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월) 초저녁 7시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홈구장 AT&T 팍 기온은 60도였다. 기온은 밤이 깊어가는 속도보다 빠르게, 이닝이 깊어가는 걸음보다 잰 걸음으로 곤두박질쳤다. 시속 12마일의 꽤 거친 바람과 맞물려 체감기온은 거의 빙점에 가까웠다. 뿐만이 아니었다. 꽁무니를 뺀 한여름이 다시 찾아온 듯 땡볕더위가 기승을 부린 일요일과 대비돼 월요일의 냉기는 한층 오싹하게 느껴졌다. 가죽외투에 털모자에 장갑에, 적어도 TV카메라가 간간이 골라잡은 관중들 모습은 그랬다.
늦여름 혹은 초가을 난데없는 추위는 그러나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실제 AT&T 팍 열기는 대단했다. 그 날씨에 그것도 월요일 밤에 그곳을 찾은 관중 숫자만 3만명이 넘었다(3만252명, 총 수용인원의 72.7%). 베이 브리지 너머 오클랜드 A’s의 홈구장 매카피 콜러시엄에서는 주말 경기에도 그만한 관중을 끌어들이기 버거운 걸 감안하면, 게다가 자이언츠의 플레이오프 진출이 사실상 좌절된 상황인 것을 감안하면 더더욱 대단한 관중동원이다.
팀 린시컴. 월요일 밤 AT&T 팍의 ‘이상한파 속 이상열기’ 속사정은 자이언츠의 이 애송이 신인투수를 빼놓고는 설명되기 어려울 성 싶다. 지난해 9월 말 자이언츠의 아주 오래된 간판스타 배리 본즈를 내보낸데다 올해 본즈의 빈 자리를 어느정도 메워줄 것으로 기대했던 좌완선발 배리 지토가 아주 오래된 부진에 허덕인 가운데, 생각지도 않게 우뚝 솟아올라 울트라 피칭쇼를 보이며 자이언츠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 해온 린시컴이 내셔널리그 웨스트 디비전의 강호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를 상대로 출격하는 밤이었으니, 월요일이고 뭐고 밤이고 뭐고 바람 찬 야구장으로 그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 것이었다고 풀이하는 게 옳을 것 같다.
팬들의 성원에 린시컴은 호투로 보답했다. 8.1이닝동안, 그러니까 9회초 1아웃 상황까지 공 127개를 뿌리며 7안타와 2볼넷으로 2점만 내줬다. 그 사이 전매특허 삼진아웃은 9명을 잡았다. 공 127개 중 82개가 스트라익이었을 정도로 공격적인 피칭으로 막강 D백스 타선을 압도하며 연봉 40만5,000달러에 불과한 이 스물네살 우완투수는 시즌 16번째 승리(3패)를 거뒀다. 안그래도 내셔널리그 1위인 그의 방어율은 2.49로 좀더 낮아졌다. 탈삼진 1위(225개) 자리 역시 부동이다. 다승 부문에서는 D백스의 브랜던 웹(19승)에 이어 NL 2위다.
NL 사이영상 후보로 손색없는 린시컴의 호투에 자이언츠 타선은 길고 짧은 12안타로 신명장단을 맞췄다. 신인 동기생 두명(알렉스 힌샤와 서지오 로모)도 린시컴에 이어 각각 아웃카운트 한명씩 맡았다. 힌샤는 4차례, 로모는 3차례 공을 뿌렸다. 스코어 6대2. 자이언츠는 이날 승리로 63승80패가 됐고, 올시즌 내내 디비전 1위를 지키다 막바지 굳히기 단계에 들어선 엊그제 LA 다저스에 추월당해 오금이 저린 D백스는 비로소 패배가 더 많아졌다(71승72패).
린시컴과 자이언츠로선 옥의 티, D백스로선 천만다행은 9회초 F백스의 2득점이었다. 9회초에 삐끗하지만 않았다면 린시컴은 ‘못해도 완투승, 잘하면 완봉승’을 낚을 수 있었다. 선두타자 크리스 영을 유격수 플라이로 처리할 때만 해도, 린시컴의 최소한 완투승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였다. 후속타자 애담 던 우전안타에 이어 코노 잭슨의 좌익수쪽 2루타로 1사 1, 3루. 마크 레이놀즈에게 볼넷을 허용하며 1사 만루.
그래도 점수는 6대0, 린시컴은 누상의 주자들 모두 득점을 올린다 해도 능히 이길 수 있는 상황이었다. 자이언츠의 브루스 보치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한두해가 아니라 10년 20년 내다보고 가야 할 신인투수에게 완투승이나 완봉승 따위를 얹혀주자고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듯했다. 엉거주춤 엉덩이를 빼고 뒤뚱뒤뚱 마운드로 걸어나갔다. 린시컴은 공을 건네주고 덕아웃으로 물러나야 했다. 그 뒤, 대타 제이미 댄토나의 1루수쪽 내야땅볼 때 3루주자 던이 홈인하고, 바뀐 투수 힌샤의 에러를 틈타 잭슨이 홈을 밟았다. ‘린시컴의 주자들’이었으므로 린시컴의 자책점이 됐다. D백스의 마지막 타자는 자이언츠의 마지막 투수 서지오 로모가 삼진으로 물리쳤다.
자이언츠의 점수뽑기는 3회말에 무더기로 이뤄졌다. D백스 선발투수는 유스메이로 페팃. 선두타자로 나선 백전노장 데이브 로버츠가 그로부터 우전안타를 뽑아내자 랜디 윈이 같은 코스 안타로 뒤를 받쳤다. 파블로 샌도발의 중전 적시타 때 2루주자 로버츠는 홈까지 치달았다. 이어 벤지 몰리나는 좌월 3점포로 윈과 샌도발을 앞세우고 홈을 밟았다.
홈런 세리머니 뒤 타석에 등장한 리치 어릴리야도 방망이를 힘차게 휘둘렀지만 중견수 플라이 아웃. 후속 애언 로왠드는 유격수쪽 땅볼로 뛴 김에 1루에 발만 대보고 덕아웃으로 향했다. D백스의 수난은 끊어질 듯 다시 이어졌다. 이매뉴얼 버리스의 중전안타에 이은 2루 도루. D백스 코칭스탭은 투포 배터리에 다음 타자 오마 비스켈을 걸려보내도록 사인을 보냈다. 비스켈이 무섭다기보다는 그 다음 린시컴을 보다 쉬운 상대로 찍은 것이었다. 오산이었다. 2루쪽 내야 안타. 2사 만루. 타자일순 뒤 다시 타석에 등장한 로버츠는 페팃의 유인구에 속지 않고 도망피칭에 끌려가지 않고 쌀과 뉘를 잘 골라 볼넷을 얻었다. 밀어내기. 버리스 득점. 자이언츠는 이후 3이닝을 점수없이 지나치다 7회말 어릴리야의 중전적시타로 몰리나가 홈을 밟으며 6대0으로 승세를 굳혔다.
<정태수 기자> tsjeo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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