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한국을 방문했을때 아마도 내년에 우리집에 놀러 오시겠다 아들녀석과 약속을 하신 모양이다. 여러 일정들을 뒤로 하시고 아이 여름방학에 맞춰 한국에서 친정 엄마가 다니러 오셨다. 오랜만에 손님을 맞이하는 까닭에 나와 남편은 집안 정리에 정신이 없었고, 아이는 할머니께 보여드리고 싶은 것들을 이곳 저곳에 늘어 놓느라 정신이 없었다. 공항에 나가서 할머니가 입국장으로 나오시는 그 순간까지 의자에 잠시도 앉아 있지 못하고 입국장 바로 앞에서 턱을 괴고 앉아있는 아들 녀석의 뒷모습이 재미있기도 하고 기다림이라는 한 모습을 보는것 같아 가슴이 짠~ 하기도 했다.
입국장에서 만난 친정 엄마의 모습이 내 생각속에 있는 엄마보다 많이 늙어 보인다. 작년 여름에 한국에 다녀 와서, 엄마를 만나는게 꼭 일년만인데, 그래서 괜챦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왜 이리 늙으신거야…. 자주 뵙지 못하고 가끔씩 뵙는 엄마의 모습이 너무 큰 시간을 말한다.
집에 도착하자, 엄마는 들고 오신 가방속에서 차곡차곡 짐들을 풀어내신다. 고 작은 가방속에 뭐가 그리 많이도 들었는지…. 미역에 다시마에 마른 반찬에…
그냥 빈손으로 오시라고 그렇게 당부드렸건만, 우리 가족 예쁜 잠옷들까지, 마치 한여름에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 주머니를 풀어 놓은듯 하다.
미국에 있는 딸네 줄거라 여기저기 다니시며 들뜨고 행복한 마음으로 하나하나 준비하셨을 엄마를 생각하며, “이젠 이런거 이곳에도 다 있는데…”하는 말은 그냥 내 맘속에 남겨 두었다.
미국산지 12년인데, 이번에 처음으로 엄마를 모시고 여행을 했다. 처음 엄마가 오셨을때는 유학생신분으로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고, 두번째는 아이가 너무 어렸고, 이번에서야 여행다운 여행을 했다.
샌디에고의 예쁜 바다들을 찾아다니며 일주일을 보냈다. 이제서야 여행한번 모시고 왔다는게 참 죄송스럽기도 했지만, 너무 예쁜 샌디에고의 바다와 마음에 여유와 그로인한 모두의 행복이 있어서 참 좋았다.
가는 곳마다 어려운 영어로 된 지명을 잘 기억하지 못하시는 할머니를 손주녀석이 시험보듯 반복해서 물어보더니, 끝내는 외우게 만들어 드렸다. “요녀석이… 나한테만 자꾸 묻네.”
그러시면서도 아이덕분에 이번 여행은 어디 다녀 왔는지 기억할 수 있겠다시며 좋아하신다.
여행속 사진들을 찾아 예쁜 사진첩하나 사서 넣어드렸다. 한국 돌아가셔서는 다시 가물가물해 질 지명들을 잘 적어서 두고두고 찾아보시라고…
시간은 참 빠르기도 하다. 삼주란 시간이 지나고 엄마가 가실 날들이 가까와 오니, 마음이벌써부터 심난스러워 진다. “할머니 가시면…”이란 말만 나와도 아이눈엔 눈물이 가득 고이고, 그런 모습을 보는 내 마음도 무거워 지긴 마찬가지다.
샌프란 시스코 공항 출국장에 서서 우리 가족은 그렇게 또 한편의 이별 영화를 찍었다. 짐가방을 끌고 돌아서는 친정엄마 뒤에서 나와 내 아들은 그렇게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서 있었다. 뒤돌아 가시는 엄마의 모습이 어찌나 쓸쓸해 보이던지, ‘두분이시면, 뒷모습이 이렇게 가슴 아프진 않았을텐데…,이렇게 외로워 보이진 않았을텐데…’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신 애궂은 아빠를 원망까지 하면서... 엄마의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이 머나먼 이국땅에 나 혼자 남겨두고 가시며, 분명 엄마도 울고 계셨으리라…
엄마가 가시고 며칠은 꽤 고생을 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꽤나 힘든 시간들이었다. 왜 이렇게 외롭게 이곳에 살아야 하나 하는, 정말 이민자면 누구나 한번쯤은 하는 생각부터, 이곳에 살면서 늘 마음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는 이 이름모를 그리움의 대상만 없더라도, 어쩜 내 감정의 큰 부분을 다른 곳에 쏟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말도 안되는 생각까지…
밤만 되면 ‘Grandma Sick”을 외치며 한바탕 울다 잠드는 아이때문에 나까지 더 ‘Mom Sick’을 겪으며, 며칠을 이겨내느라 애를 써야 했다.
한국으로 돌아가신 엄마도 그렇게 며칠은 딸네에 대한 그리움을 삭이시느라 애쓰시겠지…
그래도 이렇게 그리워할 엄마가 있다는게 얼마나 행복한 일이가! ‘Grandma Sick’을 겪을 할머니가 있다는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출근길 수고하라며 현관문 열어놓고 손흔들어 주시던 장모님이 계시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것에 감사해야겠다. 더 늦기전에, 정말 더 늦기전에 그저 감사하다고, 내게, 내 아이에게, 내 남편에게 그렇게 큰 나무처럼, 우리곁에 계셔 주신것이 감사하다고… 그 말씀을 꼭 드려야 겠다.
이제 또 언제가 될지 모를 막연한 만남을 기다리며 우린 이곳의 일상으로 돌아가려 애쓰고 있다. 그리고 마음속의 그 큰 정체모를 그리움을 품고서라도 이곳에서 살아가야 할 새로운 힘을 이곳, 우리 일상의 소중함속에서 다시금 찾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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