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 사고로 목숨을 잃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한 통계를 보니 벌에 쏘여 죽을 확률의 절반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비행기보다 훨씬 안전한 것은 물론이다. 비행기도 안전하지만 타야 할 일이 생기면 일시적으로 두려움이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하지만 출퇴근 길 열차 이용자들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며 공포를 느끼는 일이란 없다.
그런데 지난 주말 메트로링크와 화물열차 충돌 참사로 무려 25명이 넘는 귀한 생명이 희생됐다. 날벼락이란 바로 이런 사고를 두고 하는 말이다. 퇴근길 메트로링크에 느긋하게 몸을 실은 채 책과 신문을 읽거나 차창 밖 풍경에 눈길을 주고 있던 승객들 바로 앞에는 상상하기 힘든 아비규환의 참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열차에 올라타면서 이런 참사의 가능성을 떠올린 승객이 한명이라도 있었을까.
조지 부시 현 대통령의 아버지인 부시 전 대통령은 언젠가 한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구 소련이 붕괴한 후 나는 사람들로부터 ‘미국의 적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미국만이 수퍼 파워로 남게 됐는데 과연 누가 미국을 위협할 수 있겠는가 라는 전제가 깔린 질문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의 적은 예측할 수 없는 미래와 불안정성이라고.”
우리들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그것이 행운이든 불행이든 말이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가운데 발생한 열차충돌 참사는 미래의 불확실성을 다시 떠올려 준다. 이것을 가장 실감나게 깨우쳐 준 것은 7년 전 발생한 9.11테러였다. 여느 날처럼 활기차게 2001년 9월11일의 아침을 시작하던 수많은 미국인들이 미증유의 테러로 목숨을 잃었다. 이 국가적 비극을 통해 사람들은 삶의 불확실성과 예측 불능을 실감해야 했다.
‘불확실성’이라는 단어를 대중화 시킨 사람은 경제학자 갈브레이스였다. 그가 1970년대 상황을 진단하며 내놓은 책의 제목이 유명한 ‘불확실성의 시대’이다. 이 책은 당시 오일쇼크와 맞물리면서 경제학 서적으로서는 드물게 공전의 판매고를 올렸다.
하지만 갈브레이스가 진단했던 시대는 지금의 불확실성과 비교하면 ‘확실성의 시대’라고 부를 만하다. 개인들 삶의 불확실성이야 항상 그래왔던 것이지만 상황의 불확실성들이 더해지면서 프랑스의 석학 에드가 모랭이 표현한 대로 ‘어둠과 안개의 세계’가 계속되고 있다.
요즘 많은 이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것은 경제상황의 불확실성이다.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도 확실하게 미래를 전망하지 못한 채 갈팡질팡이다. 유가만 해도 그렇다. 금년 초 배럴당 90달러 정도에 거래되던 유가가 150달러에 육박하자 곧 200달러에 도달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유가는 하락세를 거듭해 현재 100달러 밑에서 거래되고 있다. 불확실한 유가 전망 속에서 돈 없고 힘없는 서민들은 힘겹게 개솔린 가격에 적응해야 했다. 결과론적으로 유가 전망을 둘러싸고 벌어진 수선 속에서 심한 마음고생을 했다.
금융시장 불안도 마찬가지다. 도무지 합리적인 전망이 나오지 않는다.
“수치상으로는 실적이 분명 괜찮지만 언제 어디서 무엇이 터질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 지뢰밭을 지나는 기분”이라는 한 한인은행 관계자의 토로 속에서 불안감이 그대로 묻어난다.
파산신청으로 금융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리먼브러더스 주식이 60달러를 넘나들던 2년 전 이 은행이 망할지도 모른다고 전망했다면 필경 “미친 소리”라는 핀잔을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됐다. 한 한인은 몇 개월 전 인디맥 은행이 문 닫을지 모른다고 지인에게 조언했다가 상대가 벌컥 화를 내는 바람에 무안을 당했다. 무안 당한지 며칠 되지도 않아 인디맥 은행 앞은 예금 인출자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불확실성을 만들어 내는 것은 인간의 실수와 증오, 그리고 탐욕이다. 그래서 세상은 나날이 더욱 불확실해질 수밖에 없다.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한 미래보다 더 큰 적은 이런 냉엄한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망각이다.
불확실한 투자에 남의 돈 끌어다가 쏟아 부을 사람들은 없다. 그런데도 확실하다며 무리하게 빚을 내 밴드왜건에 올라탔다가 패가망신한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 확실하다고 확신했던 것이 불확실했던 것이다. 자기자본 비율이 낮은 거대 투자은행들이 속속 쓰러지고 있는 것은 개인들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불확실성을 한시라도 잊지 않는다는 것은 겸손과 신중, 그리고 지금의 순간에 충실함을 뜻한다. 그러고 보니 9월에는 유독 인간의 실수와 증오와 탐욕에 의한 사건·사고들이 많이 일어났다. 그런 점에서 9월을 ‘불확실성 인식의 달’이라 부르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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