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대선처럼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드라마틱한 선거도 흔하진 않을 것이다. 경선 초반 언더독으로 출발했던 버락 오바마와 존 매케인이 양당 후보로 등극하면서 본선으로 접어든 후 생면부지의 페일린 돌풍이 판세를 뒤집더니 지난주 불어 닥친 금융위기 태풍이 다시한번 표밭을 흔들어대고 있다.
금융태풍의 위력은 카타리나의 3급은 족히 넘어설 듯싶게 미국을 넘어 전 세계를 강타하며 숨 가쁘게 요동치고 있다. 지난 열흘 이 같은 실제 위기상황의 와중에서 두 후보는 각자 대응 능력의 단면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두 사람의 평소 특성을 대조한 LA타임스의 표현이 흥미롭다. ‘한 사람은 뜨겁고, 한 사람은 서늘하다. 한 사람은 즉각 행동에 돌입하고, 한 사람은 신중하게 행동을 자제한다. 한 사람은 이단아를 자처하고 한 사람은 중재역을 자원한다’ 다 아시겠지만 전자는 매케인이고 후자는 오바마다.
오바마는 입장표명을 잘 안하는 평소대로 대응에 신중했다. 상대진영에서 ‘실종’됐느냐고 비아냥댈 정도였다. 자신의 경기부양책에 더해 규제강화등 전제조건을 제시하긴 했지만 정부의 대책에 정면제동을 거는 언행은 삼갔다. 그러나 한 성질로 이름난 매케인은 이번에도 그 충동적 행동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리고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금융위기 첫날인 지난 주 월요일부터 수세에 몰렸다. 스스로 “난 경제는 잘 모른다”고 만천하에 공표했던 사람답게 첫 언급부터 서툴렀다. 부시와의 거리두기조차 깜빡 잊은 듯 부시행정부의 주장을 그대로 복창했다. “우리경제의 기초는 탄탄하다” 글쎄, 경제학적으론 사실일 수도 있으나 정치적으로는 ‘재난’이었다. 화요일엔 AIG보험에 대한 정부구제를 강력반대하다가 하루뒤 수요일 정부가 구제를 발표하자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맥없이 물러섰다.
결정타는 목요일에 터트렸다.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증권거래위(SEC) 크리스 콕스위원장을 해고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것이다. 투자산업에 대한 연방정부 최고 감독관이라 할 수 있는 그 직책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사임압력은 줄 수 있지만 해고는 못한다, 콕스는 부시이임과 함께 사임의사를 이미 밝힌 바있다 등등 기회를 놓칠세라 각 미디어들의 반박촌평이 잇달았다. 대표적 보수언론 월스트릿 저널마저 ‘원칙도, 지식도 없고…경제문제에 대해 이해도 못하며…대통령답지 못하다’고 혀를 찼고 “오바마의 경험부족은 시간이 해결해주겠지만 매케인의 충동적 행동은 고쳐질 수 있을까, 대통령감으로 어느 쪽이 더 적절치 않은가”라는 개탄도 보수진영에서 나왔다.
지난 주말 발표된 7천억달러 금융구제안과도 이번 주 내내 씨름을 거듭했다. 자신이 일생 고수해온 규제완화의 소신을 굽혀 규제강화를 절대전제 조건으로 내세웠고 부실금융 경영진의 임금을 40만달러(미 대통령의 연봉액수) 이하로 낮추어야 한다는 고집도 굽히지 않았다.
급기야 24일 매케인은 초강수를 던졌다. 선거운동을 잠정중단하고 국가위기의 소방수를 자처하며 워싱턴으로 날아간 것이다. 내일로 다가온 첫 TV 토론도 연기를 요청했다. 오바마가 즉각 거절했으니 그 성사여부는 24일 오후 현재 불분명한 상태다. 아마도 “정치를 초월해 국가를 먼저 생각하는 리더의 자세”와 “대통령이라면 동시에 한가지 이상 처리할 능력은 있어야하는 것 아닌가, 지금이야말로 유권자들에게 후보의 소신을 알려야할 때”라는 양진영의 공방전이 이어질 것이다.
한 경제학자는 “도대체 이같은 어려운 시기에 왜 대통령이 되려고 하느냐”고 묻는다. 금융위기이전부터도 차기행정부의 난맥상이 눈에 훤히 보여서다. 현재 미연방정부의 부채액은 9조6,340억 달러에 달한다. 차기 대통령은 이번 구제금융 아니라도 4,000억달러 적자의 빚더미 살림을 물려받게 된다. 달콤한 감세공약이나 교육과 헬스케어 개선 약속 모두가 물거품이 되기 십상인 것이 현실이다.
이 어려운 상황에 더해진 금융위기는 두 후보 모두에게 난감한 이슈다. 당장 눈앞에 닥친 금융구제안에 대한 입장표명 자체도 정치적 위험부담을 안고 있다. 둘 다 아직 찬반 입장은 유보하고 있는 상태지만 곧 상원표결에 참가해야 한다. 나라의 경제안정이 걸려있는 사안에 반대하면 무책임하게 보일 것이고 그대로 찬성하면 유권자의 분노를 살 수도 있다. 경제문제에 관해선 여론의 신뢰도가 앞서가는 오바마 보다는 매케인 쪽이 다급하다.
부시와 차별화하면서 대중과 손잡는 ‘포퓰리스트 개혁가’를 지향하는 전략도 현 상황에선 잘 먹혀들지 않는다. 월가의 금융위기가 매케인을 정치적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매케인의 ‘위기’는 지난 며칠 달라진 여론조사 결과가 말해준다. 오바마의 상승세가 완연하다. 조사에 따라 3~9% 포인트 리드를 기록했다. 그나마 금융위기가 10월말에 터지지 않은 것만도 매케인에겐 다행이다. 재도약의 기회가 남아있다는 뜻이다. 또 다른 즉흥적 깜짝 쇼가 재도약의 계기를 주기는 힘들 것이다. 지금 최고의 묘약은 ‘미숙한’ 오바마를 압도할 수 있는 원숙한 경제 플랜이다. 현 경제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한 노련한 리더가 내미는 확신에 찬 경제정책이라면 떠다니는 유권자층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표밭의 상황은 확실한 오바마 표 40%, 확실한 매케인 표 40%, 그리고 부동층 20% - 이제 선거는 꼭 40일 남았다.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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