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1K를 좀 들여다봐야지, 한달 전부터 생각만 하다가 미적미적한 것이 큰 실수였다. 지난 주 주식시장이 폭락하면서 널을 뛰길래 놀라서 들어가보니 그 한달새 거의 1만달러가 사라졌다.
나보다 더 오래 401K를 들었던 동료는 1만5,000달러가 빠졌다고 하고, 약사인 내 조카는 2만달 러를 잃었다고 울상이다. 급하게 안전한 곳으로 돌려놓았지만 순식간에 날아가버린 돈이 아깝고 약이 올라 견딜 수가 없다.
전화해보니 한국에 있는 언니들도 울상이다. 주식형 펀드라나 뭐라나, 꽤 많이 사두었는데 완전히 반토막이 나서 원금까지 까먹었다는 것이다. 서민 중에서도 너무나 서민적인 언니들이 주식투자를 했었다니,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아줌마들이 주식투자를 했다는 말과 다름 없는 이야기다.
광고회사에서 일하던 친구 하나는 회사가 문 닫는 바람에 실직했고, 가까운 친지는 바로 얼마 전에 사서 예쁘게 리모델링한 집을 숏세일에 내놓았다. 식당에 가보면 손님이 반으로 준 것이 눈에 보이고, 세탁소에 들러보면 언제나 빽빽하던 옷걸이가 휑하다. 나 같은 월급쟁이들조차 401K가 내려앉아 전전긍긍하고 있으니, 이번 쓰나미 급의 금융위기는 나라와 정부와 은행 뿐 아니라 우리 같은 소시민의 발등에까지 불똥을 튀고 있다.
처음에는 화가 나고 걱정도 되고 불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은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우리가 잃어버린 돈은 땀 흘려 번 돈이 아니다. 집값이 오르고, 주식이 오르고, 권리금이 오르고… 하면서 한없이 부풀어 올랐던 돈, 실체 없이 허수였던 돈이 결국은 뻥 터져서 허공으로 날아간 것이다.
우리 솔직히 얘기해보자. 이 돈 난리에 나의 책임은 하나도 없는 것일까? 나는 전혀 잘못하지 않았는데 순전히 월스트릿의 탐욕으로, 금융정책의 실패로, 누군가의 조화로 이런 사태가 온 것인가?
그렇다고 나는 말 못하겠다. 나도 여건만 되었으면 집을 사고 투자하고 돈을 불리려 애썼을 것이다. 몇년전 한인 은행들의 주식이 엄청 올랐을 때 나도 은행 주식 좀 사서 돈 좀 벌어볼까 생각했었다.
부동산가격이 자고 날 때마다 뛰어오르던 동안에는 누가 에퀴티를 뽑아 또 집을 샀고, 누구는 얼마를 벌었고, 누구는 더 큰 집으로 이사갔고,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지금 이 난리 통에도 환율이 폭등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이참에 여유 돈을 굴려서 환차익으로 돈 좀 벌어볼까, 그런 생각을 한 번도 안 했다면 거짓말이다.
1987년에 ‘월스트릿’이란 영화가 나왔었다. 거기서 사악하고 탐욕스런 스탁 브로커 고든 게코 (마이클 더글러스)가 ‘초짜’ 버드 팍스(찰리 쉰)에게 이런 말을 한다.
탐욕은 좋은거야(Greed is Good) 머리를 올빽으로 넘긴 마이클 더글러스가 어찌나 뻔뻔스럽고 정정당당하게 이 말을 내뱉던지, 그리드 이즈 굿이란 대사는 마이클 더글러스의 까랑까랑한 목소리에 얹혀 지금까지도 사람들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 ‘명대사’가 되었다.
아마 그때부터였지 싶다. 사람들이 내놓고 노골적으로 돈을 밝히기 시작한 것은. 그 전까지만해도 다들 돈을 좋아하긴 했어도 속으로나 그랬지, 그런 표시를 내는 것은 상스럽고 부도덕하게 여겨져서 아무도 돈이 최고야 식의 이야기를 해대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모두 돈, 돈, 돈 하고 있다. 돈이 최고야, 돈만 있 으면 돼, 돈으로 안 되는 일이 없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돈을 불려야 돼, 돈이 없으면 빌려서 라도 돈을 굴리고 만들어야지… 심지어 요즘 한국에서는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에서도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사채놀이를 하며 돈 때문에 폭력도 서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 땀 흘려 일해서 버는 돈은 얼마나 쩨쩨해 보이는가. 돈이 돈을 벌어다주는 공짜 돈, 거기에 홀려 다같이 춤을 추었다. 누구를 탓할 것인가. 너도 나도 미국도 한국도 유럽도, 전세계가 다같이 그렇게 부풀어서 돌아가지 않았던가.
나도 돈을 좋아한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가 좋아한건 돈이 아니라 ‘공돈’이었다. 이토록 값비싼 수업료를 지불했으니, 이제는 좀 ‘제정신’을 차리려고 한다.
탐욕은 좋은 것이 아니다. 탐욕은 언제나 나쁜 것이다.
정숙희
<특집 1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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