.
지방자치제가 자리 잡으면서 활발해진 ‘내 고장 사랑’ 문화, 그에 동참하는 주민들의 진지함은 신선하고 아름다웠다.
충주 지역이 역사가 깊고 문화 유적이 많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여행을 하려니 난감했다. 자동차가 없는 처지에 어디를 어떻게 가야 할지 막막했다. 그래서 인터넷을 뒤지다 알아낸 것이 시티투어 프로그램이었다.
한국에서는 현재 전국의 50여개 시군에서 ‘시티투어 버스’를 운영하고 있다. 자기 고장의 역사유적, 전통놀이 등을 소개하는 관광프로그램으로 대부분 무료이거나 비싸봐야 1-2만원 수준이다. 여행하고 싶은 도시의 시청 관광과에 전화로 예약만 하면 되니 연고 없이 한국의 구석구석을 여행하고 싶은 미주한인들에게는 더 없이 경제적이고 편리한 프로그램이다.
충주의 시티투어는 무료로 매주 일요일에 진행되었다. 아침 10시에 시청 앞 광장에 가니 쾌적한 관광버스와 문화관광해설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중년의 두 여성 해설사들은 아이, 어른 45명을 이끌고 저녁 5시까지 장장 7시간 동안, 우륵이 가야금을 연주했다는 탄금대, 인조 때의 명장 임경업을 기리는 충렬사, 고려시대 절터로 추정되는 거대한 돌 불상의 미륵리사지 등 8-9개 유적을 돌며 정성껏 설명을 해주었다.
당연히 주말 특별수당을 받고 일하는 시공무원이려니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들은 금쪽같은 주말에 돈 한푼 받지 않고 일하는 자원봉사자들이었다.
10년 전 문화센터에서 문화유산에 관한 강의를 들은 사람들이 모여 조직한 충주전통문화회 회원들이라고 했다. 이들은 매달 모임을 가지며 전문가를 초청하거나, 타지역 문화유산을 둘러보며 공부하고, 주말이면 번갈아 시티투어의 해설사로 봉사한다고 했다. 그들의 순수한 열의가 존경스러웠다. 자기 고장의 문화유산에 대한 자부심과 이를 알리려는 사명감이 자연스럽게 학구열과 자원봉사로 이어진 것이었다.
한국에 대한 비자면제 프로그램이 빠르면 다음 달 중으로 시작된다고 한다. 늦어도 올 연말 안에는 무비자 시대가 열릴 모양이다. 그렇게 되면 조만간 한국인 방문객이 두배 이상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여행업계, 요식업계 등 한인 비즈니스들은 기대에 부풀어 있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이보다 반가운 소식은 없다.
아울러 커뮤니티는 좀 다른 방향에서 방문객 맞을 준비를 할 필요도 있다. 방문객을 우리 고장의 손님으로 맞는 준비다. 한인회나 상공회의소 같은 단체들이 힘을 모아 우리도 ‘시티투어’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면 좋겠다. 일주일에 하루쯤 무료로 지역의 명소들을 안내한다면 한국에서 온 손님들이 얼마나 고마워하겠는가. 바쁜 시간 쪼개서 그들을 안내해야 할 이곳 한인들의 부담을 더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선의의 씨를 뿌리면 거둘 때가 반드시 올 것이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