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농림수산식품부가 최근 대표적 한국음식 100가지의 표준 영문표기법을 발표했다. 외국인 관광객이 연간 600만명을 넘어서면서 더 이상 주먹구구식은 안 되겠다는 판단이 생긴 것이다. 똑같은 음식의 이름이 책자마다 다르고, 식당마다 다르니 외국인들로부터 헷갈린다는 불평이 안 나올 수가 없다.
국경을 넘나드는 일이 옛날에 이웃 마을 가는 것보다 쉬워지면서 이전에는 생각도 못하던 문제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중 하나가 한국 고유명사들의 영문 표기법을 통일하는 문제이다. 음식 이름을 통일하는 일도 필요하지만 사실은 그 보다 더 급한 문제들이 많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아직도 도시 이름이 영문으로 통일되어 있지 않다. 지난 여름 한국 정부의 TALK 프로그램에 참가하느라 한국행을 준비하던 한 2세 여학생은 며칠 동안 혼란스러웠다. 자신이 어느 도시로 배치되는지 종잡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TALK는 영어권 대학생들에게 한국의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면서 한국을 경험하고 배울 기회를 주기 위해 이명박 정부가 시작한 일종의 장학 프로그램. 위의 학생은 처음 ‘Chungju’에 배치된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당연히 ‘청주’로 생각하고 웹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청주의 영문표기는 ‘Chungju’‘Cheongju’‘Chungjoo’ 등 여러 가지였다.
그래서 영문으로 ‘Chungju’를 검색하니 이번에는 ‘충주’가 뜨는 것이었다. “청주가 아니고 충주인가?”하고 있는데 뒤이어 도착한 계약서에는 영어로 ‘Chungju’ 한글로 ‘청주’로 적혀 있었다. 한국에 도착해서 확인해 보니 그가 배치된 곳은 ‘충주’였다.
중구난방식 영문 표기법으로 사업상의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다. 미국으로 수출하는 부산의 한 무역업자는 수출대금을 받을 때마다 조마조마하다고 한다. 대금을 받기 위해서는 미국의 구매인측 은행에 발송하는 문서에 선박회사, 시청 등에서 뗀 서류를 첨부해야 하는 데 기관마다 ‘Pusan’ ‘Busan’으로 다르게 표기하니 미국에서 보기에는 전혀 다른 도시인 것 같아 지불이 거부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혼선은 한국어와 영어의 음운체계가 전혀 달라서 생기는 일이다. 공신력 있는 기관이 원칙을 정해 통일을 시켰어야 했는데 극히 최근까지도 그럴 필요성이 심각하게 제기되지 않아 지금의 상황에 이르렀다.
미주 한인사회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가족들의 성이다. 불과 20년쯤 전만해도 한국인들이 이렇게 많이 미국에 들어오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여권을 만들거나 영주권 신청을 할 때 이름의 영문표기를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각자 알아서 발음에 따라 표기를 하거나, 남들이 쓰는 대로 따라 쓰거나, 이민수속 대행사에서 써주는 대로 쓰기도 했다.
그 결과 같은 성이라도 영문표기는 정말 다양하다. 이씨는 Lee, Yi, I, Rhee, Rhie 등, 김씨는 Gim, Kim, Kym, Kimm 등 가지각색이다. 똑같은 박씨이면서도 박찬호는 Chanho Park, 박세리는 Seri Pak이니 타민족들이 보기에는 전혀 다른 성이 된다.
문제는 같은 가족 안에서도 서로 다른 표기법을 쓰는 경우이다. 아는 분 중에 1950년대에 유학 온 분이 있다. 성이 전씨인데 처음 미국에 오면서 발음을 따라 ‘Juhn’으로 표기를 했다. 그런데 뒤이어 미국으로 온 형제들은 그 표기법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 동생은 ‘June’, 다른 동생은 ‘John’으로 썼고, 독일로 유학 간 동생은 ‘Chon’으로 썼다. 독일에서 ‘Juhn’이 ‘윤’으로 발음이 되기 때문이었다.
형제들은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며 각자의 표기법에 만족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그들의 2세, 3세가 미국에서 뿌리를 내리면서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할아버지들은 분명 한 형제인데 그 후손들은 성이 모두 달라서 전혀 다른 가족들이 되고 말았다. 몇 대 더 내려가면 한 가문인 줄도 모르는 상황이 생길 판이다.
영문 표기법의 통일은 생각보다 시급하고 중요하다. 한국에서는 종친회 단위로 성의 표기법을 정해 추천하기도 한다고 한다. Park, Pak, Bak 등 다양한 표기법을 하나로 통일해야 할지는 더 논의가 필요한 문제이다. 하지만 같은 가족이면 같은 표기법을 쓴다는 원칙 하나만은 분명히 해야 하겠다. 한국에서 이민 올 형제가 있다면, 처음으로 여권을 만드는 가족이 있다면 성을 어떻게 표기해야 할지 반드시 알려주자. 가족이 가족으로 남는 길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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