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축제는 아름다웠다. 이긴 자의 목에 걸린 금메달보다 더 귀한 젊음이 수놓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지구촌 60억의 힘이, 204개 나라의 기세가 겨루는 승부(勝負)는 당당했고, 보는 눈은 마냥 즐거웠다. 열세개의 금메달, 7대 체육강국이라는 전적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다. 모든 선수들의 몸짓, 뒷풀이까지도 그렇게 아름다웠다. 과연 메달의 주인은 따로 있었다. 뭐가 달라도 달랐다.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달란트’를 받고 태어나야 한다. 빼어난 소질이다. 끝장을 보겠다는 우직한 끈기와 남다른 집중력이다. 운동에 적합한 골격과 근력이다. 그렇다해도 혼자의 노력이나 훈련만으로는 최고, 제일의 자리를 차지할 수 없다. 감독이나 코치, 부모까지를 아우르는 인복이 있어야 한다. 선수생활 출발부터 경기 순간 순간을 가름하는 ‘행운’이 있어야 한다. 둘도 없는 타고 난 선수여야 한다는 말이다.
세계 신기록을 수립한 여자 역도 장미란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걸고, “금메달은 하늘이 주신 것”이라 말한다. 어쩌면 겸양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우리라고 금메달을 노릴 수 없는가. 안될 리 없다. 우리들의 ‘삶은 여정(旅程)’이라 한다.
누구는 삶을 ‘달리기’로 풀고, 달리고 또 달리는 사람도 있다. 문제는 목표다. 어디, 뭣에다 금메달을 걸어 놓고 걷고, 뛰고, 달릴 것인가. 문제라면 정녕 그것이 문제일 것이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부(富). 귀(貴)에 무병 장수(長壽)까지를 탐낸다.
먼저 생각할 것이 부(富)다. 오복(五福)가운데 첫번째다. 돈 많이 벌고, 재산 많이 모아 풍요와 안락을 누리겠다는 것이다. 물신(物神)이 판치는 세상, 돈은 물론 필요하다. 있으면 편리하다. 그러나 언제나 충분하지는 않다. 그것이 돈이고 재물의 함정이다. 돈에 매달리는 영혼을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의 삶을 몽땅 걸기에는 뭔가 부족한 돈이고 재물이다.
다음은 귀(貴)다. 벼슬이다. 권력이다. 옛 글에 세상에 나아가 이름을 드높여(立身揚名) 부모님을 기쁘게 하면(以顯父母) 효의 마지막(孝之終也)이라 했다. 조선조 때는 과거에 급제(장원), 머리에 어사화를 꽂는 선비가 귀의 표상이었다. 요즈음도 국가고시를 통해 신분상승을 이루는 귀의 길이 있다. 사(士)자 항렬 직업군이다. 또 있다. 맑은 귀를 이룬 분들, 바로 국립묘지에 모신 영령들이다. 순국의 길, 애국의 길에서 보여 준 희생의 삶이다.
세번째는 무병 장수. 오래 명대로 살다가 편히 가는것. 오복(五福) 가운데 수(壽)와 고종명 (考終命). 요즈음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약 80세다. 더 오래는 욕심이 아닐까.
그러나 끝없는 욕심이 어찌 되었던 마지막 길의 불안과 고통만은 극복. 치유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신앙의 몫이다. ‘말씀과 성체’를 찾아 나선다. 온 몸을 던지는 결단의 길이다.
여기서 순교자나 성인. 성녀들이 걸었던 길을 본다. 뒤 따른다. 눈을 똑바로 뜨고 힘을 잃지 않는다면 엇갈릴 리도 없고, 목 마르고 허기질 일도 없다. 삶이 끝나는 자리에서 ‘새 삶의 빛’을 찾는 길이다. 은총의 나무에 달린 ‘생명의 황금메달’을 보고, 걷고, 달리고, 뛰는 길이다. 올림픽을 준비하는 선수들처럼 힘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면 승산도 100%다. 경쟁자도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과 싸울 뿐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름은 올림픽 경기장에서 보여 주던 선수들의 몸짓에 취한 탓이다.
남자 육상 3관왕 유세인 볼트(22. 자마이카)를 보자. 그는 100m 결승전 9.69초 세계 신기록. 그는 세리머니로 ‘성호’(가톨릭 신자가 기도 시작과 끝에 손가락을 모아 이마(성부와), 가슴(성자와), 양 어깨(성령의 이름으로 아멘)를 찍는 예식)를 긋는다. 200m 준결승 출발 자리에서도 ‘성호’를 긋는다. 남자 마라톤 우승자 케냐의 사무엘 완자루(2시간6분 32초). 골인 지점을 지난 후 두번 ‘성호’를 긋는다. 두 선수는 천주교 신자다. 더욱 예쁘고 아름답기는 탁구 여자단체전(동메달)에서 승리를 일궈낸 김경아 선수의 모습이다. 17일, 일본과의 싸움에서 히라노 사야가와 선수를 물리친다. 김경아 선수는 두 무릎을 꿇른다. 잠시 이마에 두 손을 모은다. 그리고 단정히 ‘성호’를 긋는다. 생각컨데 김 선수는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감사합니다. 찬미 영광 받으소서” 깊이 감사드렸을 것이다. 자신의 가톨릭 신앙을 40억 이웃들에게, 4천만 동포들에게 증거하는 모습. 아름답고 부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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