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산과 바닷가를 거닐면서
용범은 파도소리만 들리는 조용한 바닷가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삼다도라 제주에는 바람 많고, 돌 많고, 여자가 많다. 화산으로 이뤄진 곳이라 돌이 많다. 밭 울타리도 돌로 쌓는다. 집도 돌집이다. 집 울타리도 돌담이다. 태평양 한 가운데 있는 섬이라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그 바람을 느껴야 한다. 고기잡이를 나갔던 남자들이 강한 바람을 만나 집으로 돌아올 수 없었는지, 그래서 여자가 많고, 여자가 남자보다 더 많은 일을 감당하는 것일까? 밭에 일하러 갈 때 남자는 지팡이를 손에 들고, 여자가 점심을 등에 짊어진다.
가까이 섬나라 일본으로 가기만 하면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여 일본으로 건너간다. 혼자 가든지 부부가 같이 가든지 밀항으로 배에 숨어서 가기도 한다. 용범이가 살던 이웃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일본에서는 신부 감을 구할 수 없었는지, 고향에 와서 결혼을 하고 혼자만 일본으로 가버렸다. 어린 용범은 이런 저런 일들을 다 이해할 수 없었다. 30년 후, 아버님께서 돌아가셔서 용범은 잠깐 고향을 방문하였다. 그때 홀로 살던 그 부인은 아직도 홀로 살고 있었다. 그 부인을 보는 순간 용범의 머릿속에는 살처럼 지나가는 생각들이 있었다.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 이웃집 그 부인을 돌담 너머로 바라보며 지냈다. 고등학생인 용범에게 정감을 불러일으키는 책들을 돌담 너머로 건네주었다. 육체가 되어버리는 남녀들을 읽으면서, 이웃집 여인의 마음을 읽어내지 못했다. 30년이 지난 지금에야 그 여인의 마음을 헤아릴 만하다. 만일 그 시절에 여인의 필요를 채워주며 지냈더라면, 지금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변해 있을까? 생각하면 한숨이 나온다.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용범이는 농촌 마을에서 자랐다. 겨울만 되면 할 일 없는 사람들이 밤새도록 앉아서 화투판을 벌인다. 여름에는 술 마시고 싸우는 일이 흔하다. 어린 용범은 농촌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며 마음이 편치 않았다. 친구가 자꾸 찾아오는 바람에 교회 나가기 시작했다. 중고등부에 속하여서 성경공부를 하였다. 그러면서 용범은 나름대로 신앙을 가지게 되었다. 중고등부 선생님들과 갈등을 느끼기도 했다. 천당 가기 위해 예수 믿는다는 선생님에게, 용범은 자신의 의견을 내세웠다. “나는 천당 가기 위해서 교회 다니는 것이 아니라, 농촌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서 저렇게 살고 싶지 않아서 교회 다닙니다. 저 사람들처럼 화투판을 벌이거나, 저 사람들처럼 술 마시고 싸우지 않으려고 교회 다닙니다.” 그러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교회생활을 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용범에게 큰 문제가 생겼다. 여름 방학 동안에 내버려진 학생들을 위해 담임선생님께서 마련하신 영어특강을 받으며 지내던 용범에게 어려운 일이 생겼다. 부모님은 안끄레서 지내시고, 용범은 바끄레서 할머니와 지냈다. 할머니께서 들려주시는 옛날이야기, 듣고 또 듣고 반복해서 듣는 그 이야기를 그렇게 좋아하며 할머니 품에서 잠들곤 하였다. 시골 마을에 전깃불이 들어와서 호롱불이 자취를 감추었다. 용범은 학교에서 배운 간단한 지식으로, 전구가 나가면 새것으로 갈아 끼웠다. 할머니는 용범의 솜씨를 보며 감탄을 하셨다. 할머니의 칭찬을 들을 때마다 이 다음에 기술자가 되리라 다짐하곤 하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공업기술학교에 지원하려는 용범에게 담임선생님께서 인문계 고등학교로 가라 말씀하신다. “색약이라서 너는 공업기술학교에 갈 수 없다”하신다. 용범은 침울한 표정을 하면서도 담임선생님의 말씀에 순종하였다. 한 번은 담임선생님 댁에 찾아갔더니 나이 드신 할머니와 하얀 죽을 잡수고 계셨다. 보리밥만 먹고 지내던 용범에게는 하얀 쌀죽이 그렇게 맛있게 보였다. “이 다음에 나도 저렇게 하얀 쌀죽을 먹으리라” 속으로 다짐하였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담임선생님이시다. 시대가 각박할수록 그리워지는 선생님이시다. 여름방학 때 그 영어특강을 통하여 영어를 잘하게 되었고, 그 덕분에 좋은 고등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세월은 많이 흘렀지만, 담임선생님의 그 호의를 잊을 수 없다. 그때 그 특강이 없었더라면 내가 어떻게 되었을까?
좋은 성적으로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특별학급으로 편성되었지만, 용범에게는 고민거리가 있었다. 기술학교로 가서 기술자가 되고 싶었는데, 그 길이 막히고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앞날이 캄캄하였다. 용범에게는 남에게 말 못하는 결점이 있었다. 시골 동네에서 지내는 용범은 동네 사람들에게 칭찬을 많이 들었다. “조용하고 착하고 어른들한테 공손하다”고 한다. 용범의 집에 놀러 오는 어른들도 똑같은 말을 한다. “잔셈”이 많다. 남을 생각할 줄 안다는 말이다. 그러나 용범은 속으로 끙끙 앓고 있었다. 기술자가 되면 사람들을 상대로 말을 하지 않고 일만 하면 되는데,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무엇을 하나? 앞날이 캄캄하기만 했다.
어느 날 서울에서 오신 강사 목사님의 신앙 간증을 재미있게 들었다. 너무 좋아서 2박 3일 동안 있는 집회에 모두 참석하였다. 새벽기도에도 참석하였다. 새벽이라 버스도 없었다. 밤길을 한 시간 동안 걸어서, 새벽기도에 참석하였다. 하루는 목사님의 신앙 간증을 통해서 꿈을 발견하였다. 그렇게 고민하며 우울해 하던 용범에게 소망의 빛이 비췬 것이다. “나도 저 목사님처럼 설교를 잘 하는 목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이런 꿈을 마음에 품은 용범의 삶은 갑자기 변하였다. 어둡던 삶에 밝은 빛이 비췬 것이다. 우울하던 삶이 밝아진 것이다. 담임목사도 없는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였다. “나에게도 꿈이 있다”고 속으로 외치면서 열심히 교회생활 하였다. 새벽기도에도 열심히 참석하였다. 새벽기도가 끝나면 바닷가를 거닐며 설교연습을 하였다. 산을 오르내리며 규칙적인 생활을 하였다. 큰 일을 하려면 몸이 건강해야 하기에 건강을 생각하면서 누가 뭐라고 하면 그대로 실천하였다. 교회에서 누가 무슨 간증을 하면 “나도!” 하면서 그대로 흉내를 내었다. 성경도 열심히 읽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어서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성경을 읽었다. 열심히 신앙생활하면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일가친척들 중에 용범이 혼자 교회 나간다. 큰 형님은 직업군인으로 근무하시다 40대 초에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집안의 기둥을 잃고 슬퍼하시던 아버님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6남매 중 막내인 용범은 타향에 계신 형님들을 대신해서 아버님을 도왔다. 제사 때가 되면 제사 일을 도와야 했고, 벌초 때가 되면 아버님과 둘이서 제주도 한 바퀴를 걸어서 뱅 돌며 벌초를 하였다. 그러면서 신앙생활과 일상생활에서 많은 갈등을 느꼈다.
