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볕에 그을린 피부에 159.5센티미터의 단구. 모자 밑 형형한 눈빛이 없다면 무심코 그를 지나칠 지도 모른다. 골프 지도자 정요셉. 때론 본업인 레슨은 제쳐놓고 에티켓이 어떻고 매너는 이래야 한다는 둥 잔소리를 늘어놓는 그는 어글리 코리언들에는 도무지 성가신 존재다. 게다가 초하(初夏)만 되면 하안거의 스님들이 용맹정진 하듯 민족교육을 위한 골프대회에 비지땀을 흘리기도 한다. 올해는 이 하품 나는 불경기에도 2만 불을 훌쩍 넘게 모금을 했다는데…. 지난여름, 뜨거운 바람을 훔쳐다 가슴 밑에 감춰둔 것일까.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도대체 그의 열정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불경기에도 모금액 2만달러 훌쩍
“한인들 뜨거운 민족애에 놀랐죠”
투명함으로 신뢰 얻다
“예상 밖의 호응에 저도 놀랐습니다. 극심한 불경기에도 많은 분들이 민족교육을 위한 대의에 선뜻 동참해주시어 기대 이상으로 큰 성과를 낸 것 같습니다. 후원해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 3일 재미한국학교 워싱턴협의회 기금 모금 골프대회를 성공적으로 끝낸 그는 더 검게 타 있었다. 단내 나는 여름, 대회의 성공을 위해 씨름해온 훈장 같은 것이다.
지난 3월, 그가 지부장을 맡은 WPGA(세계프로골프협회) 워싱턴 지부 회의에서 준비 위원회를 발족시킨 정요셉 프로는 5개월 가까이 홀로 동분서주했다. 그가 만난 단체장과 한인업체 사장님만 해도 100명이 넘는다. 핸드폰은 사용시간을 초과하길 일쑤였다. 레슨 시간만 제외하곤 하루의 대부분을 모금에 바쳤다.
그 결과 피비다이 골프클럽에서의 대회에는 140명이 참가한데다 후원금도 역대 최고액으로 중간 집계됐다. 정 프로는 약 2만3천 달러의 기금 내역을 전부 공개하고 27일경 한국학교협의회에 전달할 예정이다.
“2만 불이 목표였습니다. 사실 경기가 너무 안 좋아 힘들 거라 말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저는 제 자신을 믿었습니다. 너는 할 수 있다, 라고 말입니다.”
그는 대회의 성공 이유로 뜻과 신뢰를 들었다.
“많은 분들이 한글교육의 중요성에 공감해주신 거죠. 여기에 그동안 기금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해온 게 믿음을 준 것 같습니다.”
실제 그는 대회 후 수입과 지출 내역을 하나로 빠트리지 않고 공개, 투명한 모금문화에 앞장서왔다.
공부에도 때가 있다
정 프로가 이처럼 골프와는 생소하게 보이는 민족교육을 위해 뛰어든 건 그의 이력의 연장선상에 있다. 서울대 사범대 체육교육과를 나온 그는 19년간 고등학교 교사와 대학 강사로 제자들을 길렀다. 1994년 도미한 이후 골프 지도자의 길을 걸으면서도 한시도 교육을 위한 열정을 내려놓지 않았다.
그가 한글교육을 위한 골프대회를 창설한 직접적 계기는 2004년 서울대 사대 동창회 송년모임에서다.
“한인 커뮤니티의 발전을 위해서는 2세 교육을 적극 후원해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나왔습니다. 평생 교육자의 삶을 살아온 제가 민족교육을 돕는 건 당연한 의무라 생각했습니다. 재정적으로 열악한 한국학교를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으로 도울 방안을 찾다 결국 제가 잘 할 수 있는 게 골프이니 대회를 만들어보자고 결심했습니다.”
이듬해 정요셉 프로는 첫 대회를 열었다. 첫해 1만140달러를 모금한 그는 06년 1만3천900달러, 지난해는 2만281달러를 모아 한국학교협의회에 전달했다.
그가 한글교육 후원에 팔을 걷어붙인 건 2세교육의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기도 하다.
“많은 2세들이 성인이 된 후 한글을 배우지 못한 걸 후회하는 걸 봤습니다. 부모들이 한글교육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생업에 바빠 관심을 갖지 못하는 거죠. 공부는 때가 있습니다. 2세들이 어려서 우리 민족의 글과 말, 얼을 배우지 못하면 한민족의 일체감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지금 같은 글로벌 시대에 언어는 가장 중요한 경쟁력이기도 하고요.”
열정의 종착역은
정 프로가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열정을 바쳐온 ‘교육사업’은 또 있다. 몇 해 전부터 시작한 올바른 골프문화 정착을 위한 캠페인이다.
이를 위해 그는 사재를 들여 골프 룰 북과 에티켓이 들어 있는 유인물을 만나는 사람마다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그동안 무료 배포한 책자만 해도 2천권에 달한다. 또 골프대회장을 찾아 매너를 강조하는 플래카드를 행사 때마다 부착하고 있다.
“골프인구는 급증했지만 에티켓 교육이 안돼 어글리 코리안 소리를 듣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이대로 방치했다간 한인 골퍼 모두가 욕을 먹게 됩니다. 티칭 프로들이 솔선수범해 잘못된 행태를 바로잡자는 취지입니다.”
그의 본업은 메릴랜드 로럴의 ‘Rocky Gorge’ 골프 레인지에 위치한 ‘정요셉 골프 아카데미’ 티칭 프로다. 올해로 창립 12주년을 맞아 과학적인 교육 시스템을 강화한 그는 정작 자신은 마음 놓고 라운딩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한다. 레슨과 캠페인, 한글교육 후원사업에 떠밀려 스스로의 굿샷을 포기한 것이다. 그래도 그는 행복하단다.
“지금껏 무슨 일이든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살아왔습니다. 자신감이 없으면 아무 것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내겐 벅차고 고단한 시간이 제겐 가장 즐겁고 행복한 시간입니다.”
그에게 열정의 종착역이란 없다.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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