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중순부터 안토니오 비아라이고사 LA 시장의 상임고문(senior advisor)으로 출근하는 시장실의 내 사무실 쪽에는 종이컵이나 작은 물병으로 물을 마시는 것을 볼 수 없다. 환경을 보호하자라는 문구가 적혀 있으며 직원 각자 머그컵 하나씩을 쓰고 있다.
사무실에 창문이 있는 경우 전기를 아끼자고 거의 전등을 켜놓지 않는 직원도 있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100장 가까이 되는 리포트를 읽어야 해서 리포트를 구해 달라고 직원한테 부탁했더니 나무를 보호하는 입장에서 프린트된 리포트 대신 컴퓨터 파일로 보내도 괜찮겠냐는 질문을 먼저 받았다.
LA시도 계속되는 예산 적자를 메우기 위해 인건비를 줄이느라고 공석인 직원 자리는 안 채우고 책임을 분담하기 때문에 무척 바쁘게 일하고 있다. 또 시장실 직원들은 자진해서 무급 휴가를 내고 시 예산적자 메우는데 다 같이 힘을 보태고 있다.
2009~2010년도 예산을 세우는데 또 역시 몇백만달러 적자가 예상되면서 LA시 전체 살림 줄이기에 많은 연구를 하고 있다. 환경보호와 절약하는 환경에서 지내다 보니 나 자신도 절약과 환경보호에 더욱 신경을 많이 쓰게 되고 있다.
그래도 이곳 미국 절약생활은 일본 가정에서 하는 절약과는 비교도 안 되는 듯하다. 일본으로 해외유학(study abroad)을 떠난 딸에게서 듣는 그 곳의 절약은 보통 철저한 게 아니다.
USC에 재학 중인 딸 제시카는 4학년 한 학기를 일본 나고야의 대학에 다니면서 일본문화와 언어를 더욱 적극적으로 배우기 위해 대학교 기숙사 대신 나고야 대학 교수님 가정에서 민박(home staying)을 하고 있다. 딸아이가 예기치 않게 접하게 된 일본 가정의 절약과 검소는 일본 언어와 문화에 대한 훈련보다 좋은 훈련이 되는 것 같다.
제시카는 일본에 도착한 후 첫 전화 통화에서 잠자리가 불편하다고 말했다. 자기 방이 우리 집 목욕실보다 더 작고 침대 없이 한국의 삼단요보다 훨씬 얇은 요를 깔고 자는데 일어나면 요를 접어두는 침실문화에 적응하기 힘들다면서 자고 나면 허리가 아프다고 했다.
또 하나 적응하기 힘든 교수님댁 가풍은 식구마다 샤워와 목욕, 세수용 타월을 각자 1장씩 배당받는데 미국에서 쓰던 타월 다 훨씬 작고 얇은 이 타월 하나로 거의 일 주일을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야 보통 세수할 때 쓰는 수건은 따로 있고 샤워 후엔 매일 커다란 새 타월들을 쓰고 지냈으니 일주일 내내 한 장의 타월만 사용하는 것이 무척 힘들어하는 게 안쓰러워서 타월을 3~4개 더 사라고 했더니 그 집 식구들 눈치가 보여 얇은 타월 1장만 더 사서 쓰고 있다고 했다.
목욕탕 물도 한번 받아 두 딸과 엄마, 아빠가 차례로 목욕한다는 설명을 듣고 딸아이는 목욕은 하지 않고 샤워만 하겠다고 했지만 거절했다고 한다. 목욕이 끝나고 나면 물은 버리지 않고 세탁기 빨래할 때 다시 사용하면서 철저히 물을 아껴 쓴다고 한다. 전기 절약도 그 못지않다. 드라이어는 아예 없이 빨래는 햇볕에 말리고 집안에 있는 모든 가전제품의 전기 코드는 평소 빼놓는다고 한다. 무척 더운 지역인데 에어컨은 물론 없고 하다못해 선풍기도 안 쓰고 더위는 부채로 해결하고 머리를 감은 후 헤어드라이어도 안 쓴다고 한다. 고등학교 다니는 두 딸은 컴퓨터는 가끔 쓰지만 저녁에 TV 시청하는 것도 거의 본 적이 없고 주로 잠잘 때까지 공부만 한다고 했다.
가족 각자에겐 음료용 컵도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물, 주스, 우유 등 모든 음료를 마실 때 각자에게 지정된 작은 커피 잔 하나만 사용한다며 인터넷 웹 카메라로 엄마 이 컵이야 하면서 컵을 흔드는 것을 보며 무척 웃었다. 제시카는 이 집 절약정신은 장난이 아니야라며 감탄을 연발한다.
제시카는 또 일본 가정에 사는 여러 좋은 점을 이야기 했다. 우리 세대가 자란 동양식 가정을 유지하는 듯 했다. 집에서 피아노를 가르치는 일을 하는 교수님 사모님은 매일 저녁 식사를 만들어준다고 한다. 일본에 가면 음식을 조금씩밖에 안 먹는 줄 알았는데 매일 다른 메뉴로 여러 가지를 맛있게 해준다면서 미국의 일본 식당에서 먹은 것과는 많이 다른 일본가정 음식문화를 즐기고 있다고 만족해했다. 교수님 가정에서는 거의 외식을 안 하고 주로 집에서 식사를 한다며 얼마 전에는 그 댁 큰 딸의 생일이었는데 집에서 저녁을 먹고 축하파티로 온 가족이 아이스크림 집에 다녀왔다고 한다. 식사와 생일파티를 비롯한 모든 일상을 검소하게 사는 일본 가정에서 딸아이는 배울 게 많은 것 같다. 딸이 배우고 있는 것은 물질의 절약만이 아닌 듯 했다. 아침에 학교 갈 때마다 그 어머니가 하던 일을 멈추고 일본 가정 풍습이라며 문 앞까지 나와 잘 다녀오라고 인사해 주는 배웅을 받고 있다면서 제시카는 그 가정의 따뜻함을 전해주었다.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이곳 미국생활은 그 일본 교수님 가정을 본받아 배울 것이 많은 것 같다.
케이 송/ USC 부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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