어느 날 서울에서 온 다른 강사 목사가 인도하는 집회에도 참석하였다. 용범은 장로가 인도하는 교회에 다니고 있었다. 서울에서 온 목사는 너무도 크고 귀하게 보였다. “지난번에도 은혜를 많이 받았는데, 이번에도 은혜를 받아야지” 하며 새벽기도까지 열심히 참석하였다. 이번에 온 목사를 통해서 용범은 새로운 도전을 받았다. 청소년들이 깊이 고려해야 할 3가지 일에 관한 것이다: 인생관, 직업관, 이성관. 용범은 신이 났다. 기독교적 인생관을 가지고 있었고, 사람을 감동시키는 목사라는 직업관도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을 배우자로 정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도 없었다. 다행히도 시골 교회들이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일이 있었다. 이웃 교회에 다니는 한 여학생이 특별히 눈에 띄었다. 그 여학생은 피아노를 잘 쳤고 노래도 잘 불렀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친구를 통해 그 여학생에 대해 알아보았다. 공부도 잘하였다. 그때부터 용범은 그 여학생을 짝사랑하였다. 이젠 인생관, 직업관, 이성관에 대해서 모두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래서 열심히 신앙생활도 하고, 직업을 위해서 성경공부, 교회 일에도 열심, 짝사랑도 열심히 하였다. 단 한 번의 회신도 없었지만, 자기 혼자 좋아하는 것이 짝사랑이다. 얼마 후 공부를 잘하던 이 여학생은 서울로 가버렸다. 용범은 고향에서 공부하면서도 바다 건너 여학생을 늘 마음에 두었다. 30년이 지난 지금 지난 일들을 돌아본다. 같은 캠퍼스에서 공부하며 옆자리에 앉았던 그 여학생이 최선의 배우자였다. 짝사랑하던 용범은 바다 건너 여학생을 생각하느라,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던 그 여학생에게는 관심도 없었다. 짝사랑하느라 데이트 한번 못해 본 용범에게는 또 다른 모습이 있었다.
저녁 늦게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잠시 창밖을 내려다보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몸이 달아올랐다. 거리를 지나가는 한 여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치마 입고 높은 구두 신고 또닥거리면서, 엉덩이 흔들며 지나가는 여인을 바라보노라면 마음에 불이 붙었다. 달아오르는 가슴을 억누를 수 없었다. 치마만 보면 가슴이 활활 타올랐다. 30년이 지난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일이지만, 그때 만일 짝사랑하는 여학생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용범은 이렇게 멀리 날아다닐 수 없었으리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2. 대학을 졸업하면서
대학을 졸업할 즈음에 짝사랑하던 여학생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정말 귀한 만남인데도 용범에게 아무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그냥 헤어졌다. 30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아도 같은 캠퍼스, 같은 과, 옆자리에 앉아서 같이 공부하던 그 여학생보다 더 좋은 배우자감을 만나 본 적이 없다. 짝사랑이 용범의 눈을 멀게 하였다.
이 아까운 젊은 시절을 군대에서 헛되이 보낼 수 없다고 생각한 용범은 대학원에 진학하였다. 머리가 녹슬기 전에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과 군에 가기 전에 인생에 대해서 더 배우고 싶다는 열정이 용범의 삶을 사로잡았다. 짝사랑하던 여학생이 공부했던 서울로 가고 싶었다. 경기도에서 교편생활하며 주말에는 강의 들으러 서울로 갔다. 대학원을 졸업할 즈음에 카투사 시험제도가 생겼다.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카투사에 지원하였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교단을 떠나 훈련소로 갔다. 논산에서 어려운 훈련을 마치고 평택에서 후반기 교육을 받았다. 밤 열차에 실려 평택 카투사 훈련소로 갔다. 천국과 지옥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논산 훈련소에서 평택으로 옮기면서 천국생활이 시작되었다. 평택에서 후반기 교육을 신나게 마치고 근무지로 배치되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그 좋은 계절에 또 다시 지옥생활이 시작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졸업하고, 나름대로 가치관이 확고한 용범이가 직면한 현실은 너무도 뜻밖이었다. 후반기 교육을 같이 마친 세 사람이 이 부대에 배치되었다. 크리스마스 이브, 이 좋은 시간에 신고식이 있었다. 젊은 노인이 인상을 쓰며 다가왔다. 셋을 나란히 세우고 주먹으로 가슴을 쳤다. 한 사람은 졸도하였고... 모두가 생지옥을 경험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카투사 생활이 용범에겐 너무 어려웠다. 미군부대에서 근무하면서도, 일과가 끝나면 카투사끼리 또 다른 생활이 있었다. 좋은 시설과 많은 시간들을 밤만 되면 카투사끼리 모여서, 김치를 준비하고 라면을 끓이느라 바빴다. 미군 식당에 가면 그렇게 맛있는 음식들이 철철 넘치는데도 고기가 싫다고, 김치가 먹고 싶다고, 고참들은 라면만을 고집하였다. 식당으로 가는 것을 귀찮아하면서, 라면만 기다렸다. 라면이 맛있는 것인지, 가만히 앉아 있으면서 라면 준비하는 것 보기를 즐거워하는 것인지, 참으로 별난 세상이었다.
헌병부대라 고참들은 특별한 혜택을 누렸다. 어떤 고참들은 부대 밖에다 살림을 차렸다. 왜관 창에서 물건을 훔쳐간다. 헌병대 고참이라, 쫄따구들은 고참이 차를 타고 지나갈 때는 대충대충 검사한다. 그러면서 왜관창의 것을 훔치고, 그것을 팔아서 부대 밖에다 살림을 차린다. 용범은 이런 현실 속에서 많은 일들을 생각하곤 하였다. 때로는 미군과 밤 근무를 하면서 상상의 날개를 펴기도 했다. 미군이 보는 잡지에서 결혼에 관한 광고를 보고서 많은 관심을 보였다. 밤새도록 자신의 약력과 학력과 소망사항들을 적어서 미국으로 보냈다. 그 편지 때문에 그렇게 많은 여군들이 용범의 상관으로 드나들었다고 용범은 생각한다.
