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도 말고 덜도 말고 토요일만 같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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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디에고에 간 SF 자이언츠, 파드레스에 2승1패
보스턴으로 간 오클랜드 A’s, 레드삭스에 3연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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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는 멋있었다. 어느 곳 하나 튀는 데 없고 빠진 데 없는 용모, 훤칠하고 매끈한 몸매, 그 남자의 준수함을 키(6피트4인치)와 몸무게(206파운드)뿐인 숫자놀음으로는 설명하기는 어렵다. 백문이 불여일견, 보면 안다.
피말리는 승부의 언덕(마운드)에서 그가 해낸 일은 더 멋있었다. USC를 갓 졸업한 데뷔 첫해(2000년) 반토막도 안되는 풀타이머이면서 7승4패를 거두더니 본격 풀타이머가 된 2001년에는 2년차 징크스도 없이 17승8패로 곧장 스타투수 반열에 올렸다. 2002년 피칭농사는 한층 눈부셨다. 23승5패. 아메리칸리그몫 사이영상은 군말없이 이 왼손투수 품에 안겼다. 그해를 고비로 연간 승수는 줄었다. 11승에서 14승까지 왔다갔다 했다. 나이(1978년 5월생)가 든 것도 구위가 시든 것도 아니었다. 그가 속한 오클랜드 A’s의 전력이 약하니 잘 던지고 못 이긴 경기가 많았다. A’s만큼 쩨쩨하지는 않아도 돈 씀씀이가 인색하다고 소문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7년 1억2,600만달러짜리 통큰 계약서를 들이밀고 지난해부터 그를 베이브리지 너머 자기편으로 만든 것은 시들지 않은 그의 구위를 대변했고 시들지 않을 구위를 암시했다.
그 남자는 잡기에도 능했다. 사시사철 밤낮없이 도박판 축제마당이 펼쳐지는 라스베가스 출신의 이 왼손잡이 사나이는 특히 기타치며 노래하는 솜씨가 프로음악인 뺨쳤다. 시즌이 끝나고 크리스마스 등 축제일이 되면 거리에서 광장에서 끼를 발산하며 행인들을 즐겁게 하고 저 스스로 흥겨움에 취하기도 했다. 그런 외도까지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마운드에서 제몫을 해냈으므로 흉이 될 턱이 없었다. 지토사랑을 더해주는 별미가 됐다.
배리 지토(Barry William Zito).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고 첫선을 보인 작년에는 아니었다. 11승13패. 올해는 더욱 아니었다. 3월31일 LA 다저스와의 원정 개막전에서 불과 5이닝만에 8안타를 얻어맞고 4실점하며 첫 패배를 당한 지토는 4월에는 5차례 선발등판(6일 밀워키 브루어스전, 11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전, 16일과 22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전, 27일 신시네티 레즈전)에서 모조리 쓴잔을 마셨고, 5월에도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전(7일) 휴스턴 애스트로스전(12일) 시카고화이트삭스전(17일)까지 패배행진을 계속했다. 자이언츠 선발투수가 개막전부터 9연패를 당한 것은 기록이었다. 첫 승리를 맛본 것은 5월23일 플로리다 말린스와의 원정전에서였다. 그 다음 5월29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경기에서도 그는 승리, 9연패 뒤 2연승을 거뒀다. 그러나 부활노래는 일렀다. 그 뒤부터 7월말까지도 승리(3승)의 꽃보다 패배(4패)의 덫이 더 자주 그를 덮쳤다.
7월31일 현재 5승13패. 7년치 계약금 총액은 접어두고 그중 올해 연봉(1,450만달러)만 쳐도 승패 숫자는 뒤바뀌어야 마땅했다. 40만5,000달러밖에 못받는 우완신인 팀 린시컴이 탈삼진(167개) 1위에, 다승(11승3패)과 방어율(2.71) 선두권에, 올스타 선발에, 몸값의 수십배를 하면서 벌써부터 사이영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것과 비교돼, 지토의 부진은 실제보다 훨씬 또렷하게 각인됐다. 콜로라도의 어느 야구전문 괴짜기자가 올해 전반기에 지토를 메이저리그 먹튀랭킹 탑순위에 올려놓은 것은 당연했다. 그의 부진은 표정으로 몸짓으로 수없이 카메라에 노출됐다. 마운드 출격 뒤 귀환하면 덕아웃 펜스에 턱과 겨드랑이를 걸치고 동료들과 농담따먹기를 하던 왕년의 여유로운 모습이 싹 가셨다. 구석배기 자리에서 목덜미에 흰 수건을 둘러쓰고 고개를 떨군 채 한숨짓기 일쑤였다.
