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 선언’은 30살의 젊은 마르크스가 1848년 당시 세계 자본주의의 수도였던 런던에서 발표한 책이다. 이 책은 널리 알려진 대로 “하나의 유령,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라는 강렬한 문장으로 시작된다.
마르크스의 “선언” 이후 160년이 지났다. 그의 예측들 중 어떤 것은 실제와 달랐고 어떤 것은 비극적으로 들어맞았고, 어떤 것은 다행히 예방되었다. 1929년 월가의 주가 대폭락과 1930년대의 대공황은 그의 예측이 들어맞은 경우이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은 말 그대로 전대미문의 풍요로운 사회를 맞았다. 그와 함께 유령은 변방으로 밀려났고 마침내 1990년대가 시작되면서 사라진 듯이 보였다.
그런데 사라졌다고 믿었던 유령이 오늘날 다시 배회하고 있다. 그 유령은 사람들의 마음에, 미래에 대한 불확신이라는 치명적 불안의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있다. 작년 첫 번째 신용위기에 이어 다시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모기지 은행이 파산했다. 그 결과 양대 국책 모기지회사인 패니메와 프레디맥 마저 흔들리자 미국정부가 개입하여 긴급한 상황을 간신히 넘겼다고 한다.
이 회사들의 주택담보 대출보증액은 무려 미국 한 해 GNP의 절반에 가까운 금액이라고 한다. 만약 이들이 정말로 파산한다면 이들의 채권을 가진 수많은 은행들과 연기금도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며 그 여파는 전세계로 퍼져나갈 것이다.
이 일이 한 가지 원인에 의해서만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특히 사람들이 말하듯 2000년 이후 돈이 너무 많이 풀린 것, 즉 금융적 원인은 직접적인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가장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원유 가격의 급등이라는 것에 이의를 달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석유 에너지는 우리 모두가 그 속에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 자체를 움직이는 엔진과 같기 때문이다.
많은 역사학자들이 갖는 커다란 의문 중 하나는 바로 오늘날의 자본주의 세계이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세상에는 그 이전 역사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일들이 너무나 많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집트의 피라밋이나 중국의 만리장성도 대단했지만, 오늘날 세계 거대 도시들의 마천루와 도로에는 미치지 못한다.
전근대 사회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농업노동에 종사하고도 늘 굶주림과 아사의 위협에 노출되었다. 하지만 오늘날 발전한 국가들의 경우 인구의 5% 이하가 농업에 종사하면서도 200년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풍요롭다.
이 모든 것들은 자본주의 문명을 작동하는 에너지가-인간과 가축의 근육이 아닌-화석연료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문제는 이 연료가 오염물질을 배출할 뿐만 아니라, 무한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가장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는 지구온난화와 원유 가격의 급등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화석연료는 자본주의 문명의 축복이자 재앙인 셈이다.
지구 온난화와 원유 가격의 급등이 -어쩌면- 가져올 결과는 파국이라는 말 이외에 다른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알 고어에 따르면 지구 온난화는 빙하를 급격히 녹이고 있다. 빙하가 모두 녹으면 최소한 두 가지 결과 즉 해류 이동이 정지되고 해수면이 올라가는 결과가 온다. 난류와 한류의 온도 차이 때문에 발생하는 해류가 정지되면 지표면의 어떤 곳은 지나치게 뜨겁고 다른 곳은 지나치게 차가워질 것이다. 이것은 식량생산의 기초인 식생대의 변화를 가져오고 인간 삶의 기초인 기후를 변화시킬 것이다.
또 세계의 주요인구 밀집 지역들을 바다 밑으로 잠길 것이란다. 세계의 거대 도시들은 상당수가 강이나 바다 근처에 위치한다. 미국의 경우 샌프란시스코 만과 맨해튼의 많은 지역이 여기에 포함된다. 또 원유 가격의 감당 못할 상승은 세계화 된 경제의 흐름을 중단시키고 거대도시 자체를 해체 시킬 것이다.
다시 등장한 유령은 마르크스가 말한 유령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불러올 수 있는 파국적인 결과는 그것보다 훨씬 불길하다. 과연 이번에 나타난 유령은 어떻게 될까?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지구 온난화와 유가 상승은 동시에 계속될 수는 없으리라는 것이다. 원유가 고갈되면 더 이상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의 지속적 증가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정철
UCLA 방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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