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 이글거리는 팔월 마지막 금요일 오후였다. 안동수는 직장에서 두 시간 일찍 나왔다. 제 5회 해변의 밤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동수는 어젯밤 준비해둔 가방을 트렁크에 실어놓고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갈매기들이 파문을 일으키는 바닷가를 보고 와 이야기해 주리다. 수.’ 이틀 동안 집에 있을 아내 앞으로 메모 한 장을 남겨 놓았다. 동수는 엘 카미노에 있는 서울식당 앞 파킹 장으로 들어갔다. 박장환만 보였다. 장환은 동수가 나가는 ‘낙서회’ 회원이다. 낙서회는 수필을 쓰고 싶은 십 여명이 한 달에 한번씩 모이는 모임이다. 장환은 앞으로 은퇴하면 수필을 쓰려는 생각으로 작년에 모임에 들어왔다. 동수와 인사를 하고 보니 선배였다. 그러나 낙서회에서는 동수가 먼저 한국문단에 등단했기에 선배노릇을 하고 있다.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동수는 차에서 내리면서 물었다.
“여자들 제 시간에 오는 것 봤습니까? 조금 기다려봐요.”
장환은 자기 차에 있는 가방을 동수 트렁크에 싣는다.
“이번 ‘수필 쓰기에 대하여’ 강연할 문인환씨는 어떤 사람입니까?”
장환이 물었다.
“수필가니까 이론보다 실기를 중심으로 강의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요.”
“작년엔 교수라 그런지 이해가 잘 안됐어.”
“문학은 이론만으로 글이 되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그런 것 같아. 일단 쓰고 싶은 것 쓰고 봐야겠어.”
“그렇게 하세요. 많이 읽고 생각도 많이 하세요.”
“저기 두 시인이 오네.”
장환이 쳐다보는 쪽으로 보니 아주 시원한 옷차림으로 두 여자가 걸어오고 있다. 정진이와 강숙희는 시인이다. 수필도 쓰고 싶다고 해 낙서회에 나오고 있다. 공교롭게도 네 사람은 같은 캠퍼스 생활을 해서 낙서회에서는 사총사란 별명을 가지고 있다.
“선배님, 늦어 죄송합니다.”
정 시인이 동수를 쳐다보면서 인사를 한다. 정 시인이 들고있는 밤색 바탕에 연노랑 세로띠를 두른 가방이 동수의 가방하고 같아 보였다.
“자. 몬트레이까지 가야하니 빨리 출발해요.”
장환이 선배로서 챙기고 있다. 두 시인은 가방을 트렁크에 넣고 차에 탔다. 차가 출발하자 강 시인이 말을 했다.
“선배님, 제가 내는 문제 답을 한번 맞춰보세요.”
“답을 맞추면 뭐 주는 것 있어요?”
장환이 뒤를 보면서 물었다.
1.
“선배님이 원하는 것 무엇이든지 다 들어드리죠.”
“뭐? 무엇이든 다 한다고?”
“네. 그 대신 못 맞추면 저희들 조건 들어 줘야합니다.”
“야. 이것 참 재미있는데. 정 시인도 동의합니까?”
장환이 물었다.
“한 차를 탔으니 당연하죠.”
정 시인도 아주 자신 있다는 듯이 대답했다. 동수는 입가에 쓴웃음을 흘리면서 운전만 하고 있다.
“한 교수님이 교육학과에 들어가서 학생들한테 질문을 했습니다. ‘지금 한 사람이 물에 빠졌다. 구할 수 있는 방법을 말하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야 뛰어 들어가서 구해야지.”
장환이 답을 제시했다.
“밧줄을 던져 주어야죠.”
“두 분 다 아니예요.”
“그럼 뭐예요?”
장환이 억울하다는 듯이 물었다.
“교육학과니까 수영하는 법을 가르쳐 주어야죠.”
“그거 말되는데.”
장환은 동수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이번엔 신학과에 들어가서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하나님한테 기도를 해야지.”
“하나님한테 구해 달라고 큰소리를 쳐야되는 것 아니요.”
동수가 반 농담으로 말을 했다.
“좀 더 깊이 생각해보세요.”
정 시인이 한마디하였다.
“정답은 물이 두 갈래로 갈라질 때까지 기도해야죠.”
“내가 기도해야된다고 했잖아.”
“선배님은 막연히 기도해야 된다고 했잖아요.”
“이대 빵이야?”
장환이 뒤돌아보면서 물었다.
“네. 이제 마지막 문제입니다.”
“좀 쉬운 문제를 내어요.”
장환은 일부러 애원하듯이 말했다.
“이번엔 철학과에 가서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좀 쉬운 문제없어요?”
장환이 하나도 답을 못해 체면이 아니란 듯이 말했다.
“쉬운 문제로 올인 할 수 없죠. 안 선배님은 답을 알 것 같은데.”
“글쎄요. 지금 답을 해야합니까?”
“물론이죠.”
2.
“남자들이 완전 케이오우 입니다.”
장환이 맥빠진 것처럼 말을 했다.
“이제 저희들의 요구 사항을 들어 주어야 합니다.”
정 시인이 옆에서 다짐을 하였다.
“뭣인지 모르지만 들어 주어야지. 그런데 답이 뭐죠?”
동수가 재촉한다.
“정답은 모든 사람은 죽는다. 고로 죽을 것이니 애써 구할 필요가 없다 입니다.”
“그 답 하나 멋있다. 고로 존재한다가 아니라 죽는다.”
“선배님 그것 가지고 수필 한편 써 보세요.”
동수가 말했다. 그런 시간 속에서 일행은 행사장 호텔 파킹 장에 들어섰다. 동수 앞에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그들과 인사를 하고 접수를 하고 방 열쇠를 받았다.
“우리 먼저 푸른 바다부터 보러 갑시다.”
장환이 말했다. 네 사람은 바닷가로 향했다. 갈매기들이 푸른 물결 위에서 너울거리고 물개들도 고개를 내밀고 우리들을 환영하고 있었다. 동수는 신발을 벗고 바지를 걷어올리고 물가로 걷는다. 두 시인과 장환은 모래사장을 걷고 있었다. 한참을 걷다 돌아왔다.
“선배님 회장을 만나보고 갈 테니 차 열쇠를 가지고 먼저 가세요.”
동수는 열쇠를 주고 접수처로 갔다. 동수는 회장으로부터 오늘 저녁 사회를 봐야 한다는 말을 듣고 방으로 왔다. 동수는 시계를 보고 샤워를 하려고 옷을 훌훌 벗고 가방을 침대 위에 올려놓고 지퍼를 주르륵 열었다.
“이게 뭐야? 웬 브래지어, 빨간 팬티들이야?”
동수의 얼굴이 순간 하얀 박꽃으로 변하였다. 먼저 샤워를 하고 책을 보고 있던 장환이 배를 움켜쥐고 깔깔댔다. 그때 동수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