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존경하는 목사님 한 분이 얼마전 ‘잡’을 잃었다. 막말로 교회에서 쫓겨난 것이다. 뒷 얘기를 들어보니 장로 몇 사람을 위시한 교회 기득권 세력이 악의적으로 모함해 사임을 종용한 것이었다. 누가 봐도 억지 모함이고, 교인 대다수가 목사를 지지하는 상황이었지만 그 목사님은 교회를 떠났다.
작년말 뉴욕에서도 한 대형교회의 목회자 한 사람이 당회의 횡포를 견디다 못해 자진 사임했다. 개혁을 반대하는 당회에 맞서 담임목사와 장로임기제 실시를 추진하다가 온갖 곤욕을 치른 끝에 스스로 나간 것이다.
한국 교계에 실로 많은 문제가 있지만 자격 미달의 장로들로 인해 빚어지는 문제만큼 심각한 병폐도 없다. 장로와 목사간의 갈등은 거의 모든 교회에서 찾아볼 수 있고, 두 파로 나뉜 장로들의 세력 다툼으로 교회가 분열되는 일도 종종 있다.
장로 문제가 너무 심각해지자 약 10년쯤 전에는 장로 임기제가 교단마다 유행하듯 제정되었는데, 몇년이 지난 지금 임기제를 지키고 있는 교회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장로는 원래 봉사하는 직분이다. 장로 뿐 아니라 권사와 집사도 마찬가지고, 목사도 미국장로교에서는 ‘가르치는 장로’라고 규정한다. 목사는 가르치고, 장로는 치리하고, 집사는 실무를 맡고, 권사는 전도하고 봉사함으로써 모두 똑같이 교회와 사회를 섬기는 것이다.
과거 한국교회가 ‘정말 교회다웠던’시절에는 다들 그렇게 봉사했고, 장로 권사 집사의 직분을 명예나 감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교회들이 너무나 커지고 부자집단이 돼버린 지금 이 거대한 조직의 정책과 사업과 예산을 결정하고 심지어 위임목사도 내쫓을 수 있는 장로의 직분은 상당한 권력을 휘두르는 계급으로 변질되었다. 장로가 얼마나 좋은지, 원래 장로제도가 없는 감리교도 한국에 들어와서는 장로를 만들었을 정도다.
남자 교인들은 너도 나도 장로가 되려 애쓰고, 일부 목사들은 신앙과 인품보다는 돈 많고 세력있는 사람을 장로를 세우려 하고, 그럼으로써 장로선거가 과열되어 금품이 오가는 일은 대형교회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해결할 방도는 없는 것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서울에 있는 100주년기념교회(담임 이재철 목사)는 한국 개신교회에서 최초로 이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했다. 2년에 걸친 검토 끝에 2008년 1월부터 시행하기 시작한 ‘직분의 호칭제’가 그것으로, 장로·권사·집사를 ‘직분’에 대한 명칭이아니라 사람에 대한 ‘호칭’으로 사용키로 한 것이다. 누구든지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학력 경력 재력을 넘어서 기독교인으로 최소한의 자격만 갖추면 장로 권사 집사가 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 교회 정관 제5장에 따르면 ▲집사는 만 30세 이상으로 세례 받은지 1년 이상이고 교회에 등록한지 1년 이상된 교인 ▲권사는 만 50세 이상의 여자로 집사 된지 5년 이상이고 교회 등록한지 2년 이상된 교인 ▲장로는 60세 이상 남자로 집사 된지 5년 이상이고 교회 등록한지 2년 이상된 교인으로서 교구 교역자와 구역장의 추천으로 임명할 수 있다. 여기서 추천이란 명목상의 교인인지, 아니면 실제 매주 예배에 참석하는 교인인지만 구별하여 확인하는 정도의 절차다.
숫자를 제한하지 않고, 자격도 평등하게 완화해 누구나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될 수 있게 만든 파격적인 직분제의 호칭제 변경은 100주년기념교회가 초교파교회이며 교회 운영은 운영위원회가 맡고 있는 구조적 유연함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 호칭제가 한국교계에서 널리 적용되기는 힘들지도 모른다. 교회에서 행세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욕망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의 치리를 당회가 아닌 운영위원회가 맡는다면 장로가 아니라 운영위원이 되기 위해 애를 쓰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생겨날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 해도 문제가 있을 때 규칙과 제도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끊임없이 필요하다. 특히나 교회처럼 ‘의인은 한명도 없고 죄인들만 모인’ 공동체에서는 더욱더.
정숙희 특집 1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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