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미국인들 만큼 소비를 많이 하는 사람들은 없다. 선진국 중에서도 유럽 사람들의 소비량은 미국을 따르지 못한다. 미국은 워낙 물자가 풍부하고 돈이 많았기 때문에 소비에 길들여져 있다.
미국에서는 곳곳에 소비가 지나쳐 과소비 현상이 넘쳐나고 있다. 사람이 없는 빈 빌딩이 불야성을 이루고 불요불급한 차량이 도로를 메우고 엄청난 양의 생활 쓰레기가 나오고 영양 과잉으로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살이 찐 사람들, 이런 것들이 미국의 과소비 현상을 잘 말해 준다. 세계 인구의 5% 밖에 안 되는 미국이 세계에 탄소 배출량의 25%를 만들고 있으니 에너지 소비가 얼마나 많은지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엄청난 소비가 거대한 미국 경제를 떠받치고 있다.
그런데 소비가 지나쳐 수입보다 훨씬 많아진다면 곤란한 문제가 생긴다. 개인의 경우에 빚이 늘어나면 결국에는 파산을 하게 되며 이로 인해 경제적, 사회적 무능력자가 되는 비참한 처지로 전락한다.
미국의 과소비가 바로 이와 흡사하다. 미국은 만성적인 재정적자와 무역적자가 누적되어 세계 최대의 채무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빚을 계속 늘려가면서 과소비가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다.
지금 미국 경제와 세계 경제를 위기에 몰아넣고 있는 주택시장의 붕괴는 바로 이 과소비로 인해 발생한 것이다. 주택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가자 그 주택을 담보로 빚을 내서 썼는데 주택 가격이 떨어지면서 빚을 갚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그리하여 개인이 파산하고 금융기관이 부실해지면서 경제 전반에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
미국의 경제가 10년간 30~40% 밖에 성장하지 못하는데 지난 10년간 300~400%나 오른 집값을 담보로 융자하여 소비를 했으니 이만저만한 과소비가 아닌 것이다.
이리하여 이제 미국 경제가 붕괴될 위기에 처하자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 구제금융이다. 양대 국책모기지회사인 패니매와 프레디맥, 미국 최대 보험사인 AIG의 도산을 구제 금융으로 막아낸 정부는 월스트릿 투자은행들의 도미노 붕괴를 막기 위해 7,000억 달러의 구제 금융을 추진하고 있다.
이같은 조치는 금융위기가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고육책이다. 미국의 금융기관이 줄줄이 도산하면 미국 뿐 아니라 세계의 경제가 위기를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가 빚을 내서 민간회사의 투자 실패를 떠맡는다는 점에서 경제 원리에 맞지 않고 국민적 공감을 얻기 어려운 점이 없지 않다. 더욱이 미국 경제는 이와 같은 구제 금융으로 인해 장기적으로 큰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 현재 미국의 누적 재정적자는 9조6,000억 달러라고 하는데 여기에 7,000억 달러의 빚이 더 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 금융위기의 해소와 경기부양에 더 들여야 할 돈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격으로 엄청난 액수가 소요될 것이다.
전문가들은 1조 내지 2조 달러의 구제금융이 필요할 것이며 10년 후에는 정부 부채가 15조 달러로 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미국의 경제가 근본적으로 허약해져서 경제대국의 위치를 상실하게 될 수 있다.
개인이 파산 직전에서 부채를 갚고 기사회생하려면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고 저축하는 근검절약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국가 경제도 이와 같다. 한국이 6.25의 폐허에서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열심히 일을 하였기 때문이다. 2차 대전에서 패망한 독일이나 일본이 재기할 수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이다.
미국 경제를 살리는 근본대책은 고질적인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를 줄여서 미국 경제의 체질을 강화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다. 이번 금융위기의 충격으로 미국인들의 생활이 근검절약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고 한다. 한 조사에 따르면 금융위기 이후 미국인들의 소비가 10% 줄었다고 한다. 소비가 줄면 경기 침체의 우려가 크지만 그렇다고 빚을 늘리면서 소비 수준을 유지할 수는 없는 것이다. 과소비로 인해 발생한 이 경제위기는 또 다른 과소비가 아니라 근검절약으로 돌파해야 한다.
이기영
뉴욕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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