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잔슨, 1988년 데뷔 후 처음으로 ‘왼손타자에 1게임 4안타’ 허용
내셔널리그 웨스트 디비전 선두를 달리는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랜디 잔슨은 백전노장정도가 아니라 585전 노장 왼손투수다. 1963년 가을 월넛크릭에서 태어난 그는 오는 9월10일이면 만 45세다. 별명은 빅 유닛(Big Unit)이다. 워낙 큰 덩치(키 6피트10인치/몸무게 225파운드) 때문이다. 특히 키는 메이저리거 중 가장 크다. 키가 크니 팔도 길다. 그러니 그가 던지는 공은 다른 투수들의 공에 비해 홈플레이트까지 비행거리가 짧다. 100m 달리기로 치면 몇미터쯤 앞에서 뛰는 것과 같다.
게다가 공은 무지 빠르다. 요즘은 많이 둔해졌지만 30대 전성기엔 시속 90마일 후반대는 기본이고 예사로 100마일 안팎을 맴돌았다. 불같은 패스트볼 말고 진짜무기는 따로 있(었)다. 슬라이더다. 스트라익 존(K존)을 한참 벗어났다 안으로 각도가 휘어지고 아래로 고도가 낮아지며 K존 가장자리를 살짝 걸치고 내빼는 백도어 슬라이더는 특히 일품이(었)다. 명칭 그대로 뒷문으로 살짝 들어왔다 나가는 식이다. 왼손타자들에겐 쥐약이나 다름없었다.
잔슨의 백도어 슬라이더는, 왼손타자 입장에서, 등 뒤쪽에서 출발했다 오른쪽 팔꿈치나 오른쪽 허리를 스칠 듯 안으로 감겼다 떨어지는 듯해 타이밍을 맞추기 이전에 공을 제대로 보기도 힘들었다. 1988년 몬트리올 엑스포스(현 워싱턴 내셔널스)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올해까지 20년 몇개월동안 585게임(그중 선발등판 575게임)에 등판해 292승157패 방어율 3.26의 놀라운 성적을 거두게 한 주무기 역시 슬라이더다. 왼손타자들을 상대로 한 20여년 통산방어율은 2.17이다. 은퇴적령기를 훌쩍 지난 나이에다 근년에만 무릎 등 두차례 수술까지 받아 왕년의 위력을 많이 잃기는 했지만 올해도 19게임에서 8승7패 방어율 4.58의 그럭저럭 수확을 거두고 있다. 통산 4,717삼진으로 이 부문 역대 2위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선두타자 프레드 루이스(27)는 ML 3년차 왼손타자다. 잔슨이 메이저리그에 데뷔할 때 그는 7살에 불과했다. 잔슨에 비하면 덩치(6피트2인치/195파운드)도 작다. 올해 연봉은 비교할 처지도 못된다. 잔슨은 1,510만546달러, 루이스는 39만2,000달러다. 차액만 1,470만8,546달러다. 메이저리그 경력 차이는 나이 차이보다 1년 더 긴 18년. 잔슨은 좌투우타, 루이스는 좌타우투.
왼손타자 프레드 루이스가 왼손타자의 천적 왼손투수 랜디 잔슨에게 난생처음 고약한 선물을 안겼다. 지난 일요일(27일) 자이언츠-D백스의 SF 승부에서다. 2002년 아메리칸리그(배리 지토, 당시 오클랜드 A’s)와 내셔널리그(랜디 잔슨, 당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사이영상 수상자에다 야구전문 괴짜언론인 작성 먹튀랭킹에서 수위를 다퉜던 두 좌완투수의 대결로 관심을 모았던 그 경기다. 결과는 잔슨의 완승. 7이닝 0실점으로 D백스의 7대2 승리를 견인하며 개인적으로는 2002년 7월16일 이후 꼬박 6년10일만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승리투수가 됐다. 그런 잔슨에게 루이스가 안겨준 괴선물은 4안타. 잔슨이 왼손타자에게 한 경기에 4안타를 맞은 것은 1988년 메이저리그 데뷔 이래 처음이다.
첫 대면은 1회말 첫 타석. 잔슨은 스피드건에 속도가 잡히지 않을 만큼 느린 공으로 루이스를 시험했다. 그리고는 본색을 드러내 스트라익을 던졌다. 경기 뒤 루이스는 말했다. (첫번째 피치는) 뭔가 의도가 있는 피치였다고 생각한다. 하여튼 나는 어리둥절했다. 그리고는 스트라익을 던졌다. 도무지 칠 수가 없었다. 실은 쳤다. 예의 슬라이더를 받아쳐 중전안타. 잔슨이 후속타자 이매뉴얼 버리스와의 승부 때 느린 피칭동작을 틈타 2루까지 훔쳤다. 그러나 그뿐, 잔슨은 후속타자들을 차분하게 요리 1이닝을 마쳤다.
두 번째 대면은 3회말. 이번에도 루이스는 선두타자로 나섰다. 잔슨의 공을 잡아당겨 우전안타. 그러나 빠른 발 때문에 일찍 아웃됐다. 버리스가 친 타구가 1루수쪽 낮게 뜬 공이었는에 루이스가 워낙 빨리 스타트를 끊은 바람에 미처 1루로 돌아가지 못한 채 횡사했다.
세 번째 대면은 5회말 2사후 주자없는 상황에서 이뤄졌다. 루이스는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흐르는 잔슨의 공을 가볍게 밀어쳐 좌익수쪽 2루타를 만들어냈다. 같은 코스 하나 없이 3안타가 가운데, 오른쪽, 왼쪽으로 고루 퍼진 부채살 타격이었다. 그러나 루이스의 귀한 안타는 이번에도 점수로 연결되지 못했다. 버리스의 방망이가 공에 닿기도 전에 스타트를 끊어 순식간에 3루를 돌아 홈으로 치달았지만 버리스의 타구는 중견수 플라이.
루이스와 잔슨의 4번째 맞대결은 7회말 2사1루 상황에서 펼쳐졌다. 또 루이스의 승리, 좌익수와 중견수 사이를 꿰뚫는 깊숙한 2루타였다. 혹시 잡힐까봐 1루주자 오초아가 잠시 뜸을 들인 뒤 출발한 바람에 3루에서 멈춰섰다. 후속타 불발(버리스 3루앞 땅볼로 아웃)로 루이스의 안타는 또한번 점수를 못맺고 안타에 머물렀다.
잔슨은 7회까지 무사히 무실점으로 막은 뒤 덕아웃으로 물러나 앉았다. 불을 뿜던 루이스의 방망이도 잔슨이 사라지자 식었다. 루이스는 9회말 마지막 타석에서 D백스의 3번째 투수 토니 페냐의 구위에 밀려 좌익수 앞 라이너성 플라이로 아웃됐다.
한편 루이스는 28일 라이벌 LA 다저스와의 원정경기에서 3회초 유격수 앞 땅볼로 첫 타점을 올리고 4회초에는 거의 같은 코스 내야안타로 타점을 추가한 뒤 랜디 윈의 안타 때 6번째 득점을 올렸다. 자이언츠가 초반 대량득점에 힘입어 7대6으로 승리했다. 다저스는 이날 투수 5명이 투입됐으나 박찬호는 출격하지 않았다.
<정태수 기자> tsjeo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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