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은 그렇지 않지만 내가 20대이던 1960년대 초만 하더라도 시누이와 올케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 그러나 내 집사람과 나보다 두 살 위인 작은 누나 사이는 아주 각별하다. 수유리 국민주택 촌의 이웃이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나이 차이가 세 살 정도라 서로 옷을 바꿔 입기도 하면서 우리가 신혼부부지만 싸움이 잦은 편이었는데 누나는 번번이 내 아내의 편을 들고 했던 역사가 작용했을 법하다. 당시에는 여자가 결혼하면 사직하던 관습대로 은행원이던 누나도, KBS TV 제1기 PD였던 아내도 집에서 하루 종일 보내야했던 시절 둘이서 한 집에 모여 화투 치다가 멸치국물에 수제비 떠먹던 옛날 생각 때문이지 아직도 몇 년 만에 만나기만 하면 화제가 무궁무진하다.
그런 누님과 매형이 거의 4년 만에 우리를 방문 중이시다. 만 72세의 누님과 79세의 매형은 골프를 자주 치셔서 그런지 우리보다 더 건강하신 것 같아 우선 좋다. 그리고 매일 아침 이웃을 한 시간 동안 산책하고 오셔서는 꼭 오이 추수를 당신들이 하시겠다고 고집한다. 하루에 많으면 20여 개를 따는 재미가 삼삼하신 모양이다. 오신 지 한 달 사이에 벌써 400여 개를 추수했고 도합 700개에 육박하고 있으니까 식탁은 오이의 향연일 수밖에 없다. 아침에 딴 오이를 쪼개서 고추장에 찍어 먹는 맛은 천하일미인지 매일 먹어도 안 물리는 모양이다. 오이김치가 있고 오이지도 있다. 오이지가 시어지면 물에 빨아 말려서 오이장아찌로 만든다. 아내는 고급인력 일꾼 둘을 오이 추수에 고용했노라고 농담하면 누나는 ‘악독한 팥쥐 올케’가 시누이를 혹사한다고 말을 받는다. 아내를 부엌에서 헤어나게 하려는 심산으로 외식하자면 ‘경희옥’이 제일이라고 하니까 자주 나가게도 안 된다. 최근 NBC 투데이쇼를 보니까 식당 웨이터들이 못된 손님들에게 보복하는 방법으로 갖다 주는 음식에 침을 뱉는다는 내용을 듣고 나서는 물론 한국식당들이야 그렇지 않겠지만 식당 공포증에 걸릴 만도 하기에 나도 못이기는 척하고 아내의 솜씨를 즐긴다. “장가 잘 들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라는 말로 아내에게 감사를 나타내기는 한다.
아내가 정말로 극진히 매형 부부를 대접한다는 사실은 그들이 인디애나 주에 사는 딸네 집에서보다 우리와 함께 더 계시다 가신다는 점으로 증명된다고 할 수 있다. 아내는 친정식구들 대하는 것처럼 격의 없이 하는 반면 나로서는 반갑고 즐겁기는 두말할 나위가 없지만 내 자신의 처지와 비교해서 나 자신을 들볶는 졸렬한 버릇 때문에 마음이 불편할 때도 있다. 모 은행 상무를 거쳐 방계회사 사장 및 중견기업의 부회장을 지내신 매형 네가 우리보다 훨씬 부유층이라는 사실을 두고 나는 70평생 무엇을 했길래 아내를 내내 고생만 시켰는가 하는 자격지심을 느끼곤 하기 때문이다. 또 누나와 언니 동생 하는 친한 친구 부부가 버지니아에 사는 딸의 집을 방문 중인데 그 남편이 공군 소장 출신이라는 사실도 1964년에 미국에 왔다는 핑계가 있기는 하지만 그 흔한 신문사 부장자리나 대학교수 시절 학과장 자리마저 앉아본 적이 없어 부하들을 거느려본 역사가 전무한 나의 일생과 대조가 되어 내 마음을 불편케 만들고 있으니 참으로 못난 사람이라는 실토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안타까운 일은 우리 부부는 우리가 믿는 종교의 교리대로 하나님의 왕국이 임하면 지상낙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완전한 사람들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즐긴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는데 그 같은 소망에 대해 말을 꺼내기만 하면 특히 누나가 손사래를 친다는 사실이다. 우리들에게는 꼭 믿어지는 성경의 예언이 그들에게는 허황한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지도 모르겠다. 매형이 내시겠다고 고집을 하셔서 넷이 함께 버뮤다로 크루즈를 가는 1주일 동안 오도가도 할 수 없는 ‘사로잡힌 시간’을 이용하여 하나님의 영원하신 목적에 대해 증거 할 수 있도록 한국어 성경을 한권 짐에 넣어야겠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구원의 소망을 공유하여 친척들끼리의 오붓한 정을 영원히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남선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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