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다호 하면 감자 기르는 순박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지만 미국 최고의 스키 리조트도 여기 있다. 선 밸리가 그곳이다. 1939년 헤밍웨이가 이곳에서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를 집필한 이래 이 지역은 유명 인사와 부자들의 안식처로 자리를 굳혔다. 게리 쿠퍼와 클라크 게이블, 루실 볼과 마릴린 몬로가 단골이었고 케네디 집안사람들도 자주 왔다. 존 케리, 탐 행크스, 클린트 이스트웃, 브루스 윌리스, 스티브 윈, 아놀드 슈워제네거 등이 이곳에 별장을 갖고 있고 헤밍웨이 무덤도 여기 있다.
이곳에서는 미국 갑부들을 위한 파티도 종종 열린다. 그 중 유명한 것 중 하나가 앨런 투자회사가 주최하는 연례 컨퍼런스다. 1999년 7월 이곳에서 열린 행사에는 테크놀로지 붐을 타고 신흥 재벌이 된 억만장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 때 마지막 연사로 강단에 선 사람이 워런 버핏이었다. 버핏은 90년대 후반 미국을 휩쓴 인터넷 열풍에 초연한 태도를 보인 드문 인물의 하나였다. 98년까지 수십 년 동안 미 주가 평균을 능가하는 수익률을 보여 온 그의 버크셔 해서웨이 주식은 99년 들어 침체를 면치 못했다. 그러자 비즈니스 전문지인 바론은 ‘워런, 뭐가 잘못 됐나’라는 제목의 비판 기사를 싣기도 했다.
그가 첫 번째로 보여준 것은 과거 미 주가 동향에 관한 자료였다. 1964년 12월 말 874였던 다우존스 산업 지수는 1981년 12월 말 875였다. 17년이란 긴 세월 동안 주가는 거의 한 푼도 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이어 1920년대 자동차가 생활필수품으로 등장했을 때 ‘새 시대가 도래했다’며 미국인들이 흥분하고 주가가 폭등했던 시절을 상기시켰다. 당시 자동차 붐을 타고 2,000개가 넘는 자동차 회사가 생겼지만 이 중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은 3개뿐임을 강조했다. 자동차가 미국을 바꿔놓은 것은 사실이지만 자동차로 돈 번 투자가는 거의 없었다. 비행기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비행기회사가 생겼다 사라졌지만 지금까지 비행기회사에 투자한 총액을 따져 볼 때 전체적으로는 한 푼의 수익도 남기지 못했다.
그는 주식 시장은 장기적으로 미국 경제 성장 속도를 추월할 수 없는데도 수년 동안 과도하게 올랐다며 향후 수년은 1964년의 재판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경고로 말을 맺었다. 참석자 대부분은 박수로 이에 답했지만 속으로는 “버핏도 이젠 한 물 갔다”는 생각으로 자리를 떴다.
그 후 6개월 후부터 떨어지기 시작한 미 주가는 2년 반 동안 폭락에 폭락을 거듭했다. 다우는 40%, 스탠다드&푸어 지수는 50%, 나스닥은 80%가 떨어졌다. 연방 준비제도 이사회(FRB)가 금리를 1%로 낮춰 부동산 버블을 야기한 것도 주가 폭락으로 인한 경기 불황을 막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그 워런 버핏이 지난 17일 ‘지금은 주식을 사라’는 글을 뉴욕타임스에 기고했다. “다른 사람들이 욕심을 낼 때 두려워하고 두려워 할 때 욕심을 내라”를 신조로 갖고 있는 그는 내년 주가가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처럼 나쁜 뉴스가 쏟아질 때가 주식 투자의 적기라고 말했다.
10일 세계 투자가들이 공포에 빠져들면서 8,000선이 깨졌던 다우 지수는 20일 400 포인트 이상 오르면서 9,000선을 회복했다. 신용 경색의 바로미터인 런던 은행간 단기 금리(LIBOR)도 6.8%까지 올랐던 하루짜리가 1.5%까지 내리는 등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신용 위기가 끝났다고 속단할 수는 없지만 최악은 지났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무엇보다 투자의 귀재 버핏이 산다면 나도 사겠다는 사람이 늘고 있다.
그럼에도 지금이 바닥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저평가 된 것은 항상 더 저평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버핏이 주가 전망을 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성공적인 주식 투자를 하는 비결은 나와 있다. 값이 쌀 때 튼튼한 회사 주식을 뉴스에 구애받지 말고 사 장기적으로 갖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버핏이 가는 길이다. 버핏의 조언은 무시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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