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부터 ‘세계화’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영어로는 ‘Globalization’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세계화라는 말이 크게 들릴지 모르지만 알고 보면 너무 쉽게 우리 삶에 가까이 다가온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에서 국가간에 FTA(Free Trade Agreement-자유무역협정)가 체결되면서 이런 세계화의 물결은 빨리 우리 가정과 삶에 익숙해 질 것이다. 한국에서 그 유명한 엘에이(LA)갈비를 먹을 수 있게 되고, 또 미국에서 한국의 상품들을 쉽게 얻을 수 있게 된다. 특히 이런 것들을 쉽게 해줄 수 있었던 도구가 있었다면 그것은 인터넷(Internet)이다. 인터넷은 그 단어 자체가 주는 의미처럼 지금의 서로의 관계를 가깝게 연결해 주는 것이다. 곧 세계화는 단지 크고, 넓어진다는 막연한 의미보다는 개인적으로 가깝게 다가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지 나라와 나라의 관계를 먼저 생각하기 보다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로부터 먼저 시작해야 한다.
미국에서 유치원(Kindergarten)부터 시작되는 공교육의 가장 기본적 가르침은 다른 사람을 존중하라는 것이다. 공부를 다른 사람보다 더 잘해야 하고, 그리고 글을 빨리 터득해야 하고, 빨리 산수계산을 하는 것보다 더 먼저 어린 아이들에게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사는 기본적인 대인관계의 원리를 가르친다. 그래서 줄을 서는 것, 선생님의 지시를 따르는 것, 말하고 싶을 때 손을 드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것을 가르친다.
초등학교 때 친한 교회 친구 남자 둘과 여자 친구가 있었다. 그들은 몸이 불편한, 오늘날의 표현으로 하면 장애우(障碍友-The Handicapped)였다. 한 친구는 약시(弱視)여서 거의 시력을 잃고 있었지만 노래를 너무 잘했다. 다른 두 친구는 다리가 불편하였다. 그런데 둘 다 공부를 너무 잘했다. 그들은 가까이 다가가려고 노력해서 생긴 친구가 아니라 그냥 교회에서 만난 친구들이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주위에 그런 친구들이 가까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내가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이미 그런 사람들, 친구들, 가족들은 아주 가까이에 있다는 말이다.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미국의 시설들은 장애우들을 위해 배려를 많이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한국도 이런 면에서 많은 관심과 발전을 보이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한인교회의 목사로서 미국 장로교(PCUSA) 교단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미국의 좋은 점들을 배우는 것이 하나 있다면 늘 남의 입장을 배려하려고 노력하는 점이다. 우리는 모두가 다르다. 어느 것 하나 같은 것이 없다. 설령 같이 태어난 쌍둥이라도 다르다. 닮게 보인다 하더라도 분명히 다르다. 우리의 피부색깔, 키, 그리고 성(性), 생각, 빈부 등 여러모로 다르다. 이 다른 것이 멀리 있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가깝게 만들게 되는 이유가 된다. 여러 사람의 다양성(Diversity)속에서 일치(Unity)를 찾으려는 그 모습은 바로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교훈이다.
성경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빌립보서 2:3-4)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건강하지 못하고, 나처럼 밝은 눈을 갖지 못하고, 나처럼 여유 있지 못하고, 나처럼 자신 있지 못하고, 내가 먹은 것을 먹지 못하고, 내가 가본 곳을 가보지 못하고, 내가 구경한 곳을 구경하지 못하고, 내가 읽은 책을 읽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그러기에 우리는 언제나 나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만큼 다른 사람의 형편을 돌아보는 배려가 필요하다. ‘배려’는 인격의 시작이고, 겸손의 표현이고, 사랑의 완성이다.
예를 들어 장애우들과 대화하고, 인사하고, 살아갈 때 관심과 배려를 깊게 가져야 한다. 시각 장애우들에게는 말하는 사람의 이름을 먼저 확실히 말하고, 청각 장애우들에게는 다른 사람을 통해서 말하기보다는 직접 그 사람에게 얼굴과 얼굴을 맞대어 말하도록 하고, 휠체어를 탄 사람들과 말할 때에는 그 사람의 눈높이와 맞추어 대화하도록 하는 작은 모습들이 그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 줄 수 있다.
“들은 귀는 천년이요 말한 입은 삼년이다”라는 말처럼 듣는 것이 먼저 있을 때 그것이 결국 입으로 말하는 것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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