용범은 밤낮 근무하던 순찰근무에서 행정사무 보는 일로 바뀌고 그 일을 담당하는 여군 장교 밑에서 근무하였다. 얼마 있다가 또 다른 여군 장교로 바뀌었다. 이런 저런 미래를 상상해 보기도 했지만, 짝사랑에 익숙한 용범의 마음을 어느 여군 장교로도 채울 수 없었다. 짝사랑에 익숙한 용범은 군대생활 하는 동안에도 계속 짝사랑을 하였다. 이번에는 그 대상이 바뀌었다. 교편생활하며 만났던 아이들과 편지를 주고받았다. 외롭고 고달픈 군대생활이었지만 아이들에게서 오는 편지 받는 일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이 아이들 중에 하나를 키우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하였다. 공부 제일 잘 하는 아이를 키우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휴가차 서울에 갔다. “꼭 대학에 가야만 하느냐”면서, “선생님과 결혼하고 싶다”는 아이를 휴가 기간 중에 서울 카페에서 만났다. 선생님과 제자의 만남인지, 두 청춘남녀의 만남인지 아무 일없이 헤어졌다. 훗날 제대하고 각박한 서울 생활을 하다가 그 아이를 만나러 갔는데 일류대학에 다니면서 멋있는 남자들을 많이 만나본 탓인지 용범에게는 아무 관심도 없었다. “괜히 찾았구나” 하며 외로운 모습으로 버스에 몸을 실었다. 혹시나 하고 찾아갔다가 역시나 하면서 멀리 허공만 바라보며 정말 초라하고 피곤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군복무를 마치고 교편생활로 돌아왔다. 용범에게 무엇보다 어려운 일은 선생님들의 생활 모습이다. 입만 살았다고 해야 할지, 하루 일과가 끝나면 끼리끼리 모여서 술자리를 마련한다. 끼리끼리 모이는 재주가 없는 사람은 왕따를 당한다. 한국사회는 술 권하는 사회다. 한국사회는 군대식 사회다. 모든 남자들이 2-3년씩 의무적으로 군대생활을 해야 한다. 미군부대에서도 근무가 끝나면 카투사끼리 모여서 고참/ 쫄따구 하면서 지내는데, 일반 한국군에서는 얼마나 심할까? 이런 생각을 하노라면, 용범은 벌써 한국을 떠나 저 멀리 미국 하늘을 날아다닌다. “미국에 가기만 하면 무엇이든 하리라. 무엇이든 하리라. 이렇게 술 권하는 사회, 이런 군대식 사회에 더 이상 머무를 수 없다. 왜 이렇게 괴로워하면서 이곳에 머물러야 하나?”
용범은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로 오면서 큰 교회들을 방문하였다. 결국에는 여의도 순복음 교회에 적을 두고 야간에는 신학공부를 하면서 고등부 교사로도 봉사하였다. 얼마 안 되는 봉급을 받으면서도 정성껏 십일조를 준비하였다. 고등부를 담당하는 장로님의 신앙생활을 보며 많이 감동 받았다. 교사 금요 철야를 하고 토요일에 출근하기도 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꿈같은 이야기지만 용범이가 직면한 그 시절, 그 분위기 속에선 아주 평범한 일이다. 그러던 어느 날 철야기도에서 용범은 또 다른 도전을 받았다. 어느 교수님의 신앙 간증이다. “네덜란드 국왕에게 편지를 보냈더니, 국왕에게서 회신이 왔다. 당신이 원하는 대학에서, 당신이 원하는 과목을, 당신이 원하는 기간 동안 와서 공부하라는 회신을 받았다”는 간증이다. 흉내 내기 좋아하던 용범은 얼마 후 미국 대통령한테 편지를 썼다. 기도하며 편지를 써서 보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회신이 없었다. “편지 내용이 잘못인가, 나의 의도가 잘못인가” 속상해 하면서 지내는 동안, 하나님께서 새로운 길을 준비하셨다.
나이는 점점 많아지고, 유혹은 끊이질 않았다.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면서 감정에 끌리는 대로 무책임한 행동을 해대는 자신의 모습에 괴로워하였다. 순수함과 욕정이 뒤범벅이 되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 좋은 시절을 다 보내고 데이트 한번 안 하고 바다 건너 여학생만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서, 그 좋은 기회, 그 좋은 시절을 다 보내고, 이렇게 지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도 초라했다. 무엇보다도 다정다감한 시골마을을 떠나 차디 찬 겨울날, 얼어붙은 서울거리를 지날 때면 갑자기 엄습하는 외로움에 벌벌 떨곤 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여인을 만났다. 그 사람도 이민을 계획 중에 있었다. 외로움에 꽁꽁 얼어붙은 용범에게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주셨다. 그 귀여운 모습을 안주머니 깊이 넣고 다니면서 교실에서건, 교무실에서건, 복도를 걸어가면서도, 꺼내 보곤 하였다. 때로는 교실 뒤에서 아무도 모르게 꺼내 보고 있는데 아이들이 보고 싶다고 야단법석이다. 선생님들도 보고 싶어 했다.
용범은 그 여인과 결혼하였다. 결혼 후 일 년을 지내면서 아내와 많은 갈등이 있었다. 결혼이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만남이지만, 부부는 자라온 배경을 짊어지고 온다. 자라면서 저장해 놓은 추억의 창고로부터 무의식중에 흘러나오는 것들이 있다. 가끔 만나는 장인 장모와의 갈등도 있었다. 용범은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울화를 어디다 쏟아 부어야 할지 당황하곤 하였다. 아내에게서도 미운 점들이 하나씩 눈에 띄었다. “그렇게 짝사랑하며 키워온 꿈이 결국 이것이란 말인가?” 하면서, 용범은 자신을 미워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근무 중에 전화를 받았다. 병원 응급실로부터 온 전화였다. 결혼생활로부터 오는 갈등이 너무 심해서 첫 아이가 유산되고 말았다. 병원에 초라하게 누워있는 아내를 보면서 후회를 한다.
그 어려운 시절, 아이를 낳고도 키우지 못하던 시절에 엄마가 돌아가셨다. 용범의 아내는 어느 집으로 보내졌다. 거기서 자랐다. 강원도 시골에서 서울로 입양되어 국민학교 시절을 서울에서 보냈다. 그런 생활 중에서도 성적표를 보면 전부 “수”였다. 부반장까지 하였다. 서울에서 경기도 시골구석으로 이사 가는 엄마를 따라서, 휘황찬란한 서울생활을 마무리하고 시골 중학생이 되었다. 거기서도 학교 대표로 수학경시 대회에 나갔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엄마 곁을 떠났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실업학교에서 선생님들의 귀여움을 받으며, 사무실에서 근무하였다. 학교 대표로 청와대에 가서 보건사회부 장관의 상을 받았다. 일하며 조금씩 모아놓은 돈을 어려워하시는 엄마께 빌려드렸지만 되돌려 받지 못했다고 한다. 비참하게 누워있는 아내를 바라보는 동안 아내의 모든 이야기들이 용범의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어려운 형편에서도 악착같이 살아온 사람, 실업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엔 친한 친구와 단 둘이서 대학진학을 꿈꾸며 지냈던 이야기, 그 친구는 지금 수학선생이 되었다. 아내는 국립간호학교를 돈 한 푼 안들이고, 기숙사생활 하면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였다. 일기장에 써놓은 장래의 꿈을 읽으면서 아내의 야무진 모습에 감탄하곤 하였다. 그러나 매일 부딪히는 아내와의 갈등을 피할 수 없었다. 부부간의 사고방식이 너무 많이 달랐다.
용범이도 나름대로 어려운 어린 시절을 가난한 시골에서 보냈다. 농촌 마을에서 궂은 일, 어려운 일 하는 부모를 도우며 자랐다. 시골 동네에서 화투판, 술주정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저렇게 인생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다짐하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 1년 후, 미국에서 초청장이 우편으로 배달되었다. 부부에게 임시영주권까지 보내왔다. 아내는 서둘러서 11월 초에 떠났고, 용범은 12월 중순까지 기다렸다. 그래도 공립 고등학교에서 안정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데, 이 좋은 직장을 버리고 무작정 떠난다는 게 두려웠다. 겨울방학 동안 지내보고 미국에 정착할 것인지를 결정하기로 했다. 아내 혼자서 미국 행 비행기에 임신한 몸을 실었다.
