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홍기가 연일 나부낀다. 금메달이다. 또 금메달이다. 마침내 미국을 제켰다. 금메달 경쟁에서. 그것도 큰 차이로. ‘100년의 꿈’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올림픽을 통해 ‘중화의 위용’을 전 세계에 떨친 것이다. 드높은 자긍심에, 자화자친의 분위기다.
북경 올림픽은 과연 성공작일까. 속단하기에는 이르다. 올림픽 경기가 펼쳐지고 있을 때 중국의 거리거리에서 일어난 일들은 다른 스토리를 전하고 있다. ‘금빛의 영광’과는 전혀 다른 중국의 모습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거리는 평온했다. 무려 40만명의 ‘사복’ 공안이 깔린 탓인가. 북경 시내의 한 공원. 대형 TV 스크린이 설치됐다. 사람들이 모인다. 소리가 커진다. 중국 팀을 응원하는 왁자지껄한 소리다. 그러자 이내 ‘사복’들이 나타난다. 해산하라는 종용이다. 조용히 사람들은 흩어진다.
보통의 중국인들은 올림픽 경기를 관람할 수 없었다. 티켓은 거의 다 국가와 당에 충성심이 높은 계층에만 배부됐다. 선택된 그들이 당국의 주문에 따라 조직적인 응원을 펼쳤다. 많은 관람석은 텅 빈 채.
부시 미국 대통령이 북경에 도착해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그 시간, 중국의 기독교인들은 무더기로 체포됐다. 외국 선교사들이 구금되고, 외국 기자들은 공안에게 사진기를 빼앗기고 구타를 당했다. 또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에게 협박을 당했다.
“내 이름은 탕이다. 전화를 안 받더군. 당신이 취재한 그 중국인의 신원을 밝혀. 당신이 있는 곳은 어디지.” 한 미국 여기자가 받은 협박이다. 안 좋다고 판단되는 기사가 나가면 뒤따르는 협박이다.
70대의 두 중국인 할머니가 공안에 체포됐다. 심한 시력장애에, 지팡이에 의존해 걷고 있다. 이런 두 할머니가 체포돼 강제 노동형에 처해졌다. 도대체 무슨 죄인가.
북경 당국은 올림픽을 맞아 이례적 조치를 취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권유로 시위장소를 따로 지정했다. 사전신고를 통해 그곳에서 시위할 수도 있다는 방침을 밝힌 것이다.
이 두 할머니는 그 방침을 따랐다. 집이 강제로 철거됐다. 그러나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했다. 그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시위신청을 했다. 네 번이나. 번번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체포된 것이다.
무엇을 말하나. 북경올림픽은 결코 ‘서울올림픽’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아닐까.
사전신고는 정부방침이다. 그 방침을 따른 사람을 체포했다. 백화제방(百花齊放)을 주창했었다. 많은 이견이 나오자 그들을 몽땅 숙청했다. 과거 모택동의 수법이다. 어딘가 그 수법을 닮았다.
이는 다름 아니다. ‘사회 안정’을 해치는 행위는 결코 용납지 않겠다는 시그널이다. 한국은 서울올림픽을 통해 민주화를 이룩했다. 북경올림픽을 서울올림픽 같이 민주화의 시작으로 착각하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가 바로 이 70대 할머니 체포사건이란 분석이다.
이 해프닝은 동시에 중국의 공산당 일당독재 체제가 얼마나 취약한 지를 말해주고 있다. 집이 강제 철거됐다. 그러나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했다. 그런 사람이 1억이 넘는다. 이들의 동태만 해도 보통 신경이 쓰이는 일이 아니다.
거기다가 산적한 문제가 한 둘이 아니다. 농민 소요사태에, 팽배하는 도시 중산층, 불만 또 공해문제에 이르기까지. 하여튼 정치적 개방은 없다는 점은 분명히 했다. 이 상황에서 우려되는 건 중화민족주의의 팽배다.
체제 유지의 유일한 방안이 민족주의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진정한 중국의 위협인가. 북경올림픽과 관련해 새삼 던져진 화두로, 중화민족주의에 온통 시선이 쏠리고 있다. 정치뿐이 아니다. 경제에서도 중화민족주의를 추구한다. 이럴 때 세계 경제질서는 파괴된다. 에너지 확보를 위해 폭정체제를 적극 지원하고 있는 중국에서 그 조짐은 벌써 드러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올림픽은 마침내 성공적으로 끝났다. 한 세기의 국치(國恥)는 이로써 설욕됐다. 이제는 ‘강한성당’(强漢盛唐)의 기치를 높이 들 때다.” 중국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그 소리가 그런데 일종의 황사경보로 들린다. 거대한 중화민족주의 내습을 예고하는.
선명한 대국주의를 표방하고 나섰다. 그 뒤로 들리는 소리는 그러나 온통 반한(反韓)에, 혐한(嫌韓)의 메시지다. 그 숫자가 얼마가 되는지 모른다. 수백만인지, 수천만인지. ‘50센트짜리’로 불리는 이른바 중국의 댓글달기 ‘알바’를 말하는 것이다. 이들이 일제히 반한의 메시지를 띠우고 있기 때문이다.
올림픽 성화가 꺼진 뒤의 중국. 그 변화하는 중국의 실상을 주시해야겠다.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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