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개인주의 확산 우려
희생· 사랑 소중함 깨우쳐야
10여년 전에 고질인 허리 병이 도져서 한 달간 집에서 누워서 생활하던 적이 있었다. 이때 반갑게도 한 교회 집사님이 심심하지 말라고 비디오를 한질 갖다 주셨다.
‘그대 그리고 나’라는 연속극이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연속극의 재미를 몰랐었지만 그래도 가져온 성의를 봐서 본 적이 있다. 시작은 그랬지만 곧 그 애절함과 긴박감에 완전히 사로 잡혔고 이어서 다른 비디오도 좋다고 하는 것은 다 빌려다 볼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비디오라는 것이 이론도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 알게 되었고 왜 어느 당선자는 당선되고 나서 제일 먼저 방송국에 가서 감사의 뜻을 전했는가도 수긍이 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연속극을 멀리하는 것이 연속극이 시대를 잘 반영하지도 못하고 갑자기 방향감각마저 잃은 것 같다.
항상 영어 자막이 붙어 있는 것을 보아 외국인 시청자들도 많은 모양인데 역사성을 무시한 사극과 “내 배 아프고 난 애”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유별난 집착이 그들의 눈에는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생각해 보고 싶다. 그리고 또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은 엄마가 자녀들의 배우자 선택에 거의 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는 것이다. 희생을 마다하며 키운 것까지는 좋은데 그것을 빌미로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게하고는 내 눈에 흑이 들어가도 안 돼!”라고 하며 극구 반대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 사유도 엉뚱한 사유로.
그래서 어떤 ‘뿔난’ 엄마는 딸이 애 달린 이혼남과 결혼하겠다는 것에 대한 화풀이로 본인도 멀쩡한 남편과 이혼하겠다고 우기기도 한다. 이혼하는 부부도 늘어서 이제는 이혼이 사회적 문제화 되었다는데 이혼에 대해 좀 더 깊은 이해를 증진시키는 작품을 많이 만들어서 이런 추세를 억제하고 이혼한 사람에게도 자숙의 시간과 또 희망을 안겨주는 작품이 나왔으면 좋겠다.
오늘 비디오 얘기로 서론이 긴 이유는 한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 때문이다.
가끔 독자들이 전화로 상담을 원하시는 경우 절대로 비밀을 유지하는데 “또 다른 엄마가 이런 고통을 받지 않기를 원하는 마음이니 이름 석 자까지 밝혀도 괜찮다”고 하시면서 본인의 얘기를 써달라고 하셨다. “그럼 본인이 직접 써가지고 오세요”라고 했더니 정말로 친필로 써 놓고 가셨다. 그 긴 내용을 두 마디로 요약하면, “절대로 부모 허락 없이는 결혼하지 말고 외국인 며느리는 절대로 들이지 말 것”이다.
첫째 부모 허락에 대해서. 이것은 자식이 부모에게 가져야 할 최소한의 예의다.
아마 부모 중에 자식을 키우면서 자식이 아프면 자식 대신 아파서라도 자식이 빨리 나을 수 있으면 하고 기도해 보지 않은 부모는 안 계실 것이다. 이런 부모들에게 대한 최소한의 예우는 배우자를 고를 때 부모의 허락을 구하는 자세이고, 또 손자들을 많이 낳아 드리는 것이며, 그 손자들마다 작명권을 드리는 것도 좋은 제스처다. 우리 부모는 우리 형제들의 작명을 모두 할아버지에게 맡기셨다는 것을 알고 나서 우리 애들의 한국 이름의 작명을 부모에게 부탁드렸더니 너무나 좋아하셨다.
그래서 부모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얘기는 어려서부터 기회 있을 때마다 해주었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는 애들이 철이 들어가면서 한 가지를 추가로 달았다. 어떤 배우자를 데리고 와도 우리는 무조건 허락하고 축복해 줄 것이니까 각자가 정말로 신중하게 기도한 후에 데리고 와야 된다고 말이다.
개인의 영달만을 위하지 말고 어떤 고난을 통해서도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로마서 8:28)의 뜻을 살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같이 동고동락하며 이룰 수 있는 배우자로 고를 수 있도록 성숙해주기를 바라면서.
만일 한번 눈까풀에 무엇이 씌우면 반대한다고 통할 것도 아니고 또 흔히 자식 이길 부모 없다고 하지만, 부모도 못 이길 정도의 자식을 갖는 것은 더 슬플 것 같다. 그래서 장성한 아들과 아직 팔씨름을 안 해본 것도 아직은 내가 이길까 봐 두려워서다.
외국 며느리에 대한 알레르기는 우리 부모에게도 많이 듣던 얘기다. 그 세대에는 충분히 이해가 되는 사항이다. 그만큼 한국은 극히 한국적이었고 세계와 고립되어 있어서 둘이 같이 살면서 극복해야 할 벽이 너무 높았다고나 할까.
그러나 좀 더 세계화 된 지금은 어떨까? 특히 미국에서 태어나서 자란 아이들은 오히려 단지 너무 한국적인 상대가 오히려 힘들지도 모른다. 각자 본인에게는 “어떤 사람이 적합한가” 잘 살펴서 결정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국제화가 되는 반면에 한편으로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값싼 민족주의도 팽배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감옥 안에서도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 흑백간의 긴장과 재소자와 간수 사이의 긴장도 어느 때보다도 높다. 국제적으로는 영토분쟁이 살아나고 내부적으로는 여야 간에도 골이 깊어지기만 한다. 소익을 위해서 대의를 버리기도 서슴지 않는다.
한국 얘기만이 아니고 캄보디아, 태국, 버마, 그리고 일본도 그렇다. 후쿠다 수상도 일년을 채우지 못하고 사퇴했다. 모두 개인적인 이익만을 위해 시끄러우니 총리할 맛도 없어졌나 보다. 그래서 “그래도 어려운 시기에 같이 협력하여 난국을 타개하지 못한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라는 자숙의 소리도 들린다.
이런 시대에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내가 남보다 편하게 잘 살 수 있나 하는 것보다는 이런 어려운 시대에 서로 화합하고 포옹해 줄 수 있는 상부상조의 자세다. 무조건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하기에 급급하지 말고, 대의를 위해서라면 다소의 희생도 사랑과 정성으로 감수하는 아름다운 얘기도 많이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산 과정에서 숨진 동료들을 위해 에베레스트 등정에 재도전하는 분들의 마음도 한번 새겨 보면서.
(213)210-3466, johnsgwhang@yahoo.com
황석근 목사 <마라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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