3. 낯선 이국땅에서
아내가 일하는 병원은 뉴져지에 있었다. 임신한 몸으로 아무도 없는 이국땅으로 떠나간 아내를 생각하면서 날마다 전화하였다. 아내를 보내고 나서 한 달 후 겨울방학이 되었다. 용범이도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방학 동안 미국에 살아보고 삶터를 결정하기로 했다. 뉴욕 비행장에 마중 나온 아내를 만났다. 까만 외투를 걸치고 있어서 배가 얼마나 커졌는지는 볼 수 없었다. 온 세상은 하얀 눈으로 덮였고, 아내는 까만 외투에 까만 목도리를 하고 있었다. 아내의 그 아름다운 모습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교실에서건 복도에서건 아무데서나 막 꺼내보던 바로 그 모습이다. 뉴욕 겨울바람 때문인지 야무진 아내의 모습은 더욱 아름답게 보였다.
아내는 병원 기숙사에서 지내고, 용범은 기숙사 옆에 방 하나를 얻어서 얼마 동안 지냈다. 아내를 보고 싶으면 뱃속에 있는 아기 이름을 불렀다. “사무엘!” 그러면 아내는 고개를 내밀고 용범에게 손짓을 했다. 아내의 배는 점점 부풀어 올랐다. 해산날이 가까워 오면서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아내는 만삭된 모습으로 병원으로 갔고, 용범은 맨해턴으로 가서 공부도 하고 일거리도 찾았다. 병원근무를 하고 집에 돌아오면 간호사 시험 준비를 했다. 독신으로 함께 온 사람들도 모두 같은 형편이다. 병원 일하랴, 간호사 시험 준비하랴, 참으로 바쁜 생활이다. 드디어 시험 날이 되었다. 한국에서 온 대여섯 명의 간호사들이 시험을 보았는데, 얼마 후 결과가 발표되었다. 간호사 시험에 떨어진 사람들은 방안에 갇혀서 시험이 통과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병원일도 중단됐다. 일을 하지 않으니 생활비도, 삶의 모습도 엉망이다. 몇 사람이 시험에 떨어졌다. 아내는 임신한 몸인데도 시험에 통과했다. 아파트 위층에 살고 있던 간호사는 시험에 떨어져서 병원 근무도 못하고, 집에서 시험공부만 했다. 얼마 후 아내가 해산을 했다. 그렇게 힘든 생활 중에서도 병원 어느 아기보다도 크고 건강한 아이가 태어났다. 이름 짓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당시 용범은 컴뮤니티 대학에서 미국 역사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었다. 링컨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에서 온 이름, 성경에서 온 이름, 강의에서 얻은 이름을 합쳐서 이상한 이름을 지었다. 지금 생각해도 조금 이상하다. 아이도 그 이름을 싫어한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선 사용하지 않는 이름이니까, 그 이름을 부를 일이 없다.
겨울방학 동안 미국에 살아보고 결정하기로 했지만, 용범은 즐거운 마음으로 자신 있게 결단할 수 없었다. 뉴져지에서 버스 타고 맨하탄 버스터미널에서 내린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추운 겨울 버스터미널의 광경이다. 용범은 맥이 빠지는 자신을 가다듬을 수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다가오면서 손을 내미는 사람들에게, 서투른 영어로 전도하였다. “이렇게 살지 말고 예수 믿으세요”라고 대담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지상천국으로 알고 있었는데, 미국에 이렇게 비참한 광경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손님보다도 더 많은 집 없는 거지들이 추운 겨울을 보내려고 터미널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학교에 자신 있게 알리지도 못한 채, 그냥 미국에 정착하게 되었다. 미국에 정착하기 위해서 용범은 최선을 다하였다.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세탁소에서 한 달간 일하다가, 교회 사찰로 일자리를 옮겼다. 사찰로 일하면서 미군에 지원하였다. 첫아이 돌잔치를 치른 후 용범은 훈련소로 갔다. 불행하게도 훈련소에 들어가는 날,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범하였다. 전쟁이 시작되었다. 훈련소에서 사우디로 파견되는 많은 예비군들을 지켜보았다. 용범도 훈련이 끝나는 대로 사우디로 파견될 것이다. 전반기 훈련이 끝나고 후반기 교육이 시작되었다. 다행히도 후반기 교육이 지체되면서 그냥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내는 아이를 데리고 병원 일까지 했다. 우연히 만난 사람을 집에 두고, 아내가 병원에서 일하는 동안 아이를 돌보도록 했다. 한국에서 여행 왔다가 돌아가지 않고 지내는 처녀였다. 아이 돌보는 경험 없는 불안정한 사람에게 아이를 맡긴 것이 싫었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다. 훈련이 길어지면서 가족이 합치는 일도 늦어졌다. 전화로 통화만 하다가, 한번은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훈련소로 왔다. 그럭저럭 지내노라니 훈련이 일주일이면 끝난다.
답답한 마음이 용범의 목을 꼭꼭 죄고 있었다. 너무도 억울하고, 너무도 답답한 마음을 가눌 수 없었다. 어느 날 저녁에 예배당으로 갔다. 아무도 없는 예배당에서,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한국말로, 예배당이 무너져 내릴 정도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하나님께 기도 드렸다. 세계평화를 위해서, 아무도 없는 이 미국 땅에 갓난아이와 아내만 남겨놓고 전쟁터로 가야 하는 신세타령을 하였다. 훈련이 끝나면서 전쟁도 끝났다. 우수한 성적으로 후반기 교육을 잘 마치고 근무지로 배치되었다.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용범의 신나는 군대생활이 시작되었다.
온 가족이 부대 옆으로 이사를 왔다. 용범은 군대은행에서 근무하고, 아내는 가까운 병원에서 일하였다. 믿을 만한 미국 할머니에게 필요할 때마다 아이를 맡겼다. 용범네는 정말 열심히 살았다. 그러나 항상 부부간에 일치하지 아니하는 어떤 부분이 있었다. 한번은 부부 싸움하는 것을 알고 이웃사람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차가 왔다. 한번은 부부가 이혼하기로 작정하고, 이혼하러 그 빌딩 앞에까지 갔다. 아내와의 갈등뿐 아니라 용범은 군복무 중에도 갈등이 많았다. 옆집에 아이를 데리고 혼자 사는 여군이 있었다. 같은 계급이면서도 용범보다 영어를 잘 하고 근무경력이 조금 많으니, 용범 위에 군림하려는 일이다. 은행을 담당하는 장교도 용범보다 그 여군에게 더 많은 책임을 주었다. 인종차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 더 많은 군 경력과 의사소통이 쉬운 여군에게 책임을 더 부여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용범은 속이 상했다.
