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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팀, 이상문 거사-이수잔 보살 자택 뒤뜰서 원두막 점심
이번 토요일(30일)엔 시카고 한인들과 인연맺음 요세미티행
9월 둘째 토요일(13일)엔 포톨라서 산바람 바다맛 ‘굴 BB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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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이 좋았다. 덩달아 그늘도 좋았다. 볕을 쬐는지 그늘을 더듬는지 바람은 이리저리 떼몰려 쏘다녔다. 일요일(24일) 낮 약속에 얼추 맞춰 이상문 거사-이수잔 보살의 프리몬트 자택에 다다르니 먼저 온 차들이 여기저기 뒹군다, 거라지 앞 시멘트 바닥에 누워 뜨끈뜨근 볕을 즐기는 놈, 가로수 그늘 아래서 곤히 자는 놈. 들어가니 울긋불긋 꽃들이 햇볕을 써 더욱 밝은 낯으로 바람에 휘감겨 더욱 간드러진 허리로 아는 체를 한다. 그 옆 고추밭에 종으로 일곱 횡으로 열, 해서 대략 일흔 그루가 대오를 이뤘는데 다들 주렁주렁. 더러 불그스레 홍조를 띠며 여문 티를 내기 시작했다.
거실에서 원두막으로 이어지는 샛길 너머로 또 한무더기 고추들이 웅성거리는 옆으로 배추들이 기수별로 무리지어 서로들 의지한 채 늘어섰다. 두세평 원두막은 못난이 토종포도 한그루가 지어냈다. 대롱대롱 매달린 포도들이 제법 자줏빛을 내는데 제 어미격인 넝쿨이며 잎사귀들이 너무 성하니 볕쬘 참이 뜸해 되레 잘다. 그래도 엄청 달다. 짜잘이 포도들이 실은 뱃속에 씨를 배고 있으니 자식이면서 어미다. 포도나무와 나란히 오이 몇 그루가 막대기를 타고 한참 올랐다. 이 거사가 요놈은 일본오이고 저놈은 우리오이라고 일러준다. 청풍 거사가 되받는다. 그럼 여기쯤이 독도인가? 저것들도 서로 내 땅이라고 싸우겠네. 웃음보가 터진다. 오이들도 웃기는지 바람을 핑계로 키득키득 흔들린다.
산행 때마다 가장 일찍부터 가장 늦게까지 앞서 이끌고 뒤를 받쳐온 무문 거사는 부인 백련화 보살과 함께 이날도 일찌감치 이씨네에 도착해 간간이 걸려오는 전화로 길 안내도 하고 상차림 손도 거든다. 김 모락모락 찰진 콩밥에다 풋김치 갓김치 짱아치 가자미회 두부조림 깻잎무침 산나물 등등 온갖 맛난 것들을 준비한 보살들(이수잔 백련화 김순영)은 부리나케 부엌과 원두막을 오가면서도 마냥 웃음을 날린다. 이 거사가 손들의 말동무로 바쁜 틈에 헛간 농기구들이 모처럼 다리 뻗고 쉰다. 원두막과 헛간 중간쯤에 뿌리내린 사과나무에는 후지사과 주렁주렁, 어지간히 뻐근할텐데 아직은 팔(가지)들이 짱짱하다. 장미 선인장 토마토 따위가 사과나무 주위로 진을 쳤고, 울타리쪽으로는 갖가지 선인장들이 도열했다. 선인장 사이 물화분에서 무럭무적 자라는 수련을 가리키며 자비행 보살이 귀띔한다, 미주현대불교에서 분양받은 것인데 여래사 이사 가면 선물로 드릴 것이라고. 배추씨에선 배추가 자라고 오이씨에서 오이가 자랐듯이 감나무엔 감이 열리고 대추나무엔 대추가 열렸다. 울타리 덮개노릇은 올해도 호박의 몫이다. 많고 넓은 호박잎을 양산처럼 쓰고서 길다랗고 통통한 호박이 능청스레 걸렸다. 호박은 호박으로 족할 뿐이다. 수박을 꿈꾸지 않는다. 하긴 수박이라고 호박을 업신여기진 않으렷다.
