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둥지를 둔 기러기는 태양의 동쪽 둥지에서 밤새껏 송편을 빚고 추석을 맞이하였다. 기러기는 보름달이 지기 전에 달의 서쪽 둥지에서 자식을 기다리는 꼬부랑 할머니를 찾아 쉬어갈 섬도 없는 태평양을 날고 있었다. 일 년 중 가장 휘영청 밝은 보름달은 기러기의 항로를 서취라이트 같이 비쳐주며 빨리 따라 오라고 재촉하였다. 태양의 동쪽에 새로 만든 둥지에 아이들을 두고 달의 서쪽 낡은 둥지에서 자식을 기다리는 늙은 부모님을 찾아다니는 착한 사람들의 영혼을 담아 기르기는 사람 “인(人)”자를 그리며 밤에만 날아다닌다. 뒤로는 엄마와 아들 기러기, 그리고 삼촌과 조카 기러기가 앞에서 힘차게 노래를 부르며 어서 따라 오라는 아빠 기러기를 뒤따라 날고 있었다. 아빠와 삼촌은 선두를 바꾸어가며 길을 인도하였고 그들이 부르는 고향의 노래는 가을밤 하늘을 메아리치고 있었다.
이것이 내일이면 우리가 또 한 번 고향을 떠나 맞이하는 추석의 느낌일 것이다. 우리 모두가 20년, 30년, 또는 반백년을 조국을 떠나 살았어도 민족의 명절인 추석이오면 너 나 할 것 없이 마음은 고향을 향해 날고 있나 보인다. 조상님 뼈가서 묻힌 곳에 성묘를 하고 송아지 동무들과 놀던 마을에 친구를 만나려 가는 길이다. 어머니가 해주는 햅쌀밥 내음이 코끝에 스치고 신토불이 산나물과 햇과일이 너무도 먹음직 서러워 침을 꼴깍 삼켰다. 풍년이 들어 무르익어가는 벼가 황금물결을 이루고 있는 논에서 메뚜기를 잡고 있는 동네 아이들이 눈앞에 보인다. 빨간 감이 주저리 주저리 달린 감나무 가지는 제 무게에 못 이겨 돌담 너머로 허리를 기대고 있었고, 영글다 못해 터져버린 밤송이는 우리 가슴에 새겨진 한 폭의 그림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우리가 사는 미국에는 추석에 비유할 수 있는 추수감사절이라는 명절이 있다. 오늘로부터 두어 달 정도 지나면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추수감사절이 찾아올 것이다. 가족들이 함께 모이고 터키요리에 펌킨 파이를 먹으며 휴일을 즐긴다. 추수감사절은 미국사람들이 일 년 중 전화를 제일 많이 거는 날이라고 들었다. 나는 내 조국에 명절이오면 귀성객의 차량행렬이 꼬리를 물고 가는 것을 보았는데, 미국 젊은이들도 오늘만은 찾아가보지 못하는 고향의 부모님께 전화로 인사를 드린다. 그러나 추수감사절이 아무리 좋아도 나에게는 추석의 정서를 대신해 주지 못하고 있다. 단 한 가지 좋은 것은 미국의 많은 명절이나 축하해주어야 할 날들 중에서 다른 사람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명절이 추수감사절이다. 그저 많이 먹고 마시고 텔레비전으로 풋볼을 보며 쉬는 날이다. 명절이나 휴일은 다 좋지만 그래서 나는 추수감사절을 더욱 좋아한다.
우리는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라는 속담을 기억하고 있다. 그만큼 추석은 풍요롭고 화목하고 즐거운 날이라는 것을 표현한 말이다. 한가위의 ”한“은 ”크다“ 는 뜻이며 ”가위“는 ”가운데“를 말하는 것으로 큰 보름달을 의미하고 있다. 또한 중추절이라 함은 가을을 초추, 중추, 종추, 석달로 나누어 음력 팔월이 중간에 있으므로 붙은 이름이다. 추석에 행해지는 세시풍속으로는 벌초와 성묘, 차례에 이어 강강수월래, 씨름, 거북놀이, 소놀이, 반보기 등을 들 수 있겠다. 추석날에는 농사일로 바빴던 일가친척이 서로 만나 하루를 즐기는데 특히 시집간 딸이 친정어머니와 중간지점에서 만나 반나절을 함께 회포를 풀고 가져온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즐기는 것을 중로상봉(中路相逢)이라고 하며 반보기라는 만남의 풍속이 여기에서 유래하고 있다.
이런 풍속들이 고향에서도 차츰 보기 힘들어져 가고 있으니 멀리 외국에 사는 우리들에게는 그저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같이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내일 추석날에는 중로상봉의 정서를 그리며 고향친구와 점심약속을 잡았다. 오늘만은 잡곡밥도 아닌 하얀 햅쌀밥과 소고기국에 산채를 걸쳐 먹어보련다. 그리고 찻집에 들려 녹차를 마시고 송편을 맛보며 고향을 찾아보기로 약속하였다. 이젠 달의 서쪽 낡은 둥지에서 아들을 기다리는 엄마 기러기도 가신지 오래다. 목을 길게 빼고 태평양을 날아갈 여력도 없지만 보름달이 솟아오르기를 기다리다 고향의 노래를 부르며 추석을 지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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