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먼데이’는 1987년 10월19일 월요일 주가가 무려 508포인트나 폭락하며 미국 경제를 흔들었던 사건에서 비롯됐다. 요즘 미국 증시를 보노라면 ‘널뛰기’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매일 매일이 ‘블랙’이다.
어느 누구도 신용경색이 불러온 현재의 경제상황에 대해 명쾌한 해석과 예측을 내놓지 못할 정도로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면 “이제 미국은 어디로 가나?”란 말이 대화의 단골메뉴가 돼 버렸다. 서민들은 미국 경제의 끝 모를 추락에 점차 숨이 막히고 있다.
7,000억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숫자가 단숨에 미국 경제를 회복시킬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없어 보인다. 때문에 일반 서민들은 경제가 언제 회복하느냐 보다, 우리 생활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게 되는 것인 언제인가에 초점을 맞추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마치 거침없이 달려오는 경제 불황 쓰나미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며 당하는 듯한 느낌이다.
7일자 USA투데이 지에는 경기침체로 미국인들의 스트레스가 깊어지고 있다는 기사를 실어 눈길을 모았다. 이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에 비해 ‘분노’를 느낀다고 답한 응답자가 60%로 10%포인트, ‘불면증’에 시달린다는 사람이 52%로 4%포인트, 과식 등 건강하지 못한 식사습관이 48%로 5%포인트가 각각 증가했다. 특히 응답자의 80%가 경제문제로 인한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현재의 경제상황이 일반 서민들의 생활과 사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반증했다.
그리고 이 같은 스트레스의 악영향은 벌써 나타나고 있다. 지난 6일 LA 인근 포터랜치의 한 고급 주택에서 일가족 6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사건을 수사중인 경찰 발표를 종합해 보면 일단 이 사건은 금융회사 매니저로 한 때 잘 나가던 40대 가장이 실직에 따른 경제문제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결국 가족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인다.
이 가장이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기까지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을 것이다. 가족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의 입장에서 탈출구를 찾지 못하는 현실 앞에 남은 것은 절망뿐이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절망은 삶의 포기로 이어졌을 것이다.
경제가 나빠지면 가정이 흔들리게 마련이다. 부부간의 불화도 생기고, 개인적으론 압박감이 심화되고, 또 다시 마찰이 일어나는 악순환의 연속이 찾아오기 쉽다. 그리고 이는 불안과 초조, 나아가서는 분노로 이어져 결국 우울증으로 발전하곤 한다. 그래서 임계점에 도달하면 어느 순간 폭발하게 된다. 그래서 이 사건처럼 자신은 물론 무고한 가족까지 해치는 참극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 사건을 주목하는 것은 우리 한인사회에서도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일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새로운 얘기도 아니지만, 10년간 이어진 부동산 시장의 활황은 소비능력을 극대화시켜 놓았다. 심지어 집값이 폭등하면서 에퀴티를 빼내어 무리하게 또 다른 주택을 구입한 경우도 적지 않다.
문제는 그 같은 과정을 통해 만들어 진 가정의 재무구조가 지금 바로 우리의 발목을 잡고, 목을 조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 만큼 경제적·정신적으로 힘든 시기를 맞이하고 있으며, 우리 가정에 위기를 불러올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는 얘기다.
몇 년 전 한인사회에서는 가장이 가족을 살해하고 자살하거나, 자녀를 살해하고 자살을 시도하는 끔직한 사건이 잇달 발생한 적이 있었다. 또 특이한 것은 이런 유형의 사건들은 한 번 터지기 시작하면 연이어 발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굳이 ‘베르테르 효과’란 말을 연결 지을 필요도 없다.
내재된 불안감 또는 분노가 팽배해 지는 것을 방치하면 터지게 마련이다.
이럴 때 일수록 개인과 가족이 정신적으로 건강해 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본인 스스로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주변의 관심과 도움도 절대적이다. 그래야 숨을 쉴 수 있다. 말 한 마디라도 따뜻하고, 격려와 위로가 담겨야 한다.
일반 서민들이 현재의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다. 절약과 함께 용기와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쌓여가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어쩌면 서민들에게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발등의 불일지 모른다.
황성락 특집 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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