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 잠시 짬을 내 친구 셋을 함께 만난 일이 있다. 교회에서 함께 자라던 학창 시절부터 친하게 지낸 사이였는데, 그 중 하나는 드라마 작가가 된 여성이다.
거의 20년만에 만난 그 친구는 저녁 식사 후 커피를 마시는 자리에서 인생 후반전에 김씨에서 이씨로 바뀌게 된 사연 한 토막을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요약하면 이렇다.
친구의 부친은 북한이 고향이었다. 공산당의 남침으로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인민군에 끌려갔던 그는 국군에게 포로로 잡혔다가 나중에 대한민국에 정착해 살게 되었다. 인민군 출신은 국군에 재입대, 일정 기간을 복무해야 사상적 전향을 한 것으로 인정되던 시절이었다. 그는 입대를 위해 기다리는 동안 생계를 위해 이 지방 저 지방을 오가며 장사를 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가 집에 없는 사이에 징집영장이 날아 왔다. 귀가했을 때는 이미 징집날짜가 지나 있었고, 그는 결국 본의 아니게 병역 기피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기막힌 노릇이었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는 법인가. 그에게는 같은 마을에 정착한 동향 출신의 선배가 있었다. 일이 풀리려고 그랬는지, 인민군을 거쳐 이미 국군에까지 갔다 온 그에게 병무행정 착오로 다시 징집영장이 나왔다. 친구의 부친은 천만다행이라 여기며 선배의 영장을 들고 군대에 갔고, 그 죄로 평생을 타인의 이름으로 살게 된 것이다.
친구는 “네 아버지의 이름을 꼭 찾아 주라”는 할아버지의 한맺힌 유지를 받들어, 큰 돈을 들이고 복잡한 절차를 거쳐 얼마 전 아버지의 이름을 회복시켜 드렸다. 그러나 당연하지만 미처 예상치 못했던 결과로 자신과 형제들의 성까지 바뀐 것을 알고는, 친구는 성(family name)과 어울리지 않는 옛 이름(personal name)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친구가 예쁘지만 오랜 지인들이 부르기엔 좀 어색한 성명 석자를 새로 갖게 된 연유다.
요즘 한일 간에 전쟁이 한창이다. 육해공군을 동원한 실제 전쟁은 아니지만 독도의 영유권을 둘러싼 극한 대립이기에 전쟁이나 다름없다. ‘대한민국 국토의 막내’ 독도를 둘러싼 갈등은 최근 일본 문부성이 자국 고유영토라고 명시한 중등교과 지도방안을 마련하면서 다시 불거졌다. 독도의 분쟁지역화를 통해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로 끌고 가려는 일본의 간계가 배경이다.
이 와중에 많은 미국 기관들이 독도를 ‘리앙쿠르 암석’(Liancourt Rocks) 혹은 ‘국제분쟁지역’으로 표기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조국 잘 되기만 비는 한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특히 미 지명위원회(BGN·국무부, 국방부, CIA, 국토안보부, 우정국, 의회 등 10여개 연방정부 부처에서 파견 나온 공무원들로 구성된 조직)는 지난 주 돌연 독도의 영유권 표기를 ‘주권 미확정 영토’(Undesignated Sovereignty)로 변경, 한인들을 경악시켰다.
다행히 한국 정부는 발빠른 외교 노력을 펼쳐 조지 부시 대통령의 원상회복 지시를 이끌어 냈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영유권을 미확정에서 한국령으로 되돌려 놓았을 뿐, 미 정부의 표준명칭은 여전히 리앙쿠르 암석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독도’는 ‘다케시마’와 더불어 ‘별칭’(variant)이라고 소개돼 있다.
아버지의 이름을 찾아드린 친구처럼, 독도의 이름을 반드시 되찾아야 한다. 이름이야말로 한 존재가 갖는 정체성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끓는 냄비 같은 성급함만으로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독도를 일본의 음흉한 책략으로부터 지켜낼 수 없다. 일본의 악랄한 음모에 맞서 정부는 독도를 더 이상 ‘외로운 섬’으로 남겨두지 않기 위해 차분히, 그러나 쉬임없이 대책을 마련해야 하다. 그 대책은 장기적, 문화적, 외교적, 실효적이어야 한다. 미국 쇠고기, 금강산 관광객 피살 등의 사태에서 주권을 위협받았던 한국이 이번엔 일본에 의해 주권과 더불어 영토까지 침탈당할 수는 없다.
8.15 광복절을 2주 앞둔 오늘, 마음에 독도를 품으며 잊지 않기 위해 되새기고 되새긴다. 36년 한반도 강점도 성에 차지 않아, 남의 땅 다시 빼앗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는 일본은 ‘참 나쁜 나라’라는 사실을.
김장섭 종교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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