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캘리포니아는 “황금(엘도라도)의 섬”이라는 뜻
멕시코 지배자 코르테스 엘도라도 찾으려 탐험대 파견
’알타 캘리포니아’ 멕시칸전쟁 후 1848년 미국에 양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1492)했다는 소문은 유럽 해양 탐험가들의 호기심을 유발하였고 탐험 의욕을 자극 했을 뿐만 아니라, 소설가들의 공상소설의 소재로도 나무랄 때 업는 소중한 자료였다.
그 중 스페인의 소설작가인 몽탈보(Garcia Ordonez de Montalvo)라는 이가 저술한 공상 소설에서 인도(콜럼버스가 발견한 신대륙을 당시에는 인도로 알고 있었음)의 좌측 아래쪽 끄트머리에“캘리포니아”라는 지상 낙원이 있는데 그 고장에서는 황금이 넘쳐흐르며 길에 널려있는 돌도 황금이라고 묘사를 함으로 해서, 많은 탐험가들이 꿈에 부풀게 되었다는 것이다. 바로 그 섬을 “엘도라도(황금)의 섬”이라고 하였는데, 캘리포니아는 그때부터 황금을 찾는 탐험가들의 목표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한 탐험가의 대표적인 인물에 훼르난 코르테스(Hernan Cortes) 라는 스페인의 탐험가(콘퀴스타돌)가 있었는데 그는 1519년에 현재의 멕시코를 중심으로 번영의 극치를 이루고 있던 원주민 제국인 멕시카/아즈텍(Mexica/Aztec empire)을 무력으로 탈취하고, 그 문화를 말살하다시피 하면서 식민지화하였으며, 스페인 조정을 대표하여 현지 지배자로 군림했다.
영국이 현재의 버지니아 주에 해당하는 곳에 최초로 제임스 타운(Jamestown) 이라는 식민지를 만든 것이 1607년이고, 메이후라워호 (Mayflower)가 청교도를 태우고 처음 동해안 푸리머스에 닷을 내린 해가 1620년이니 만치, 영국의 신천지 진출은 스페인이 미주 서부를 수중에 넣기 시작한 해보다 약 100년이나 뒤진 셈이다.
멕시코의 지배자로 군림한 코르테스는 몽탈보가 그의 공상 소설에서 그린 “캘리포니아”를 찾으려고 무척 애를 썻는데, 첫번 탐험대를 북쪽으로 보낸 해는 1533년이다. 탐험대는 멕시코의 태평양쪽에 길게 나와있는 반도를 섬으로 알고 있었으며 그 섬의 최남단에 La Paz라는 도시를 만들고 캘리포니아 식민지활동의 거점으로 삼았다. 코르테즈는 그 섬(실은 반도)을 싼타 쿠르즈 섬(Santa Cruz Island)이라고 명명하고 스페인 영토로 편입한다는 선언을 했다.
1542년에는 카브리오(Juan Rodriguez Cabrillo)라는 포르투갈의 숙련된 항해사가 스페인 왕조의 명을 받아 멕시코 남부 태평양 연안을 따라 지금의 오리건주 연안까지 항해를 하면서 샌디에고 항구, 로스앤젤레스 항구, 산타바바라 항구 등을 발견하고 이 역시 스페인 영토라고 선언을 하였다. 이 항해에서 카브리오는 샌프란시스코라와 몬트레이 등 항구를 지나치기만 하고 발견을 못하였다. 그러나 영유권만은 확보한 셈이었다.
1773년에 스페인 왕조는 이 반도를 “캘리포니아(California)” 라고 명명하고, 남쪽(지금의 미국-멕시코 국경선의)을 “바하 캘리포니아(Baja California)”라고 칭하고 그 남단을 다시“바하 캘리포니아 써(Baja California Sur)”, 지금의 미국 캘리포니아를 “알타 캘리포니아(Alta California)”라고 명명하였다. 그리고 그 세 캘리포니아를 합쳐서 라스 캘리포니아(Las California)라는 하나의 독립된 행정 단위로 취급을 하였다. 그러다 멕시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1821년부터는 이 지역이 모두 멕시코영으로 귀속이 되었다.
“바하”라는 말은 “아래”라는 말이며, “알타”라는 말은 위라는 뜻이고 “써”라는 말은 “남쪽”이라는 뜻이다. 알타 캘리포니아는 멕시칸 전쟁(Mexican War)후에 미국에 양도되어(1848), 1850년에 미국의 31번째 주(洲)로 편입이 되었는데, 바하 캘리포니아와 바하 캘리포니아 써는 여전이 그 이름으로 멕시코의 지방 행정단위로 존속되고 있다.
결국 캘리포니아라는 고장은 미국에도 있고 멕시코에도 있다는 뜻이다.
스페인의 신천지 지배는 전 주민을 가톨릭으로 전향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스페인 왕조는 가톨릭 교황과 밀접한 유대관계를 유지하면서 식민지 통치를 하였다. 군대가 주둔하기 위하여 요새를 구축하면 거의 예외 없이 그 옆에 성당을 지었다. 그리고 선교에 임할 수도회(order)를 스페인 왕조에서 지적을 하였다.
1773년에 캘리포니아를 크게 두 행정 구역으로 나누면서 알타 캘리포니아(지금의 미연방 주)는 프랜시스코 수도회(Franciscan Order), 남쪽의 바하 캘리포니아(지금의 멕시코 영토)는 도미니칸 수도회(Dominican Order)가 선교의 임무를 전담하도록 결정을 하였다.
중남미를 지배하고 있던 스페인은 현지의 독립운동 물결을 이겨내지 못하고 1825년경까지 거의 전 식민지를 독립국가로 자립을 시켰다. 이때 독립한 중요 중남미 국가를 꼽아보면 다음과 같다. 알젠틴(1809), 베네젤라(1811), 파라과이(1811), 칠레(1818), 콜럼비아(1819), 멕시코(1821), 베네주엘라(1821), 페루(1821), 과테말라(1821), 에쿠아도르(1822), 브라질(1822), 포르투갈로부터, 볼리비아(1825), 루루과이(1828), 큐바(1868)등이다. 이 이외에도 몇 국가가 더 있다.
이로써 300여 년에 가까운 스페인의 중, 남미 지배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그 동안에 내린 스페인 문화의 뿌리는 중남미를 타 고장과 뚜렷이 분별이 되는 또 하나의 신 문화권으로 자라게 하였다. 우선 언어이다. 중남미 인들의 생활언어는 토착언어가 있기는 하지만 스페인어(Spanish)를 표준어로 하고 있고, 거의 전 인구가 스페인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스페인 지배 300년간에 현대 문명이 태동하였기 때문에 토착언어로는 전혀 표현의 길이 없는 용어가 부지기수로 스페인어로 일상용어화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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