그런 갈등 중에서도 용범은 부대에서 실시하는 대학과정 클래스를 택하기도 하였다. 한번은 출근길에 너무 피곤해서 앞 차를 들이받고 말았다. 밤 11시에 퇴근하는 아내를 데려오고, 새벽마다 하는 PT(훈련)에도 참석하였다. 아이를 맡겨야 하고… 이 일 저 일로 분주하게 군대생활을 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에 나왔다가 부대로 향하는 차들로 길이 꽉 막혔다. 방심하면서 의자를 조금 뒤로 젖히고, 졸면서 운전하고 있었다. 조금 가다가, 한참 섰다가 하면서, 정말 천천히 움직이는 차의 행렬에 있다가, 깜박 조는 바람에 앞 차를 들이박았다. 차는 망가졌지만 다행히도 몸이 다치지는 않았다. 어느 날 점심시간에 잠시 집에 들러서, 아내와 잠시 사랑을 나눴는데 둘째가 태어났다. 둘째가 태어나서 몇 개월이 지났을 때, 근무 중에 갑자기 코와 입에서 피가 쏟아졌다. 코피 흘리는 정도가 아니라, 피 덩어리가 코와 입에서 막 쏟아졌다. 병원에서 검사를 하더니 덴버에 있는 더 큰 군대병원으로 보내졌다. 진단결과는 죽을 준비하라는 경고다. 말기 암으로 한 달 사형선고가 내려졌다.
아내도 아이들을 데리고 덴버병원 옆으로 이사를 왔다. 병원 옆 아파트에 살면서 치료를 받았다. 머리를 쪼개고 수술을 한다면 간단히 도려낼 수 있지만, 머리 쪼개는 일이 위험하다고 수술은 안하고, 방사선 치료와 약물 치료만 받기로 했다. 이런 처절한 상황에 직면할 때마다 떠오르는 별이 있다. 어린 시절,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려던 그 열정이 용범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용범은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었다. 근무하면서 통신으로 공부하던 용범은 신학교에 보낼 편지를 썼다. “고등학교 시절에 서원한 것을 무시하고 살다가 이런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암 치료를 받으면서라도 개척교회를 하고 싶습니다.” 이 땅에서 할 일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데려가지 않으신다는 얘기를 들었던 용범은, 마지막 살 길이 서원을 이루는 일이라 생각하면서 신학교에 보낼 편지를 썼다. 써놓고서도 치료 받느라 너무 지쳐서 편지를 보내지 못했다.
마침 병원 옆 한인교회에서 부흥집회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 교회를 찾아갔다. 집회가 끝났을 때, 서울에서 온 강사목사와 대화할 시간이 있었다. 사정을 알고 용범에게 필요한 성경말씀들을 많이 적어주었다. 그 중에 하나가 용범에게 소망의 빛이 되었다. 방사선 치료를 받고 있던 용범은 그 말씀을 읽는 순간, 새로운 소망을 보았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말4:2).” 많은 성경구절들 중에서 이 한 구절에 용범은 모든 소망을 두고, 읽고 또 읽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 말씀은 용범에게 생명양식이 되었다. 이 말씀이 하나님께서 치유하시겠다는 음성으로 들려왔다. 방사선 치료를 받느라 너무 피곤하고 지쳐서 기도할 힘조차 없었다. 아내가 어린 아이 둘을 데리고 치유 받는 모습을 밤늦도록 지켜보다가 병원 문을 나설 때면, 눈물이 막 쏟아졌다. 내일 다시 아내와 저 아이들을 보게 될는지, 용범은 두려움에 떨었다. 아내는 힘들어하는 남편을 생각하며 정성껏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왔지만, 방사선 치료 받느라 목이 다 헐어서, 음식을 삼킬 수가 없었다. 음식을 못 삼키니 용범의 몰골이 말이 아니다. 밤늦도록 병원에 있다가 떠나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밤마다 두려움에 떨었다. 방사선 치료의 아픔과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면서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병원에서 방사선 치료를 받은 후 아파트로 옮겼다. 약물 투입하는 주사를 맞고 아파트에서 지내다가, 다시 주사 맞으러 병원으로 갔다. 방사선 치료는 목구멍이 헐어서 음식을 삼킬 수 없었고, 약물 치료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주사로 약물을 투입하여 건강한 세포와 암세포를 모두 죽인다. 약물을 투입하고 아파트로 돌아오면 난리가 난다. 드러누울 수도, 앉아 있을 수도 없다. 밤에도 잠들 수 없다. 모든 세포가 죽어가면서 용범은 생지옥을 경험한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어느 고등학생은 약물 치료가 너무 힘들어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렸다고 한다. 앉아 있을 수도 드러누울 수도, 그렇게 흔한 잠조차 잘 수 없는 이 끔직한 날들을 6개월 정도 보냈다. 그리고 임시 상이군인이 되었다. “하나님, 이번만 살려주시면 남은 생을 주님을 위해 살겠습니다. 주님, 이번만 살려주시면 하나님을 위해 이 몸 바치겠습니다.” 임시 상이군인이 되면서 덴버 신학교에 등록하였다. 훈련 받으면서 쌓아둔 GI bill을 생각하면서 신학교에 등록하였다. 놀랍게도 상이군인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 장학금이 있었다. 수업료와 책값과 생활비가 모두 포함된 특별 장학금이다. 3년 과정을 은혜롭게 잘 마치고 일할 곳을 찾았다.
시애틀에 있는 한 교회를 방문한 후, 옛 근무지 한인교회에 전화를 걸었다. 시애틀에는 일할 일군이 많지만, 시골에는 일군이 없었다. 하나님께 기도드리면서 일군이 필요한 곳으로 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시골로 가면서 군대로 편지를 보냈다. 이곳에 가서 사역하려면 최소한의 생활비가 필요하다고 편지를 썼다. 얼마 후 평생 상이군인으로 바뀌면서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생활비를 받았다. 덴버에서 치료받은 후 막내딸을 낳았다. 삼남매를 데리고 시골로 가서 목회하였다. 정말 어려운 시간들이었지만, 하나님께 충성하느라 주간신문도 발간하며 열심을 다하였다. 제대하고 10년 내에 사용해야 하는 군대장학금(GI bill)을 생각하며, “무엇을 공부할까?” 기도 중에 있었다. 최선의 길은 컴퓨터를 공부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LA에 한국어로 공부하는 박사과정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온 가족이 LA로 이사를 왔다. 이사하는 도중에 덴버를 지났다. 아이들이 잠자는 동안 운전할 생각으로, 덴버를 조금 지나서 하룻밤을 보내고, 새벽 일찍 길을 떠났다. 용범은 짐차를 끌고 앞장서고, 아내는 아이들을 태우고 뒤를 따랐다. 10분 정도 새벽길을 달리는데 앞서 가던 차가 갑자기 뒤집히고 말았다. 새벽길이라 얼음 빙판인 것을 몰랐다. 뒤집힌 차에서 연기 나는 것을 보고, 앞서 가던 청년이 달려와 운전석 유리창을 깨고 용범을 꺼냈다. 짐차 운전할 사람을 구해서 짐차를 맡기고, 용범은 아내가 운전하던 차를 몰고 LA로 왔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전쟁에서 건져내시고, 말기 암에서 살려내시고, 교통사고에서도 구해내신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하면서, 용범은 “최선의 삶을 살리라” 거듭거듭 다짐한다.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4. 풀러튼에서
LA 한인이 운영하는 호텔에서 한 달을 지내면서 거주지를 생각하였다. 오렌지카운티가 아이들 키우기에 좋다는 소문에 오렌지카운티로 왔다. 아이들 키우기에 좋은 곳을 수소문하여 알아보았다. 용범은 너무나 놀라운 일에 직면하고 앞이 캄캄하였다. “아니 어쩌면 이렇게 집값이 비싸?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시골에선 8만달러면 살 수 있는 집들이 여기서는 30만달러다.” 집 살 마음이 생기지 않아 아파트로 갔다. 일 년이 지나면서 집값이 조금 더 올랐다. 또 한 해가 지나면서 집값이 계속 올랐다. 2년 사이에 30만달러짜리가 60만달러로 뛰었다. 집을 가진 사람들이 부자 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아내는 속상해 한다. “오자마자 샀더라면 지금은 백만장자가 되었을 텐데” 하면서 속상해 한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집값이 사람을 망하게도 흥하게도 한다. 고향에서도 좋은 소식들이 들려온다. 땅 값이 많이 올랐다 한다.
