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통념으로는 남자가 공중석상에서 눈물을 흘리면 “남자가 여자처럼 눈물은 왜 흘려”라는 핀잔을 받기가 일수다. 그래서 남자는 눈물을 흘려야할 대목에서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는 것을 미덕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이러한 통념은 세월이 흐르면서 많이 바뀌는 것 같다. 더구나 유명한 명사들이 공중석상에서 거침없이 눈물을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남자다움’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인간이면 남녀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눈물로 자신의 속내를 표현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본능이라고 생각이 든다. 오히려 눈물을 흘려야 할 때 눈물대신 다른 표현으로 이를 가리는 것은 가식에 지나지 않는다.
요한복음 11장 35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우시는 장면이 나온다.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셨다”라고 말하고 있다. 영어로는 “Jesus wept.”라고 표현하고 있다. 성경에서 가장 짧은 절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곧 나사로의 무덤에 가셔서 그를 주검으로부터 일으켜 세우셨다. 그러면 왜 우셨을까? 나는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죽음에 대한 인간적인 감정을 숨김없이 표현한 그 순수성을 좋아한다.
몇 주 전에 세계적인 기업의 두 총수가 공중석상에서 눈물을 흘린 ‘사건’이 벌어졌다. 첫 번째 눈물은 세계에서 가장 부자로 알려진 빌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MS)사의 CEO를 물러나는 은퇴식에서 흘린 눈물이다. 그의 은퇴식은 지난 달 27일 미국 시애틀에 있는 본사 강당에서 800여 명의 본사직원들과 친한 친구이며 후임자로 지목된 스티브 발머가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20여 년 전 구멍가게 규모로 시작했던 회사를 세계 최고 기업 중에 하나로 길러낸 우여곡절의 과거를 회상하면서 흘린 눈물이었다. “이 사회에서 많은 재산이 기술개발과 교육, 의학연구, 사회보장서비스 같은 중요한 일에 사용된다면 사회나 나의 아이들에게도 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말을 맺고 단상에서 내려올 때 청중은 일제히 일어나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빌 게이츠는 여생을 자선사업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이를 위해 자기와 자기 아내의 이름을 딴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설립했다. 그는 작년 하바드대 졸업식에서 학위를 받으면서 특별 연사로 강연했을 때 ‘창조적인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경제개념을 소개한 바 있다. 그는 자본의 재투자는 근시안적인 이익창출보다는 좀 더 장기적이고 글로벌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서는 글로벌 사회에서 낙후된 사회가 선진사회로 발전할 수 있는 자본투자를 자본가들이 앞장서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눈물은 지난 1일 서울의 한 재판정에서 이건희 전 삼성회장이 흘린 눈물이다. 그는 삼성특검 재판도중 다음과 같이 증언을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세계 1위의 제품을 11개나 생산하는 삼성전자를 다시 만들려면 10년, 20년 가지고는 안 된다.” 그는 삼성전자가 숫한 어려움을 헤치고 자라온 발자취를 회고하면서 눈물을 보였다. 그런데 그가 흘린 눈물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한국 최대기업의 CEO자리에서 졸지에 삼성전자의 사원신분까지 버려야 되는 지금의 신세를 한탄하며 허탈감속에서 흘리는 눈물일까? 아니면 미래를 위해 새로운 각오를 다짐하는 눈물일까?
사실 이건희 전 회장이 21년 전 아버지로부터 삼성그룹을 인수받을 때만해도 삼성전자는 안방기업에 지나지 않았으며 90년까지만 해도 성공여부는 분명하지 않았다. 그는 삼성전자를 세계 굴지의 기업으로 길러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는 다 바꾸라”라는 신념으로 삼성의 틀을 개혁시켰다. 한국 주식시장의 20% 이상을 삼성전자가 차지하게 됐으며 본인은 한국의 최고 부자가 됐다. 다시 말하면 많은 한국 사람들이 삼성전자덕분에 살아간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이건희 전 회장이 이번기회에 새로운 각오를 하기 바란다. 빌 게이츠를 닮아가겠다는 각오 말이다. 지금까지 자신과 기업을 위해 헌신했으니 여생은 남을 위해 그의 생을 던져 보는 것이다. 게이츠가 말하는 창조 자본주의를 한번 실천 해 볼만하지 않을까?
허종욱
한동대 교수
johnhugh2@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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