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의 눈과 귀는 ‘올림픽’에 쏠려있지만 요 며칠 워싱턴 정가의 인기검색어 1순위는 ‘veepstakes’다 . Veep는 vice president(부통령)의 속어로 대선후보의 러닝메이트 선정을 뜻하는 veepstakes는 1988년 한 정치소식지가 쓰기 시작하면서 애용되어온 캠페인 용어다.
버락 오바마는 이번 주, 존 매케인은 다음 주로 발표 시기가 점쳐질 뿐 양당의 부통령 후보는 철통보안 속에 20일 현재까지 베일에 싸여 있다. 행여 무슨 힌트라도 건질 까 , 측근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갖가지 추측보도를 내보내는 언론의 취재경쟁도 보통 치열한 게 아니다 .
그런데 부통령 후보가 이처럼 초미의 관심사가 된 것을 안다면 땅속에 묻힌 역대 부통령들이 뛰쳐나오지 않을 까 싶기도 하다. ‘부통령’처럼 당사자들이 공개적으로 혐오감을 드러낸 관직도 드물었기 때문이다.
1960년 민주당의 대선후보 존 F. 케네디로부터 부통령 후보직을 제안 받은 후 린든 존슨이 고심 끝에 전화로 조언을 구한 상대는 존 낸스 가너였다. 4선 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1,2기 부통령을 지냈던 가너가 지체없이 준 대답은 ‘거절하라’였다 . 당시 연방상원 다수당 대표였던 존슨에게 가너는 루즈벨트의 러닝메이트가 되느라 연방하원 의장직을 포기했던 자신의 결정이 ‘내 생애 최악의 어리석은 실수’였다면서 “난 8년의 긴 세월을 루즈벨트의 스페어타이어 노릇으로 허비했다”고 후회했다.
부통령직은 토머스 제퍼슨이 “도무지 살아갈 의미가 없다”고 진저리를 낼 만큼 건국초기부터도 한직이었다. 그나마 루즈벨트가 부통령도 내각회의에 참석하도록 배려했지만 여전히 권력핵심에서는 제외되었다 . 문제는 2차대전이 한창인 1945년 4월 루즈벨트가 사망하면서 불거졌다. 당시 루즈벨트의 3번째 부통령에서 대통령직을 승계한 해리 트루먼은 미국의 군사작전 옵션도 모른 채 전시의 통수권자가 된 것이다. 루즈벨트가 핵무기 개발 극비과제인 ‘맨하탄 프로젝트’를 부통령 트루먼에게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가너의 충고를 듣지않았던 존슨은 자신의 출신지인 텍사스 등 남부의 표 몰이에 성공, 승리에 일조했지만 케네디 생전 내내 마치 ‘먼 친척’ 같은 거리감을 없애지 못했다. 그처럼 씁쓸한 왕따를 경험했던 존슨도 대통령이 된 후에는 자기 아래 부통령의 소외감을 벗겨주지 못했다 . “부통령은 벌거벗은 채 눈보라 속에 서있어도 아무도 몸 녹일 불씨하나 건네주지 않는 처지”라고 휴버트 험프리 부통령은 한탄했다.
제2인자다운 부통령직의 틀이 잡히기 시작한 것은 월터 먼데일 때부터였다. 당시의 뉴 페이스 후보 지미 카터는 부통령 홀대는 귀중한 자산의 낭비라고 생각했다 . 백악관 입성에 성공한 카터-먼데일 팀은 부통령직에 대한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냈다 . 행정 전반에 대한 자문역 , 대통령 정책결정의 주요 파트너였다 . 그것은 마치 부통령직 진화 과정의 ‘빅뱅’과 같았다 . 부통령에겐 처음으로 공관이 제공되었고 웨스트 윙에 집무실이 마련되어 대통령과 똑같은 내용의 국가정보에 대한 브리핑도 받았으며 모든 주요정책회의 참석권한도 주어졌다.
‘진짜 결정권자’로 불리우는 현 딕 체니의 막강 권한은 비정상적으로 친다 해도 이제 미국의 부통령은 더 이상 존 애덤스가 불평하던 ‘세상에서 가장 하잘 것 없는 직책’이 아니다. 선정 기준도 갈수록 엄격해지고 있다. 선정위원회가 구성되고 미리 명단을 흘려 반응을 지켜보기도 한다.
선정 기준은 크게 두 가지다. 득표에 도움이 될 것인가. 예비 대통령의 능력을 갖추었는가.
우선은 당선이 중요하다. 격전지에서 표를 몰아올 수 있는지 , 대통령후보의 약점을 보완해 줄 수 있는지 , 오히려 표를 깎아먹을 위험은 없는지…이 때문에 연방상원 외교관계위원장인 조셉 바이든 의원이 경험부족 비판에 발목 잡힌 오바마의 러닝메이트로 부쩍 뜨는가 하면, 나이 많고 경제 문외한인 매케인의 동반자로 젊은 미네소타 주지사 팀 폴렌티와 함께 무명이나 다름없는 예산국장 출신의 롭 포트맨이 거론되기도 한다. 그러나 러닝메이트의 득표력이 승패를 좌우한 예는 극히 드물었다.
보다 중요한 것은 부통령후보의 국정 능력이다. 당선 후 대통령과 호흡을 맞추어가며 자문역을 수행해야 하는데 대통령과 베스트 프렌드일 필요는 없지만 코드가 안 맞아 사사건건 껄끄럽고 신뢰할 수 없다면 곤란하다 . 그런 측면에서 보면 오바마에겐 하버드 법대 동문으로 이상과 철학을 공유하는 팀 케인 버지니아 주지사가 ‘변화’를 실현해갈 파트너로 적격이고, 매케인의 마음은 당적을 달리하면서도 코드가 통해온 조셉 리버맨 상원의원에게 기울어질 것이다 .
대통령 유고시를 생각한다면 국정능력 여부는 절대적 선정 기준이 되어야 한다. 암살이나 병으로 사망한 대통령의 직책을 승계한 부통령이 미국에는 8명이나 된다 . “내가 죽을 경우 안심하고 나라를 맡길 수 있는 당신이 필요하다”면서 러닝메이트를 제안한 대선 후보도 있긴 했다. 아쉽게도 TV 시리즈 ‘웨스트 윙’ 속의 대통령이긴 했지만.
러닝메이트 선정은 대선후보에겐 인선을 통해 자신의 가치관과 판단력 , 결단력을 유권자 앞에 처음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테스트로 꼽힌다 . 넘쳐서도 안 되고 , 모자라서도 안되고…각 당 전당대회 마지막 날 , 두 후보가 손을 맞잡고 유권자에게 정식으로 선보일 때 진정한 ‘한 팀’으로 어필해야한다 . 오바마와 매케인의 선택이 어떤 평가를 받을 지, 2008 대선이 본격적으로 뜨거워지고 있다.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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