오렌지카운티에서 제일 큰 교회를 방문하였다. 책을 통해서 이름만 듣고, 방송으로만 들었던 수정교회를 방문하였다. 다음 주일에는 남가주 사랑의 교회를 방문하였다. 어디로 정할까 아내와 의논하고 아파트에서 가까운 한인교회를 택했다. 이런 저런 일을 경험하면서 벌써 4년이 지났다. 한 시간 운전하여 신학교세미나에 참석하면서 모든 과정을 다 마쳤다. 얼마나 많이 중간에 그만둘까 망설였는지 모른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다양한 모습들을 보면서 용범은 많이 지쳐 있었다. 교회에서 평신도처럼 봉사하면서, 신학교 과정을 다 마치고 논문을 쓰면서, 많은 갈등을 경험하였다. 사람들이 자기 유익추구와 음흉한 생각들을 보면서 많이 괴로웠다.
고등부 예배시간에 선생님들이 돌아가면서 헌금위원을 하였다. 용범의 차례가 되어 헌금위원을 했는데도, 그 다음 사람으로 넘어가지를 아니한다. 착실히 잘하니까 매주 헌금위원 하라는 것이 용범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고등학생들이 할 수 있는 일을 박사과정 중에 있는 목사에게 시킨다 하며 속이 상했다. 강단에서 설교하라고 한다면 밤을 세워서라도 준비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지만, 고등학생들이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하면서 속이 상했다. 이렇게 하면 괴로워하리라 생각하고 괴롭히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느 날 용범은 담당 전도사에게 불평을 털어놓았다. 얼마 후 헌금시간이 없어졌다. 그냥 들어오고 나가면서 헌금하기로 하고 입구에 헌금함을 마련하였다. 용범이가 싫어할 일만 골라가면서 속상하게 만드는 일들이 종종 있었다. 평신도들이 그렇게 한다면 “모르고 했으려니” 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그 정도는 알만한 전도사가 일마다 때마다 자주 그렇게 하는 바람에 용범은 자주 속이 상했다.
담임목사가 한국으로 떠나가면서부터 교회는 한 동안 후임 목사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후임목사로 내정된 분이 그 교회에서 꽉 붙드는 바람에 문제가 생겼다. 다시 새롭게 후임목사 정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다. 일 년이 넘도록 기도하며 기다려도 후임목사가 정해지지 않았다. 그러는 중에 용범은 열심히 짧은 글을 게시판에 올리면서 교회의 안정을 위해 한 몫을 담당하였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담임목사가 정해지면 속에 있는 이 아픔들을 다 털어 놓으리라”고 다짐하곤 하였다. 때가 되어서 후임목사가 정해지고 위임예배를 드렸다. 그 때쯤 하여 용범의 박사과정도 잘 마무리 되었다. 학위증이 우편으로 배달되었고, 학위논문도 출판되었다. 이렇게 좋은 결실을 맺게 하시는 하나님 앞에 깊은 감사를 드렸다. 너무나 많은 갈등들이 있었지만, 용범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다. “교회에 부임한지 이제 두 달밖에 안 되었는데, 너무 서두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학위논문도 보여드리고, 새벽예배 때 신앙 간증도 하고 싶다는 편지를 신임 목사에게 보냈더니, 금방 연락이 왔다. 일주일 후 수요일, 사무실에서 기다리겠다는 전화연락을 받았다. 기도하며 주위 사람들에게도 중보기도를 부탁하고, 사무실로 갔다. 20분간 대화를 나누다가 갑자기 “기도해도 되겠습니까?” 하고 묻더니, 기도하고 일어선다. 정말 사무적으로 더 이상 대화할 것이 없다는 태도에 용범은 어리둥절하였다. “담임목사를 만나서 새벽기도 때 신앙 간증을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사역의 길이 열리리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던 용범은 차를 산으로 몰았다. 차는 산에 있었지만 용범의 마음은 푸른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고 있었다. “아니, 이럴 수가!!!”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런 은혜들을 베풀어 주셨지만, 사람들은 그 놀라운 은혜를 하찮은 것으로 묵살시켜버린다.” 용범은 우울한 기분에 휩싸여 있었다. 신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며 간증도 나누었던 목사가 담임하는 교회로 갔다. 문이 잠겨 있어서 다음 날 다시 그 교회로 가서 자신의 마음을 알렸다. “이젠 하던 공부도 다 끝났으니 평신도처럼 봉사하던 자리에서 목사로 봉사할 곳을 찾고 있습니다” 했더니, “당회에 알려보겠다”고 한다. 일주일이 지나도 무슨 연락이 없다. 그렇다고 다시 찾아갈 마음도 없다. 사실 용범은 이 일 저 일로 너무 바쁘다. 일이 아니라 목사로서 일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학교과정을 다 마무리 지은 후부터, 용범은 날마다 성경 한 장씩 읽고, 묵상하고, 설교준비까지 한다. 어느 때든지 기회만 주어지면 나눌 준비를 하는 것이다. 올 해는 한 달에 한 번 설교하는 것이 목표지만, 내년에는 일주일에 한 번 설교하기를 목표로 삼고 있다.
5. 용범의 꿈
인생은 참으로 일장춘몽과도 같다. 지나간 일들을 돌아보기 위해 잠시 시간을 내었다. 머릿속으로 지난 50년을 생각하는 데 단지 몇 분이면 충분하다. 이 생각들을 글로 옮기는 데도 단지 몇 시간이면 충분하다. 지나간 일들이 평소에는 용범의 의식 속에 깊이 숨어 있었다. 시간을 내어 하나씩 끄집어내니까 이렇게 고스란히 떠오른다. 참으로 신기하고 놀랍다. 이렇게 많은 기억들을 지금까지 마음에 품고 살아왔다는 인생의 신비함에 용범은 다시 한 번 놀란다. 어느 조용한 날 하루, 지나간 일들을 돌이켜보며 자신의 삶에 대해서, 인생의 신비함에 대해서 거듭거듭 생각하면서,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남은 날들을 살아갈 것인지, 자신에게 가능한 새로운 꿈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용범은 지금 현재, 자신이 누구인지부터 물었다. 고교시절 꿈꾸던 자신의 모습을 다시 떠올려 보았다. 어두운 밤 산에 올라 인생의 신비함을 경험하던 순간들, 바닷가를 거닐며 수평선 너머 세상을 마음속으로 헤아리던 날들, 가난한 농촌 마을에서 아버님을 모르는 무식한 다른 동네사람이, 아버님을 도둑놈처럼 취급하며 개 패듯이 패던 일도 떠오른다. 법 없이도 살아갈 사람이라고 동네 사람들의 칭찬을 들으며 한 평생을 보내신 아버님, 지금은 먼저 세상을 떠나셨다. 가끔 어머님께 전화를 드리면, 혼자 사는 것이 외로우신지 아버님 상에 밥을 올린다고 말씀하신다. 아버님이 먼저 가셨으니, 이제 홀로 남은 어머님도 뒤따라 갈 일을 생각하면서, 어떤 마음으로 지내실까 궁금하기만 하다. 아무리 중보기도를 하여도 용범의 마음은 허전할 뿐이다. 조금 성경이야기를 꺼내기라도 하면, 연로하신 어머님께서는 용범의 이야기가 어려운 듯이 피할 길을 찾으신다. 어려워하시는 어머님께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로 무거운 짐을 지워드릴 수 없다. 두 눈을 부릅뜨고 철저히 조상숭배, 심방(무당)을 불러다가 굿하기를 즐기시는 터줏대감(형님)들이 계시다. 어머님께서 막내에게만 특별한 관심을 보일 수 없음을 용범은 잘 알고 있다.
