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어에 데자부(dejavu)라는 말이 있다. 생각하는것이 실제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하기도 하고 기시의 환각상태라고도 한다. 근래 그런 일을 내가 당하고 마음이 섬찍한 경험을 했다.
지난번 한국일보 칼럼에 쓴 사애라 선생님에 관한 글에 사진도 함께 실었으면 좋겠다는 신문사의 요청을 받고 선생님의 사진첩을 넘기다 보니 세브란스 한국의사들과 백인교수, 그리고 얼굴이 동그랗고 자그마한 한복입은 여자 사진이 나온다. 사진에 등장한 인물들의 이름도 한글과 영어로 사진첩에 기록돼 있다. 1941년에 찍은 사진이다. 한복을 입은 여자의 이름이 좀 특이 하다는것 밖에는 달리 생각나는 것이 없어 그냥 지나쳤다.
다음날 학교 강의준비 할겸 사무실에 들러 차 한잔 타놓고 이메일 부터 체크 하는데 내가 정기적으로 받는“구글”북한 뉴스에 AP 특별기사가 났다.
너무 늦게 김수임의 진실이 밝혀젔다라는 제목하에 장장 5페이지에 걸친 기사다. 오래전 읽은 한국판 마타하리 사건에 대한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 사형당한 여인의 아들이 미국이 갖고있는 기록으로 그녀가 간첩이 아닐수도 있다는 것을 밝혀 내고, AP가 이를 보도한 것이다.
참 안됐다고 생각하며 강의 준비 마치고 집에가는 찻속에서 마치 어떤 미스테리에 사로 잡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디서 본 이름인데 생각이 나지않고 무언가 연결이 되질 않는다. 저녁을 먹고난후 책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다음날 아침에 세수 하다가 사애라 선생님 사진첩에서 본 한복입은 여자가 김수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아침을 먹는둥 마는둥 사무실로 달려가 사진첩을 들춰보니 이름이 틀림 없다. 그날 아침에 배달된 한국일보에 많이 간추린 AP기사가 사진과 함께 실렸다. 틀림없는 김수임의 사진이다. 몸에 소름이 끼친다.
그러고보니 얼마전 아내가 빌려와 함께 보는“서울 1945”년 이라는 연속극에서도 들어본 이름이다.
이 여자가 같이 동거하던 미군 헌병사령관에게서 미군이 남한에서 철수한다는 기밀을 빼내 한국인 정부 이강국에게 넘겨주었고 미군헌병 사령관의 지프차로 38선을 넘게 했다는 혐으로 체포됐다고 한다.
김수임은 영어를 잘하는 여인이었다고 한다. 고아인 그녀를 미국 선교사들이 키워 이화여전 영문과를 졸업하고 세브란스에서 선교사들 통역도 했다는 당대에 인텔리였다.
당시 간호학과 과장이 였던 사애라 선생님과 그여자가 같이 일하게 된게 선생님과의 인연이었을 수도 있다. 당시 군정장관이였던 하지장군은 베어드 헌병사령관이 그럴 위인도 아니고 고급정보 접근권도 없었으며, 미군이 철수한다는 ‘정보’도 미군신문인 성조기지(The Stars and Stripes)에 이미 난 것이었다고 한다. 베어드대령은 당시 미국에서 부인이 서울에 온 상태였다. 정부가 미군 군정에서 한국정부에 이양되며 베어드가 군정 헌병 사령관에서 한국경찰 고문으로 관여 할때 김수임은 한국경찰에 의하여 간첩혐의로 체포됐다고 한다.
당시 한국경찰의 소행을 잘아는 그나 그의 동료들이 왜 가만 있었는지모르겠다. 미 헌병대에서 일한 그녀를 미군은 왜 도우려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당시에 나이가 56살인 베어드는 거의 30여년 아래인 젊은 여자를 결혼조건으로 동거 했다고 한다.
김수임은 한국경찰에 1950년 3월1일에 체포됐고 같은해 6월 14일 베어드 대령이 미국으로 떠난지 9일 만에 사형을 당했다고 한다.
베어드 대령을 닮은 김원일 박사는 수소문끝에 나이가 90여세에 가까운 그의 친아버지를 양로원으로 찾아갔으나 베어드는 반가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의 가족들은 그를 따듯하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김박사는 당시 사형을 언도 했던 판사 5명중에 한사람을 한국에서 만났다. 그판사의 이야기가 김수임이 그렇게 나쁜 사람 같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마지막 형을 언도 받을때 김수임은 들것에 실려들어 왔다고 한다. 아마 고문에 못이겨 허위자백 한게 아닌가라고 한다. 위의 글은 AP 영어기사 중 한국일보 보도내용에서 빠진 것을 간추려 쓴 것이다.
70여년 전의 사진을 보며 정치이념과 사랑속에서 불행하게 간 한여자를 생각한다. 1911년생이니 40도 안된 한 여자의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그녀가 정말 간첩이었는지 따지기 전에 우리와는 상관이 없던 이념 싸움의 와중에서 희생당한 한 여자의 슬픈이야기가 6:25를 겪은 우리에게는 남의 일 같이 들리지 않는다.
어머니의 누명을 벗기려 진실을 파헤친 김수임의 아들 김원일 박사에게 그와 같은 시대를 산 내가 위로의 말을 보낸다. 그리고 독자들과 같이 보려고 사애라 선생님 사진첩에 있는 사진을 이 글에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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