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화 [커뮤니케이션 학 박사/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
Synchronicity / 공시성[共時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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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incidences are God’s way of
remaining anonymous.
우연이란 신[神]이 무명[無名]으로
남기 위한 방법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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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클리 대학 근처 약속 장소를 찾아 헤매던 중 생각 없이 들어선
골목길에서 눈에 띄는 고서점이 하나 눈에 들어 옵니다. 왠지 들려가야겠다는 묘한 느낌이 진하게 다가옴에 잠시 차를 세웁니다. 책방에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카운터에 놓인 헌 책이 확 눈에 띕니다. 인도의 성자 스와미 시바난다의 절판된 책 ‘Bliss Divine’, 오래 전 누군가 빌려간 뒤 돌려받지 못해 아쉬워하던 그 책이 바로 내 눈 앞에 보란 듯 버젓이 놓여 있는 겁니다. 가격은 5불, 가치로는 100불도 넘는 바로 그 책이 그렇게 ‘우연히’ 내 손에 다시 들어오게 됩니다. 귀까지 당겨지는 입술에 만연 미소를 띄우며 홀로 되 뇌우던 영어 단어는‘synchronicity’바로 그 말이었습니다.
비슷한 얘기 하나 더.
지난 봄 학기 어느 날, 아침 강의를 위해 8시경 캠퍼스를 가로질러 오피스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한 백인 청년이 다가와 환한 얼굴로 인사를 합니다.
“저, 혹시 절 기억하는지요? 몇 학기 전 교수님 강의를 듣고 커뮤니케이션으로 전공을 바꿨거든요. 퍼블릭 스피킹 시간에 어찌나 겁이 나던지 지금도 아슬아슬한 느낌이지만, 교수님이 소개한 말씀 ‘Feel the Fear and Do It Anyway!’란 금언이 아주 큰 용기가 되었지요. 지금은 ‘디베이트 [Debate] 클럽’에 참가해 논쟁을 즐길 정도랍니다. 어쨌든 고마웠습니다. 그럼, 좋은 아침 되세요.”
그렇게 공손하게 자기 느낌을 또박또박 표현한 학생의 뒷모습을 보며, 오늘은 참 좋은 하루가 되려나 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잠시 후, 오피스에 도착해 우편물을 체크하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출판사의 친절한 편지와 함께 동봉된 책, ‘Feel the Fear And Do It Anyway’저자 수잔 제퍼스 [Susan Jeffers]의 인사까지 담겨 내 서가에 도달해 있는 겁니다. 바로 몇 분전, 그 고상한 학생의 입으로 전해진 내용의
책이 이미 내 오피스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던 거죠. 내 존재 깊숙한 곳에서 솟아 오르던 영어 단어, 물론 ‘synchronicity’였습니다.
모닝커피 한 잔 맛있게 하고 들어선 첫 강의실. 마침, 중요한 스피치가
시작되는 첫 날이라 모두 긴장한 얼굴들입니다. 퍼블릭 스피킹 입문 코스라 더더욱 불안과 두려움의 에너지가 강의실 전체를 감싸고 있습니다. 이럴 땐, 뭔가 부드러운 얘기나 힘을 불어 넣는 동기부여의 메시지가 긴요해집니다.
“누군가 스피치의 공포를 때려 부수는 멋진 말을 아는 사람이 있나요?”
넌지시 학생들 쪽으로 말문을 넘겨 봅니다. 배시시 부끄러운 미소를 띈
여학생이 조심스레 손을 듭니다.
“Share with us, please!” 같이 나눠 볼까요?
반가운 미소로 권하자, 주저 없이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
“Feel the fear, and do it anyway!”
아침 내내, 세 번 연속 이어지며 내 안을 울리던 그 표현이 이젠 거의 신비한 수준으로 승격됩니다. How uncanny!! 등골이 오싹할 지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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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incidences are God’s way of
remaining anonymous.
우연이란 신[神]이 무명[無名]으로
남기 위한 방법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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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우연이란 없답니다.
‘큰 그림’으로 보면, 우연은 숨겨진 섭리[providence]일 뿐이랍니다.
“A coincidence is when God performs a miracle and decides to
remain anonymous.” 우연이란 신께서 기적을 행한 후, 무명으로 남아있는 때를 말한다. 그렇습니다. 굳이 신께서 내가 그렇게 했노라 밝히면 인생이 무미건조해질 테지요.
‘anonymous’란 말 그대로 ‘이름 없음’을 뜻합니다. 접두사 ‘a’는 없다는 뜻이고, ‘onyma’는 이름을 말합니다. 우리말로 ‘무명씨’라 하는 영어단어가 바로 ‘어나~니머스’입니다. 신께서 ‘anonymous’하게 남아 꾸준히 섭리로 보여 주는 게 온통 ‘우연’을 가장해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 우연 뒤에 숨겨진 섭리를 알아채기 시작하면 더욱 ‘의미 있는 우연들’ [meaningful coincidences]이 나타나게 된다는 은밀한 힌트도 있습니다.
우연이란 영어단어 ‘coincidence’는, ‘함께’라는 접두사 ‘co’와 ‘발생’이란 말‘incidence’가 합해져 몇 가지 일들이 동시에 발생한다는 뜻입니다.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사건들이 우연히 동시에 벌어진다는 말이죠. 길 잃고 우연히 들른 책방에서 오래 찾던 고서를 발견한다거나, 같은 말이 계속 우연히 들리게 된다거나, 레스토랑에서 옆 자리에 앉아 얘기하는 커플의 대화 속에 찾고 있던 해결책을 우연히 듣게 된다던가, 그저 ‘우연히’ 관련 지어지는 동시다발의 느낌이 바로 ‘coincidence’란 단어에 들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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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incidences are God’s way of
remaining anonymous.
우연이란 신[神]이 무명[無名]으로
남기 위한 방법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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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란 말을 보다 형이상학적으로 승화시킨 분이 있습니다.
스위스 태생 심리분석가 칼 융 [Carl Jung]이 바로 그 분이십니다.
융이 만든 말 ‘synchronicity’ ? 우리말 번역은 동시성 또는 ‘공시성’입니다.
말 그대로 같은 시간대[chron]에 함께[syn] 벌어지는 묘한 상황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1980년대를 풍미하던 가수 스팅[Sting]이 이끌던 그룹 ‘Police’는 한 때 ‘Synchronicity’란 앨범을 만들어 융의 진가를 대중에게 더욱 깊게 각인시킨 바도 있습니다.
융의 설명을 간단히 풀면 이렇습니다.
서로 무관한 듯 보이는 두 사건이 ‘의미 있게’ 전개되는 배후에는 알지
못할 우주의 섭리가 작용하고 있다. 이 세상에 우연이라고 여겨지는 건
모두 그 섭리에 무지한 결과일 뿐이고, 섭리에 눈이 뜨인 사람은 늘
벌어지고 있는 우연이란 잔치를 ‘아는 미소’와 함께 즐길 뿐이다.
그렇습니다.
무명으로 남아 기적을 행하는 신의 방법을, 우연이 아닌 섭리로 깨닫는 ‘멋진’ 나날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OM~
* 필자의 다른 글들은 우리말 야후 블로그 http://kr.blog.yahoo.com/jh3choi [영어서원 백운재]에서도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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