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A 갤럭시-SJ 어스퀘익스, 일요일 낮 오클랜드서 한판승부
어느덧 서른 셋. 한때 축구천하를 호령했던 그 역시 속절없이 더해가는 나이 앞에선 대책이 없다. 한창 땐 그 기막힌 킥의 예술을 몇번이나 보였느냐가 얘깃거리였지만 이제는 90분을 다 뛰었느냐가 뉴스가 되곤 한다. 축구대륙 유럽을 떠나 아직은 축구변방 신대륙(미국 MLS)에 터잡은 것 자체가 옛날의 그가 아님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명서다. 그러나 완전히 가지는 않았다. 비록 나이가 들고 큰물에서 밀려났지만, 바닥에 놓고 차는 스팟킥에 관해서라면 이 세상에 그를 따를 자 아직은 없다, 프리킥 코너킥 페널티킥 등등. 움직이는 공을 다루는 그의 기술도 섣불리 무시했다간 큰코 다치기 십상이다. 측면을 파고들다 가로막는 수비수를 에둘러 문전의 동료의 머리에 가슴에 발끝에 얹혀주는 크로스는 지금도 명품이다. 잉글랜드의 맨체스터유나이티드를 거쳐 스페인의 레알마드리드까지, 세계최고를 다투는 명문클럽에서만 뛰며 사양길에 접어든 그를LA 갤럭시가 작년 겨울 극진히 모셔오듯 영입한 것은 몇방울 남은 그의 기량만으로도 은하수(갤럭시)에, 나아가 MLS에 활력을 불어넣는 새 별이 될 수 있으리란 기대 때문이었다. 데이빗 베컴. 어차피 ‘충분’을 기대할 수 없는 그였지만 ‘필요’한 만큼의 기대는 채워줬다. 지난해엔 부상으로 필드보다 벤치나 재활실을 찾는 경우가 더 많았지만, 올해는 18게임에 출장해 5골을 넣고 6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보직(미드필더)을 감안하면 솔찬한 다수확이다. 베컴 효과는 또 있다. 실제 출장은 하지 않더라도, 그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운동장을 찾는 팬들이 확 늘었다고 한다.
베컴이 북가주에 온다. 이번 일요일(일) 오후 1시 오클랜드 콜러시엄에서 벌어지는 산호세 어스퀘익스와의 경기를 위해서다. 갤럭시와 어스퀘익스의 둥지만 놓고보면 야구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LA 다저스 경기처럼 축구판 5번 하이웨이 라이벌전이 될 수도 있지만 객관적 전력상 아직은 이르다. 각각 18게임씩 소화한 1일 현재 갤럭시는 6승5무7패로 레알 솔트레익(19전 7승6무6패)과 휴스턴(17전 5승8무4패)에 이어 웨스턴 컨퍼런스 3위를 달리고 있다. 승점 차이가 적어 한두게임만 엇갈리면 금방 선두가 바뀐다. 지난 겨울 재창단된 산호세 어스퀘익스는 3승6무9패로 7팀 중 7위다. 베컴 이외에도 미국 대표팀 재간둥이 공격수 랜던 다나븐 등 알짜들이 즐비한 갤럭시에 비해 어스퀘익스의 라인업은 딱히 내세울 스타가 적다.
이런 가운데 산호세가 전력보강 결단을 잇따라 내렸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한 공격수 겸 미드필드 대런 허커비를 7월 중순 영입한 데 이어 최근에는 FC댈러스로부터 아르투로 알바로를 들여왔다. 둘 다 득점력 제고를 위한 처방이다. 그러나 이들의 가세로 당장 MLS 세력판도에 지진(어스퀘익)이 일어날지는 미지수다. 한두군데 꿰맨다고 크게 달라질 게 없을 정도로 거의 모든 포지션에서 상대적 약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허커비는 프리미어리거 출신이라고는 하지만 기복이 워낙 심했고 지난 몇년동안 원인모를 슬럼프에 빠져 데뷔초기의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1976년 4월생으로 키 5피트11인치/ 몸무게 156파운드의 호리호리한 체격의 허커비는 1995년부터 잉글랜드축구 왕년의 수퍼스타 케빈 키건이 지휘하는 뉴캐슬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했다. 이후 코벤트리 시티 등지로 옮겨다니며 주로 포워드로 뛰었다. 데뷔 초기인 1997-1998시즌에는 리즈를 상대로 터뜨린 해트트릭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골망을 뒤흔든 멋진 솔로골을 포함해 34게임에서 14골을 넣었다. 리즈팀은 주공격수 플로이드 해셀바잉크가 스페인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하자 곧 허커비를 영입, 그 자리를 채웠다. 재빠른 순간 동작으로 수비수를 따돌리고 골을 엮어내는 그의 감각적 기량에 거는 기대는 컸다. 허커비가 리즈로 이적할 때 코벤트리의 고든 스트라한 감독은 공개적으로 아쉬움을 표시할 정도로 그의 가능성은 커 보였다.
그러나 허커비는 이후 가능성을 현실로 만드는 데 거의 실패했다. 우선 경기에 투입된 횟수가 확 줄었다. 기량과 컨디션이 기복이 심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좁은 공간 순간 동작은 뛰어나지만 운동장 구석구석 적과 아군의 움직임을 굽어보는 시야가 거의 없이 줄창 땅만 보고 뛰는 스타일이어서 전술적 플레이를 적용시킨기 어렵다는 점도 그의 벤치신세를 더욱 길게 한 요인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선덜랜드로부터 마이클 브리지스가 셀틱으로부터 마크 비두카가, 인터밀란으로부터 로비 킨이 속속 리즈의 식구가 되면서 허커비를 위한 공간은 거의 사라졌다. 29차례 교체멤버로 투입됐을 때도 매번 그저그런 플레이를 보이다 물러났다. 1999-2000 시즌 도중 맨체스터 시티로 둥지를 옮기는 등 이후에도 그가 여러 팀을 전전하게 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세계정상급 프리미어리그를 떠나 중하위급 메이저리그에, 그것도 최하위팀 산호세에 새 둥지를 튼 허커비가 산호세의 꼴찌탈출을 넘어 성공스토리를 쓸 수 있을까. 전망은 엇갈린다. 비록 프리미어리그에선 B급 선쉬만 미국 프로축구에서는 충분히 통할 것이라며 콱 막힌 산호세의 숨통을 트여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가 하면, 나이도 나이지만 경기력 이전에 몸상태가 정상이 아닌데다 지금 산호세로선 허커비가 아니라 호날두를 데려와도 이름값(지진)을 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만만찮다.
<정태수 기자> tsjeo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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