일가친척조차도 구원하지 못한 용범은 자신의 믿음과 목사라는 직분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렇지만 용범 자신에게는 그 직분이 삶의 뿌리며 존재의미임을 부인 못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어린 시절의 꿈을 따라 걸어온 인생, 갈 만큼 갔는데도, 특별한 열매가 없다. 캄캄한 밤하늘을 쳐다보며, 어디 유난히 반짝이는 별이 없을까 여기저기를 둘러본다. 캄캄한 밤하늘에 유난히 빛나는 별을 보는 순간, 용범에게도 어떤 소망의 빛이 비취리라 기대를 한다. 허겁지겁 달려온 인생, 어느 덧 지천명의 나이가 되었다. 때로는 욕정에 시달리며 부끄러운 모습을 하였고, 때로는 열정으로 내달리며 하늘 높은 줄 모르던 날도 있었다. 이젠 젊음의 욕정도, 젊음의 열정도 다 시들어버리고 낙엽 지듯이 떨어질 날만 기다리고 있다.
암 치료를 받느라 그 후유증이 남아 있다. 음식을 삼키면 가끔 음식이 코로 나온다. 물을 마시면 물이 코로 나온다. 물이 없으면 아무 음식도 삼킬 수 없다. 침샘이 망가졌다. 암 치유과정에서 귀에 튜브를 집어넣었다. 치료가 끝나면서 튜브를 빼었지만 그 구멍이 저절로 메워지지 않았다. 구멍 메꾸는 수술을 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다. 오히려 수술 후부터 성한 귀까지 이상해졌다. 양쪽 귀가 다 말썽이다. 계속 정기 검진을 받지만 불편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른쪽 귀는 거의 막혔다. 왼쪽 귀로만 듣는데, 얼마가 지나면 왼쪽 귀조차 막히리라. 그러면 귀머거리로 지내야 한다. 용범은 이런 부담감으로 하루하루 살아간다.
자신의 한계를 여러 번 경험하면서, 용범은 근거 없는 일들에, 허망한 욕구들에 목숨 걸지 않기로 다짐하곤 한다. 아무 욕심도 없다. 그렇지만 오늘 당면한 일들에 무관심할 수는 없다. 때로는 도서관에서 빌려온 어린이 불경을 읽으면서, 부처님의 마음을 헤아려 보기도 한다. 부처님께서 궁중 생활하시다가 가끔 궁궐 밖으로 가마를 타고 산책을 나가셨다. 하루는 병든 사람의 처절한 모습을 보고 가마를 세우고 왜 저 모습을 하게 되었는지를 묻는다. 신하들의 대답을 듣고 불편한 마음으로 산책을 중단하고 궁궐로 돌아와서 곰곰이 생각한다. 얼마 후 다시 가마를 타고 산책을 나간다. 이번에는 나이든 노인을 보고 가마를 세운다. 저 사람은 왜 저 모습인지를 묻는다. 누구나 나이가 들면 저렇게 된다는 신하들의 대답을 듣고 불편한 마음으로 산책을 중단하고 궁궐로 돌아와서 인생들의 노쇠함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한다. 얼마 후 다시 가마를 타고 궁궐 밖으로 산책을 나간다. 이번에는 애곡하는 사람들의 긴 행렬을 보았다. 가마를 세우고 왜 저렇게 하는지 묻는다. 누구나 죽으면 저렇게 한다는 신하들의 대답을 듣고 불편한 마음으로 산책을 중단하고 궁궐로 돌아온다. 그리고 죽음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한다. 얼마 후 석가모니 왕자님은 궁궐을 떠나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고통당하는 인생들에게 해탈의 길을 보여주신다. 생로병사로 고통당하는 인생의 모습을 ‘고해’라고 표현하신다. 고통의 바다에서 허덕이는 인생들에게 열반의 세계를 보여주신다. 모든 인연을 끊어버리는 것이다. 세상일로부터 초월하는 것이다. 해탈하는 것이다. 열반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용범은 지금까지 연구하며 살아왔던 자신의 신앙을 돌아본다. 석가모니의 마음이나 크게 다를 바 없다. 용범의 한계도 생로병사다. 살다가 때가 되면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 그게 전부인가 하는 의문에서 모든 선구자들의 삶이 비롯되었다. 석가모니는 산속으로 들어가서 도를 닦고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다. 인생들이 추구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을 걸어가셨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것은 천지창조로부터 시작된다. 우주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계시다. 그의 뜻대로 우주만물을 창조하셨고, 지금도 다스리신다. 창조 마지막 날에 사람을 창조하시고, 만물을 그 손에 맡기셨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신을 드러내셨다. 우주만물을 통해서, 그리고 예언자들을 통해서도 드러내셨다. 세상 마지막 때에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셔서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셨다. 성경은 이런 일들을 기록해 놓은 이야기책이다. 성경에는 이런 일들을 미리 예언하고, 그 예언들이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기록한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그 약속들을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라 성경은 기록한다. 부처님은 인간이면서, 해탈의 경지에 이르러서 인생들에게 최선의 길을 보여주셨다. 예수님은 하늘의 이야기를 가지고 세상에 오셨다. 이 둘 사이의 다른 점은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최선의 길과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하나는 인간의 성취며,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계시다.
