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에 걸려온 전화’- 힐러리 클린턴의 유명한 반(反)오바마 선거광고다. 그래보아야 초짜 연방 상원의원이다. 이런 버락 오바마가 위기발생 시 과연 제대로 대처할 수 있을까. 군통수권자로서 그의 자질에 의문부호를 던진 광고였다.
이 가상의 ‘새벽 3시의 전화’가 정말로 백악관에 걸려왔다. 2008년 8월8일. 칸트적인 영구평화의 환상에 젖어 있는 유럽이다 그 유럽에서 전쟁이 발발했다. 러시아가 수백 대의 탱크를 앞세우고 그루지야를 침공한 것이다.
이 ‘새벽 3시 전화’에 어떤 반응을 보일까. 몇 달 후면 미국의 대통령이 될 대권주자들은. 그 테스트의 완벽한 기회가 된 것이다.
“쌍방의 자제를 촉구한다.” 오바마의 첫 발언이다. 반응이 신통치 않자 제2, 3의 성명을 냈다. 유엔안보리 소집을 촉구했다. 러시아에 대한 발언도 다소 강경해졌다. 그러나 낙제점이라는 평가다.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거다.
러시아의 침략행위를 맹렬히 비난하면서 즉각 군사행동을 중지하고 철수할 것을 요구했다. 존 매케인의 첫 반응이다. 그 역시 유엔안보리 소집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이런 제안도 했다. “미국은 G-7 외상회담을 개최해 사태에 대처해야 할 것이다.”
그 발언에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다. 일찍이 ‘민주주의 연맹’(League of Democracy)을 제창했다. 그리고 현재의 G-8에서 러시아를 제외시키자고 했다. 그의 이 같은 주장이 새삼 평가를 받게 된 것이다.
2008년 8월8일을 기점으로 세계가 달라졌다. 2001년 9월11일 이전과 이후의 세계가 달라진 것 같이. 대선의 쟁점도 달라지고 있다. 외교와 안보문제가 새삼 주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2008년 8월8일에 일어난 일은 일과성이 아닌, 역사의 한 분수령을 이루는 사태일 수 있다는 상황인식에서다.
그 심각성을 먼저 지적하고 나선 사람의 하나가 로버트 케이건이다. “이날, 2008년 8월8일을 역사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89년 11월8일처럼 한 전환점을 이룬 날로 기억할 것이다.”
진작부터 권위주의형 독재체제의 부상을 경고해 왔다. 그 예언이 구체화돼 세계는 19세기형의 권위주의형 독재체제와 자유진영의 대립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는 신호로 파악한 것.
독일시민 보호를 구실로 나치 히틀러가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했던 상황의 재연으로, 카스피 해 석유 수송로란 ‘지정학적 요충지대’에 있는 그루지야는 러시아의 전근대적 팽창주의로의 복귀에 첫 희생물이 됐을 뿐이라는 것이다.
‘뭔가 상당히 불길한 전조다’- 이데올로기 면에서 케이건과 대칭선상에 있는 폴 크루그먼의 말이다. 그는 세계화와 내셔널리즘의 충돌로 그루지야 사태를 파악했다.
세계화의 한 가운데에 서 있는 세력은 바로 미국이다. 이 미국 주도 세계화의 정지사태는 다름이 아닌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의 끝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군사주의와 제국주의를 앞세운 러시아가 민주체제인 이웃을 제 멋대로 침공했다. 그 사태를 미국은 막지 못했다.
무엇을 말하나. 미국 주도의 세계화에 심각한 제동이 걸렸다는 걸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가 우려하는 것은 세계화 정지가 가져올 경제적 파급사태다. 상당히 비관적으로 보았다. 동시에 이런 질문도 던졌다. “미국이 방관만 한다면 또 다른 독재체제인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2008년 8월8일은 러시아와 중국이란 두 독재체제가 국제무대 전면에 등장한 날이다. 하나는 군사적 침공을 통해, 다른 하나는 올림픽이라는 화려한 무대를 통해.” 또 다른 지적이다.
올림픽 개막식을 통해 중국이 보여준 것은 집단주의의 표출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수천 명이 동원됐다. 인간이 그저 하나의 점으로 묘사된 이 집단 퍼포먼스를 통해 ‘강한성당’(强漢盛唐)의 메시지를 전 세계에 전했다. 중화민족주의의 메시지다. 그 집단주의의 표출에서 불길한 그림자를 본 것이다.
결국은 같은 맥락의 진단이다. 권위주의형 독재체제 대두에 대한 새삼스런 우려다. ‘2008년에 일어난 일’과 관련해 그래서 한 가지 컨센서스가 이뤄지고 있다. 미국은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구의 가치관 자체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는 상황정리와 함께.
‘새벽 3시에 걸려온 전화’-. 이 광고는 어쩌면 올 미국 대선의 방향을 가늠하는 캐치프레이즈가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다.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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