그런 날 그런 곳, 입맛은 말해서 무엇하며 밥맛은 일러서 무엇하랴. 우선 여나믄 명이 원두막 뷔페를 시작했다. 거개들 거뜬히 두세차례 접시를 비웠다. 산행팀을 대표해 무문 거사가 감사 듬뿍 인사를 건넨다. 이 거사가 되받는다. 이거 나 묵을라고 키운 거 아니여, 이르케 맛나게 잡숫고 하니까 좋잖여. 이 보살이 거든다. 아 글쎄 9월 둘째주까지 (손님 올) 스케줄이 꽉 찼다니까. 보살은 음식준비를 나눠 맡아준 백련화 보살과 청나 보살에 대한 감사표시를 잊지 않는다. 이렇게 도와주니까 일도 아니네. 날마다 해도 하겠네 뭐. 감사하는 마음까지 버무려진 점심에는 한층 더 감칠맛이 돈다.
건배 제창에 웃음 다발에 원두막 천장 포도들이 풍경처럼 흔들거린다. 소리나지 않는 소리는 그 윗녘 전봇줄 새들이 대신 내준다. 술병을 보니 처음처럼에다 참이슬이다. 장삿속에 붙여진 이름이련만, 그건 그거고, 그 자리 사람들에겐 산행을 처음 시작한 2년 전 그때나 2년 지난 지금이나 늘 처음처럼이려오 하는 마음들, 나아가 부처님 세상에 끌린 초발심이 불자물을 적이 들인 지금이나 더 들일 훗날이나 늘 처음처럼이기를 하는 마음들을 마시고, 오네 가네 달다 쓰다 좋네 궂네 오온의 장난질에 속아 울고불고 난리치는 요놈의 삶이 실은 참이슬이든 거짓이슬이든 풀잎 끝에 매달려 바람 한점 없어도 휙 사라지는 이슬 같은 것이란 일깨움을 들이켰으리라.
화제는 대중 없었다. 한바탕 인연을 짓고 공부삼아 살아가는 이들인지라 불연으로 어깨동무를 하고 같이 걷는 기쁨이 반주처럼 흐르는 가운데, 탈것도 먹거리도 전깃불도 화장지도 귀했던 옛추억이 가로 지르면 미국살이 고생담이 세로 누비고, 자녀 키우기 경험담이 앞장을 서면 불교마을 키우기 소망들이 뒤를 잇고, 온천놀이 갔다가 남녀 섞여 다들 깨벗고 노는 통에 알몸에 홍당무가 됐다거나 궁벽한 시골 합수통 측간에서 겪은 말못한 황당경험담 등이며 재미난 얘기들이 줄줄이 솟았고 그때마다 웃음파도가 출렁였다. 플레젠튼 홍 거사 부부도, 시카고에서 북가주로 거처를 옮긴 중년 부부도, 늦게 합류한 김동균 거사네도….
무문 거사가 웃느라 본업을 놓칠 리는 없었다. 그 틈에도 일을 꼼꼼히 갈무리했다. 오는 30일(토) 당일치기 요세미티행 인원과 준비사항을 체크하고 분담했다. 산을 좋아하는 시카고 한인들과의 만남을 기약해둔 요세미티행에는 스무명 남짓 함께할 예정이다. 9월 둘째주 토요산행은 그것대로 진행된다. 행선지는 포톨라 스테이트 팍인데 어느 산행인들 특별한 산행 아닌 게 없겠지만 9월 산행은 특별히 특별한 산행이 될 것 같다. 이름하여 굴 바비큐. 산바람에 비벼 바다맛을 즐기는 9월 산행 역시 문턱도 쇳대도 없다. 아무나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다만, 미리 수고하는 이들이 넘침도 모자람도 없이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길은 참가여부를 미리 알려주는 것이다. 그런 이들을 위해 무문 거사의 셀폰(510-783-2623) 또한 늘 열려 있다.
더러 미리 자리를 떴고 남은 이들도 해가 한참 기운 것을 그제서야 알고서 주섬주섬 일어설 즈음에 옅은 회색 법복이 잘 어울리는 법성 거사가 예의 큰 덩치에 큰 목청으로 호탕하게 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하며 들어선다. 쟁반상이 속성으로 차려진다. 가는 손님 오는 손님, 거기서도 끝은 곧 시작이요 시작은 곧 끝이 된다. 그러고보니 저무는 날과 움트는 저녁도 그쯤에서 여기가 시작인가 저기가 끝인가 경계없이 나뒹군다.
<정태수 기자> tsjeo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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