용범은 지금까지 하나님의 계시를 믿고 따라왔다. 날마다 경험하는 자신의 한계, 인생들의 치우침을 경험하면서,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구원의 손길이 아니면, 우리 인생들은 이 고통의 바다에서 헤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한다. 부처님도 세상을 ‘고통의 바다’라 하셨고, 용범도 이 세상이 ‘고통의 바다’임을 뼈저리게 경험한다. 어떻게 이 고통의 바다에서 헤어 나올 수 있느냐 하는 방법이 서로 다르다. 아무리 도를 닦아도 인생들은 온전할 수 없다. 아무리 수양을 하여도 이 세상은 지상낙원이 될 수 없다. 죄와 사망이 왕 노릇 하는 이 세상에서, 이 고통의 바다에서 헤어 나오는 길은 하늘로부터 구름 타고 내려오실 하나님의 손길에 달려 있다. 그날을 기다리며, 그 구원의 날을 사모하며, 하루하루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용범은 생각한다. 용범은 마지막 날까지 꿈을 꾸며 살아갈 것이다.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그 날을 꿈꾸며 살아간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 태어났다가 빈손으로 이 세상을 떠나간다. 역사가 그런 사례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유명한 사람들도 왔다가 갔고, 무명한 사람들도 왔다가 빈손으로 갔다. 어떤 사람은 부처님의 길을 따랐고,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길을 따랐다. 어느 길을 따르든 세상에서 당하게 되는 고통을 피할 순 없다. 고통의 바다를 건너가면서 당하는 모든 고통 속에서도, 멀리 보이는 그 나라를 소망하면서, 인내하며 고통의 바다를 건너가는 것이 현명한 삶이다. 멀리 바라보는 소망이 있으면, 가까이 널려 있는 온갖 잔 근심들이 맥을 못 추고 비실거리다 사라진다. 세상 사람들 모두 욕심을 버리고, 서로 도우며, 서로 위로하며, 서로 격려하며,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이 고통의 바다를 항해한다면, 이 세상이 좀 더 새로워지리라. 전쟁도 그치고, 범죄도 그치고, 빈부귀천이라는 불편한 제도도 사라지리라. 모두가 죽음 앞에 겸손히 엎드릴 때, 이 세상은 참으로 공평해지리라. 죽음 건너편에 있는 나라를 소망하는 사람들은 좀 더 인내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리라.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의 길인지?
조금이라도 소홀히 하거나 게으를 수 없는 일들이 앞에 놓여 있다. 우선, 용범에게는 가족이 있다. 아내와 3남매가 있다. 가족이 모두 건강하게 이 고통의 바다를 잘 지나가도록 최선을 다하는 일에 게으를 수 없다. 피할 수 없는 이 현실을 깊이 깨닫고, 최선의 자세로 임하도록 이웃들을 돕는 일에도 게으를 수 없다. 둘째, 날마다 묵상하는 진리의 말씀에 민감해지는 일이다. 진리만이 영원하기에 진리를 따라 살아가는 일이다. 이런 생각을 하노라면 아침부터 바빠진다. 아내가 출근하는 날에는 아이들 학교 보내는 일부터 시작된다. 아침 시간이 얼마나 귀중한지, 평상시에는 시간을 그냥 흘러 보내기도 하지만, 아침 시간은 특별하다. 일 분 일 초가 귀중하다. 조깅에서 조금만 늦어도, 큰 아이를 학교 보내면서 어깨에 손 얹고 기도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 둘째를 깨우고 막내딸을 깨우고, 둘째를 학교로 보내고, 서둘러 돌아와야 막내를 학교로 보낼 수 있다. 이렇게 바쁜 와중에, 최선의 삶을 꿈꾸느라 마음까지 바빠진다. 용범의 꿈은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다. 말과 글로 영원한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는 일이다. 잠시 외로워하는 사람들에게, 잠시 쓰러져 있는 사람들에게, 잠시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하고, 일으켜 세워주고, 치유하는 영원한 이야기들을 전하는 일이다. 영원한 관점에서 오늘 당하는 현실을 바라보도록 돕는 일이다. 인무원려 필유근우.
6. 영원한 것
용범은 지천명의 나이가 되도록 살아오면서 누구에게나 적용될 일들을 생각해 보았다.
토끼와 거북이, 인무원려 필유근우(논어), 가장 높이 나는 갈매기가 가장 멀리 본다, 도전과 응전. 이 모두가 온 세상 사람들에게 적용될 이야기들이다. 거북이는 목표가 분명했기에, 그 경주에 최선을 다했다. 멀리 바라보는 소망을 가진 사람이 매일 직면하는 가까이 잔 근심들에도 인내하며 전진한다. 가장 높이 나는 갈매기가 가장 멀리 보며, 멀리 바라보는 사람이 인내하며 목표를 향하여 꾸준히 전진한다. 도전이 없다면 응전도 없다. 응전이 없으면 발전도 없다. 얼마나 강력한 시련인가 보다, 얼마나 현명한 응전으로 시련에 임하느냐가 중요하다. 만일 고교시절에 꿈을 가질 수 없었더라면, 용범의 일생이 어떠했을까? 결혼하고 남편이 떠나버린 이웃집 여인과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목사가 되었어도 4시간이 넘는 밤길을 이웃교회 여교인과 둘이서 운전하던 일, 마음속으로 여인의 온몸을 어루만지던 일이 현실로 이뤄졌더라면, 용범의 삶이 어떻게 변해 있을까? 지금도 아내는 일주일에 삼 일을 꼬박 병원에서 보낸다. 아이들은 모두 학교에 가고, 이웃집 귀여운 부인과 무슨 일이라도 벌인다면 용범의 삶은 어떻게 변할까? 사람에게는 양심이 있다. 신앙인이건 아니건 부인할 수 없는 선한 양심이 있다. 이 양심이 화인 맞으면 무감각해져 더 이상 소망이 없다. 인생들은 얼마든지 유혹 받을 수 있고, 때로는 잘못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잘못을 인정하고 회복하는 일이 필요하다. 잘못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양심이 살아 있어야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 건강한 삶이란 자신에게, 사람들에게,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삶이다.
용범이 온 세상 사람들에게 담대히 외치고 싶어 하는 한 마디는 “꿈을 가지라”는 말이다. 그 꿈이 무엇이든, 그 꿈이 우리 삶을 인도한다. 변화무쌍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면서 방황하지 않으려면 삶의 목표가 뚜렷해야 한다. 멀리 바라보는 사람이 가까이 장애물들을 지혜롭게 헤쳐 나간다. 용범은 변화무쌍한 삶의 와중에서도 고교시절의 꿈에 의존함으로, 이제껏 깨끗함 삶을 잘 꾸려왔다.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는 사람들은 그 나라에 이르기까지, 환난 중에도 인내하며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살아간다. 용범은 꿈을따라 이제껏 왔듯이, 남은 날들도 꿈을 따라 가겠다고 다짐한다. 말로 안되면 글로, 길이길이 전수되어야 할 이야기들을 역사 속에서 끄집어내어, 오늘에 적용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전하리라고 다짐한다. 그러면서 하루하루를 소망 중에 즐거워한다. 작은 일 하나에라도 우리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 앞에서, 소중히 다룬다. 용범은 이런 삶의 자세를 후손들에게 길이길이 물려주고 싶어 한다. 세세에 영원토록 전수될 진리를 자신부터 누려보려고 최선을 다한다.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끝>
입상 소감
이신성
이렇게 귀한 선물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 저의 관심은 제 삶을 나눌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제 삶의 전부가 글쓰는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런 저를 이렇게 격려해주시니 감사합니다. 한국일보가 사람을 키우는 일에 이렇게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꾸준히 글을 써서 험한 세상 살아가는 사람들과 위로와 용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혹시라도 베스트셀러가 출간되기라도 하면
이름이 알려지고, 제 삶이 알려져서 비행기를 타고 다니면서 제 삶의 이야기들을 나눌 꿈을 꾸며 하루하루 신나게 살아갑니다. 그런 저에게 이 소식은 정말 꿈만 같습니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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