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토 아메리칸들에게도 꿈이 된 놀라운 삼형제
푸에르토리코. 풍부한 항구(Puerto Rico)라는 뜻을 가진 이 섬나라(인구 약 390만명/ 면적 약 9,000평방km)는 카리브해에 있다. 어미섬과 아기섬 몇을 묶어 그렇게 부른다. 독립국이 아니다. 19세기 후반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이긴 미국이 차지한 이래 지금까지 미국의 자치령이다.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가 동방의 작은 나라 한국에 흔적깊게 알려진 첫 계기는 아마도 1977년 5월21일 그곳의 수도 산후안에서 벌어진 염동균과 알프레도 고메스의 프로복싱 한판매치(수퍼밴텀급 세계타이틀전)일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세계왕좌에 올라 1차방어전을 무사히 넘기고 그곳으로 날아간 염동균은 초반에 백발백중 KO펀치의 소유자 고메스에게 프로데뷔 후 첫 다운을 빼앗는 등 선전했으나 12회에 KO로 무너졌다. 고메스 이외에도 알프레도 베니테스, 헥토르 카마초 등 70-80년대 사각의 정글을 호령했던 세계적 주먹제왕들이 이 작은 섬 출신이다.
배고픈 시절 부자되는 지름길로 여겨졌던 복싱은 요즘 한물이 가도 한참 갔다. 푸에르토리코에서도 마찬가지다. 더이상 챔피언 복서들의 요람이 아니다. 그곳 섬사내들의 가슴에 불을 지피는 으뜸 스포츠는 야구다. 이들이 꾸는 꿈의 중간역은 메이저리그 진출하기, 종착역은 메이저리그 스타되기다. 공식적으로 이미 아메리칸이면서도 그들은 이를 아메리칸 드림으로 간직하고 도전한다.
이들에게도 꿈의 또다른 이름은 돈이다. 미국의 적극적 투자와 관리 덕분에 푸에르토리코인들은 이웃 섬나라나 중남미 뭍나라 사람들에 비해 잘 사는 편이다. 종전의 1인당GNP(국민총생산)보다 실질소득 측정에 보다 유용하다는 이유로 근년들어 자주 인용되는 1인당GNI(국민총소득) 개념으로 따져 한국과 엇비슷하다. 약 1만달러다. 한국인들 못지않게 푸에르토리코인들도 잘 살아보세 더 잘 살아보세를 외친다. 메이저리그를 향한 항진은 그래서 더욱 가열차다.
몰리나 삼형제.
이들은 모두 메이저리거의 꿈을 이뤘다. 푸에르토리코인들의 꿈이 됐다. 자신들의 아메리칸 드림만 이룬 것이 아니다. 적어도 야구입신을 꿈꾸는 본토 아메리칸들에게도 꿈이 됐다. 삼형제가 한꺼번에 메이저리그 현역선수로 뛰는 것도 진기록이요, 삼형제 모두 메이저리그에서 안방지기 포수를 맡고 있는 건 앞으로도 흔치 않을 진기록이다. 게다가 삼형제가 현역선수로 뛰는 동안 함께 또는 차례로 월드시리즈 챔피언 링을 차지한 것은 더욱 깨지기 힘든 희대의 기록일 것이다.
1974년 7월20일생인 맏형 벤지 몰리나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주전포수다. 풀네임은 벤자민 호세 몰리나. 1998년 애나하임 에인절스(현 LA 에인절스)에 입단해 포수마스크를 쓴 이 11년차 메이저리거는 2002년 월드시리즈 챔피언 링을 차지했고, 2006년 한시즌을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 보낸 뒤 2007년부터 자이언츠 안방지기를 맡고 있다. 수비전문인데다 배가 나오고 걸음이 느린 아저씨풍 몸집(5피트11인치/225파운드)이지만, 순간동작이 빠르고 파워가 좋아 자이언츠의 공격력에서도 노른자위다. 30일 현재 올시즌 성적이 타율 2할7푼8리, 8홈런, 61타점이다. 10년 몇 개월 통산기록 역시 포수 아닌 타자로만 봐도 평균 이상이다. 총 1,062게임 3,766타석에서 1,036개의 안타를 날려 통산타율 2할7푼5리다. 2001년과 2002년 메이저리그 최저선인 22만5,000달러에 불과했던 그의 연봉은 올해 거진 30배 가까운 625만달러가 됐다.
벤지 몰리나보다 11개월쯤 뒤인 1975년 6월3일생인 호세 몰리나는 전통의 명문 뉴욕 양키스 포수다. 풀네임은 형의 그것에서 일부 순서만 바꾼 듯 호세 벤자민 몰리나. 같은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수퍼스타 포수 호르헤 포사다 때문에 백업포수를 맡다 포사다가 부상자 명단에 오른 요즘 자주 주전으로 기용됐다. 한살 터울 형보다 꼭 1년 늦은 1999년 시카고 컵스의 유니포폼을 입고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2001년 형이 터잡은 에인절스로 옮겼다. 2002년 월드시리즈 우승 땐 주전과 후보로 함께 챔피언 링을 꿰찼다. 형이 1년 먼저 에인절스를 떠나 블루제이스로 간 이듬해(2007년) 호세 몰리나는 뉴욕 양키스로 둥지를 옮겼다. 백업요원이어서 출장기회가 형처럼 많지는 않지만 시즌타율(2할7푼8리)도 통산타율(2할7푼9리)도 형과 거의 판박이다. 키(6피트2인치)는 같고 몸무게(235파운드)는 형보다 10파운드 더 나간다. 연봉에선 차이가 크다. 2002년엔 20만달러로 형보다 불과 5,000달러 적게 받았지만 올해는 187만5,000달러를 받아 그 격차가 437만5,000달러로 벌어졌다. 양키스가 30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서 이반 로드리게스를 영입해 호세 몰리나의 입지가 다소 좁혀질 전망이다.
막내 야디어 몰리나는 한참 뒤인 1982년 7월13일생이다. 풀네임은 야디어 벤자민 몰리나. 2004년 메이저리그 데뷔 이후 줄곧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안방지기로 활약하고 있다. 삼형제 중 키(5피트11인치)도 몸무게(215파운드)도 막내다. 그러나 포수의 함량을 나타나는 주요지표 중 하나인 도루저지율에서는 삼형제 중 으뜸이다. 특히 2006년엔 도루저지율 .641을 기록,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군계일학 1위를 차지했다. 도루저지율은 .350 이상이면 합격점으로 평가된다. 맏형 벤지 몰리나는 2003년 도루저지율 1위(.444)였고, 중간 호세 몰리나도 수준급 저지율(2006년 .431)을 보였다. 기간이 짧은데다 통산기록과 시즌기록의 차이가 많아 형들과 막바로 견주는 건 무리가 있지만, 적어도 올해 공격력에서는 막내가 단연 으뜸이다.
91게임 327타석에서 101안타로 3할9리의 고타율을 기록중이다(4년6개월 통산타율은 2할6푼). 연봉상승도 가장 가파르다. 2005년 32만3,500달러, 2006년 40만달러, 2007년 52만5,000만달러로 완만하게 오르다 올해 181만2,500달러로 수직점프했다.
섬나라 출신 ML 포수 삼형제, 월드시리즈 챔피언 삼형제의 역사만들기는 현재진행형이다. 적어도 몇 년은 더 이어질 미래진행형이기도 하다.
<정태수 기자> tsjeong@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