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앞에서 김정일은 어떤 평가를 받을까. 올해로 66세인가. 그 김정일의 유고(有故) 가능성을 점치는 보도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 보도의 행간 행간에서 비쳐지는 건 60년이나 넘긴 수령 절대주의 체제가 숨을 헐떡이는 모습이다.
“하긴 소련 공산체제도 70여년 만에 무너졌으니…” 동시에 불현듯 떠올려진 생각이다.
현실과 역사의 평가는 다를 때가 많다. 인기가 전혀 없던 지도자다. 그러나 역사의 평가는 아주 후하다. 그 반대의 경우도 적지 않다.
폭압정치도 그런 폭압정치가 없다. 엄청난 살육도 저질렀다. 악마의 화신 같은 지도자다. 그러나 역사의 평가는 긍정적일 수도 있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이 이런 경우다.
김정일은 그러면 어떤 평가를 받을까. 주체를 강조했다. 노상 민족을 외치면서. 후대의 평가는 정반대로, 민족의 배신자도 그런 배신자가 없다는 쪽으로 기울지 않을까.
그 체제 하에서 엄청난 인명이 희생됐다. 북한 주민들은 여전히 폭정체제에서 신음하고 있다. 이 때문만이 아니다. 수명이 다해가는 김정일 체제는 ‘민족분단 영구화란 유산’을 남길지 모른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김정일 유고설과 관련해 각종 시나리오가 펼쳐지고 있다. 그 시나리오들은 그러나 한 가지 접합점을 보이고 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중국의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다.
황장엽씨의 견해가 우선 그렇다. 북한 문제의 모든 키는 중국이 쥐고 있다. 그러므로 김정일 이후 친 중국 정부가 들어서는 것은 불가피하다. 이후 중국식 개혁개방으로 간다는 것이다.
이는 권력승계가 비교적 순조롭게 됐을 경우다. 그렇지 않을 경우 중국군 진주 가능성은 100%라는 지적이다. 황장엽씨 만이 아니다. 북한의 급변사태 발생 시 중국군 한반도 개입은 필연이라는 관측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미 전략연구소(CSIS)가 내놓은 보고서다. 중국 인민해방군(PLA)은 김정일 정권붕괴 시 치안회복과 핵 관리를 위해 군을 투입하는 비상계획을 가지고 있다. 가능하면 유엔의 이름으로 군을 투입할 것이다. 그러나 단독 군사개입도 불사한다는 게 중국의 복안인 것으로 CSIS 보고서는 밝히고 있다.
그러면 중국의 군사개입을 국제사회는 용인할까. ‘그렇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북한문제와 관련해 미국의 넘버1 우선순위는 확실한 핵무기 제거다. 중국이 그걸 보장한다. 그럴 경우 중국군 투입을 굳이 반대할 필요가 없다.
미군의 북한 투입에는 상당한 모험이 따른다. 최악의 경우 엄청난 사상자 발생이 가능하다. 이라크 전에서 불과 수천명의 전사자를 냈다. 이것도 감당 못하는 미국이다. 때문에 유사시 북한에 군을 투입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는 중국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북한의 엘리트 그룹은 중국의 개입을 내심 바라고 있다. 중국의 군사개입을 용이하게 하는 또 다른 요소다. 북한 지배층이 가장 꺼리는 사태는 한국의 개입이다. 이 경우 북한 체제는 급격히 소멸되면서 흡수통일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동시에 북한의 지배층은 모든 기득권을 잃게 된다.
이런 사태를 북한 엘리트들은 극력 회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친중 정권 하에서는 기득권이 그대로 인정된다. 때문에 북한 지배층의 동의하에 북한은 중국의 위성국가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북한문제는 외교부 사항이 아니다. 인민해방군 관할 사항이다. 중국 지도부는 북한의 핵이나 권력승계 문제를 외교가 아닌 군사적 문제로 보고 있다. 북한문제에 대한 중국 군부의 이 같은 막강한 영향력은 유사 시 중국군 개입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친중 괴뢰정권이 김정일 이후 권력공백을 바로 메우고 들어섰다. 어떤 결과가 올까. 주체노선은 포기될 것이다. 그러나 그 자리를 차지하는 건 여전히 공산당 최우선 원칙이다. 변종의 사회주의 체제다. 새 지도부는 그 체제에 매달린다. 그 결과는 분단의 영속화다.
북한을 내려다보고 있는 중국 심양군구 병력은 75만이 넘게 증강됐다고 한다. 유사시에 대비해서다. 이 병력이 투입됐을 때 어떤 결과가 올까. 너무나 폭발적이어서 예측이 어렵다. 북한의 ‘제4 동북성화’가 그 악몽의 하나다. 한국마저 중국의 영향권에 빠져들 수 있다. 하여튼 한국으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시나리오는 시나리오일 뿐이다.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보장은 없다. 문제는 한국의 통일의지다. 강력한 통일의지를 대내외에 천명한다. 그리고 한미동맹을 축으로 외교의 인프라를 두터이 할 때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역설이지만 그 길만이 ‘김정일은 최악의 반(反)민족적 인물’이란 후대 역사의 평가를 벗어나게 해줄지도 모른다. 포스트-김정일의 타이밍은 민족통일의 기회도 될 수 있으니까.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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