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11 사변 직후부터 10월까지 그렇지 않아도 알카에다 테러리즘의 여파로 공포 분위기였던 때에 미세한 양의 탄저균(Anthrax)이 들어있는 조그만 봉투들의 출현은 미국 전체를 경악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무색, 무취, 무미의 박테리아로 너무 미세해서 육안으로 볼 수 없는 탄저균은 소와 양 등의 가축병을 유발시킬 뿐 아니라 감염 음식 섭취, 피부 전염과 균의 호흡 등 세 가지 경로로 인간들에게 전염될 수 있는 치사적 병균이다.
어느 주간지의 편집인, 그리고 그 우편물을 다루었던 우체국 직원 등 5명의 희생자가 생겼을 뿐 아니라 17명이 중태에 빠져 입원하게 된 상황이었다. 게다가 NBC, CBS 등의 앵커에 보낸 편지 봉투와 당시 미 상원 민주당 원내총무 등에게 보낸 봉투에도 탄저균이 들어있어 상원 의원회관이 며칠 폐쇄되었는가 하면 그 우편물들을 취급한 워싱턴 근교 브렌트우드 우체국은 몇 달 동안 문을 닫아야 했었다. 편지 내용도 테러를 위협하는 무시무시한 것이어서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긴박감이 사회 전체에 만연되어 있었다.
그러다 하루아침에 탄저균 동봉 편지의 위협이 사라졌다. FBI가 메릴랜드 주 프레드릭 카운티에 소재한 포트 디트릭 미 육군 연구소 직원인 ‘스티븐 해트필’ 박사를 ‘관심의 대상’(person of interest)으로 추적하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해트필은 직장도 잃고 24시간 계속되는 FBI의 감시 아래 있기를 몇 해 견디다가 프라이버시 침해로 미국 정부를 고소한 것이 580만 불을 받는 조건으로 고소를 취하하게 된 게 불과 두 달도 못 되었다.
그리고는 같은 연구소 직원인 브루스 아이빈스 박사가 7월 29일 자살하자 FBI는 아이빈스가 2001년 탄저균 공격의 유일한 진범이었다고 발표하기에 이른다. 1년 이상 FBI가 그를 범인으로 지목하여 따라다녔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24세 된 아이빈스의 딸에게 탄저균에 희생된 사람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너의 아버지가 살인범이다”라고 겁을 주는 한편 그와 쌍둥이인 아들에게는 아버지가 범인이라는 증거를 가지고 오면 250만 불의 상금에다 스포츠카를 사주겠다고 회유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공표한 자료는 강력하기는 하지만 모두 정황증거일 뿐이라서 아이빈스의 동료들은 거의 다 그가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정부 발표는 아이빈스가 범죄의 동기를 가지고 있었다고 시사한다. 그가 연구해오던 탄저균 예방약 프로그램이 예산의 삭감 등 난관에 봉착했기 때문에 탄저균 공격으로 자신의 연구 계속을 꾀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또 그가 그와 같은 범죄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는 것이다. 탄저균 봉투가 발송되기 직전에 그는 밤이나 주말에 연구소에서 혼자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기록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리고 탄저균 사건에 사용된 탄저균이 들어있던 시험관이 아이빈스 박사가 연구에 쓰던 것이라는 과학적 증거도 있다.
또한 아이빈스가 겉으로는 교회에 잘 나가고 어린아이들을 돕는 일에 자원봉사를 즐기던 사람이지만 정신과 의사를 자주 찾곤 했다는 사실도 공표되었다. 특히 2001년 탄저균 공격 사건이 있기 1년 전에 그를 치료했던 정신상담가는 아이빈스가 어떤 젊은 여성에게 관심을 가졌었는데 만약 그 여자가 축구 시합에서 지면 독살할 독극물을 배합했노라고 자기에게 실토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이빈스가 자기는 고도의 기술을 가진 과학자라서 사람들이 알아내지 못하게 일을 저지를 수 있다고 부언했단다.
만약 아이빈스가 진범이었다면 그는 한 20년 동안 대학연구소와 대회사에 폭발물을 보내 여러 명을 죽게하고 다치게 만든 ‘유나바머’(Unabomber)와 비슷하다. 그 또한 20대에 버클리 대학 수학교수가 될 정도로 머리가 우수했었는데 양심의 가책 하나도 없이 범행을 계속해오다가 자기 동생의 제보로 종신형을 살고 있다. 때때로 비범한 사람들이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고는 FBI와 경찰이 진땀을 흘리면서 사건의 실마리를 찾으려고 좌충우돌하는 것을 보고 자신의 천재성에 도취되는 사례들이 있다. 또 비범한 사람들은 보통사람들이 순응해야하는 사회 규범이나 법이 자신들에게는 적용이 안 된다는 위험한 교만감에 충만되기도 쉬운 모양이다. 소위 완전범죄로의 유혹을 스스로 만들어 끔찍한 범죄를 자행하기도 한다.
아이빈스의 경우가 바로 그런 유형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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