지토가 마침내 고개를 들었다. 쫀쫀한 자이언츠의 화끈투자에 부응하는 지토피칭으로 함지박 웃음을 찾았다. 지난 2일(토) 내셔널리그 웨스트 디비전의 탈꼴찌라이벌 샌디에고 파드레스와의 원정경기(자이언츠 2대0 승리)에서였다. 지토는 이날 8이닝 0실점으로 시즌 6승째를 거뒀다. 공 116개를 뿌리며 3안타 4볼넷 5삼진. 홈플레이트 엄파이어의 판정에 조금만 더 일관성이 있었다면, 수비실책만 아니었다면, 원히터(one-hitter) 완투승도 가능했을 만점 퍼포먼스였다. 지토의 부활피칭은 또 파드레스에서 자이언츠로 말을 갈아탄 브루스 보치 감독에게도 뜻깊은 보은선물이었다. 보치 감독은 지토가 전반기에 끝모를 부진에 허덕여 예서제서 엔트리 제외압력(마이너리그행)이 비등할 때 보름가량 출격만 열외시켜 한숨을 돌리게 해주는 등 지토에 대한 에이스 예우를 지켰다.
왕년의 사이영상 수상자 지토와 피비, 왕년의 가락을 선보이다. ESPN은 샌디에고 토요경기 결과를 전하는 기사제목을 이렇게 뽑았다. 파드레스 선발투수 제이크 피비도 잘 던졌다. 7이닝 5안타 7삼진 1실점. 기사 첫머리는 이랬다. 이날 밤, 배리 지토는 명품이었다. 그날그날 가장 돋보인 활약을 펼친 선수 3명을 사진과 함께 올려놓는 ESPN 메이저리그 코너에도 지토가 첫 자리를 차지했다. 올해 처음 맛보는, 너무 늦은 영광이다.
이기든 지든 상관없이 올해 내내 지토를 괴롭혔던 불안의 그림자는 일찍 나타났다 일찍 사라졌다. 1회말. 선두타자 스캇 헤어스턴을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운 지토는 타다히토 이구치를 2루수 직선타구로 잡아낸 뒤 브라이언 자일스에게 중전안타를 맞았다. 에이드리언 곤잘레스에게는 볼넷. 후속타자 케빈 쿠즈마노프를 유격수앞 땅볼로 처리하며 첫 이닝 첫 위기를 넘긴 지토는 이후 예리한 체인지업과 커브, 특히 느림보 커브와 대비돼 실제속도(보통 시속 87마일)보다 10마일은 빠르게 느껴지는 패스트볼로 파드레스 타자들을 속속 요리했다. 6회말 3루수 호세 카스티요의 에러로 선두타자 헤어스턴이 출루하고 이구치 뒤 자일스에게 2루타를 내줬으나 지토는 쿠즈마노프를 얕은 우익수 플라이로 처리하며 0의 행렬을 이었다. 소리소리 지르며 득점예감에 부푼 4만여 파드레스 팬들(전체 유료관중 4만1,688명)은 입을 닫았다.
대신 자이언츠의 첫 득점이 곧 터졌다. 7회초. 프레드 루이스가 좌전안타를 치고나간 뒤 2루를 훔치자 벤지 몰리나가 1, 2루수 사이를 꿰뚫는 우전적시타를 깔았다. 8회초, 파드레스는 구원투수 클레이 헨슬리를 내보냈다. 자이언츠 첫 타자 이매뉴얼 버리스는 2루수앞 땅볼로 물러났다. 다음타자 지토가 이번에는 안타로 말했다. 공 밑자락을 톡 걷어올려 좌전안타. 이반 오초아가 볼넷을 고르면서 2루까지 간 지토는 루이스의 중전안타 때 홈까지 파고들어 쐐기득점을 올렸다.
8회말, 지토의 이날 경기 마지막 공연은 그의 위기관리 능력과 지토에 대한 보치 감독의 신뢰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1사후 헤어스턴에게 우전안타를 맞고 자일스에게 2볼2스트라익에서 체인지업으로 영락없는 스트라익을 던졌으나 구심의 손은 올라가지 않았다. 얼굴이 상기된 보치 감독은 즉각 볼넷사인을 보냈다. 지토는 이행했다. 보치 감독은 마운드로 걸어나갔다. 지토교체가 아니라 지토격려를 위한 것이었다. 보치 감독이 다시 덕아웃행 걸음을 시작할 때 포수 몰리나가 지토에게 두번 연속 넌 할 수 있어(You can do it)라고 말하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다. 지토는 해냈다. 물오른 강타자 곤잘레스를 2루수앞 땅볼로 퇴각시키며 불끈 쥔 주먹으로 가볍게 펌프질을 했다. 9회말에는 마무리전문 브라이언 윌슨이 등장, 지토승리를 지켜주며 시즌 30번째 세이브를 올렸다.
앞서 자이언츠는 금요일(1일) 승부에서 10회 연장전 끝에 3대2로 이겼고, 일요일(3일) 승부에서는 1대4로 졌다. 3일 현재 자이언츠는 46승64패, 파드레스는 43승69패가 됐다.
한편 아메리칸리그 웨스트 디비전 오클랜드 A’s는 월드시리즈 디펜딩챔피언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주말원정 3연전에서 싹쓸이패(1대2, 2대12, 2대5)를 당했다. A’는 캔사스시티 로열스에 20년만의 홈구장 3연패까지 합쳐 6연패 수렁에 빠지면서 시즌 53승57패가 됐다.
<정태수 기자> tsjeo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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