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재판장님, 35년 동안 그 누구도 일하기를 꺼리는 험하고 힘든 닭 공장에 수천 명의 취업이민자를 받아들여서 미국 경제에 크게 이바지하였고, 그런 일에 평생을 몸 바쳐오다가 급기야는 어머님도 돌아가시고, 아버님도 병고에 시달리시며, 가진 재산도 없는 피고를 부디 선처하여 주시옵소서…” 금발머리의 백인 변호사는 무슨 변고인지 출석도 하지 않는 또래 나이의 피고인을 대신하여 악어의 눈물을 흘리듯 최후 변론을 마쳤다. 젊고 잘생겼으며 유난히 눈동자가 빛나 보이는 젊은 검사는 공소 사실을 적시해가면서 “법의 준엄함 앞에 어떠한 죄도 용서될 수 없으니 죄에 상응하는 벌과 함께 다시는 똑같은 일이 반복되는 일이 없도록 해당 가족 모두는 이민관련업종에 종사할 수 없도록 해야 함이 온당하다고 사료됩니다”고 강변했다. 양쪽편의 의견을 모두 듣고 난 인자하게 보이는 흑백혼혈 재판장은 양측 간 사전에 조율된 듯한 형량과 결정에 대하여 상호 동의 여부를 묻고 난 뒤에 판결문을 읽고서 개정 30분 만에 그 한 많은 닭 공장 이민관련 공판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미국이라는 나라에 도착한 시간들만 각기 달랐을 뿐, 이민자들과 이민 수속 대행자들은 같은 한국인이고 같은 민족입니다. 친척, 친구 없이 미국 땅 밟고 나니 말하나 서로 잘 통한다는 이유 때문에 타민족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터무니없는 이민수속 비용을 받았다면 서비스는 고사하고라도 최소한의 책임과 도덕, 양심은 있을법한데도, 누구나 알만한 1, 2, 3번 한인 대형교회에 식구대로 여기저기 출석해서 헌금하고 주님께 영생을 맡기면 되는 것이고, 자기네들은 평생 한번 들여다보지도 않을 닭 공장에 당신들이 돈 주고 선택한 일이니 2년이든 3년이든, 영주권이 나오든지 말든지 회사 폐업신고 하고나서 회사에 남아있는 돈을 닭 공장 인원으로 계산해보니까 1,250불씩이나 돼서 이것을 되돌려 줄 테니 찾아가고 나면 어떠한 책임도 묻자 말라는 것으로 당신들은 홀연히 우리들 곁을 떠난 지가 2년여가 흘러갔습니다.
식구 중에서 한사람은 시간당 7불씩 받고 닭 공장 부근에 합숙생활하면서 지내고, 나머지 식구들은 또 다른 제비둥지에서 닭 공장과 이민국만을 목 빼물고 기다리길 수삼 년.
정말 보고 싶었습니다. 당신들의 눈을 보고 싶었습니다. 당신들이 폐업한 뒤로 없는 돈에 이리저리 끈 떨어진 연같이 버벅대며 그래도 미국에서 살아보려고 바둥대고 있습니다. 그리고 건강이 불편하다고 해서 걱정도 해봅니다. 우유를 받아 마시는 사람보다 배달해주는 사람이 더 건강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멀쩡한 두 다리로 생경하기만 한 미국의 법정에 우리는 이렇게 앉아 있는데, 돈이 없다고 하면서 우리들 눈에는 수임료도 보통의 몇 십 배나 능가할만한 외모와 언변을 갖춘 변호사에게 당신들의 양심까지 그렇게 맡겼습니까?
우리는 억장이 무너지고 있었지만 당신들 탓을 하지도, 당신들의 잘못을 지적하지도, 더군다나 당신들을 고소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당신들의 죄가 벗겨지기를 바랐고, 죄가 있었다면 경감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하면서 휑한 방청석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검사의 구형보다는 경감된 선고를 보고 다소 안심을 가져봅니다. 당신들이 살아야 우리도 살 수 있다는 연대감 때문이자 당신들은 우리들의 미국생활의 얽혀진 실타래이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만나고 싶었습니다. 무슨 말을 할까 궁금하기도 했구요. 그러나 끝내 아무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차라리 이제부터라도 영주권 수속이 진행된다는 기대감에 다소 진정되는 한편으로 멀쩡하게 영주권 받고 미국생활하고 있다가 느닷없이 추방될 다섯 가족의 인생과 미래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슴이 먹먹해 옵니다.
모든 재판절차가 끝나자 판사가 퇴정하고 검사 일행이 방청석을 지나갈 때 맨 앞에 선 젊은 검사가 잠시 발걸음을 멈춘 뒤 남루한 우리 쪽으로 와서 형언키 힘든 표정을 하면서 “미안합니다”라고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면서 “앞으로 도울 일이 있으면 도와 드리겠습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한인사회와 함께 성장했을 미 연방검사인 젊은 최 검사의 마음이 지금은 어디를 넘나들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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