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동, 딩동.
오랜만에 들어보는 소리다. 더군다나 이 시간엔 누군지 짐작할 수 없는 방문자라 귀찮다는 생각에 앞서 술기운으로 몽롱했던 머리에 찬물을 끼얹는듯 정신이 들었다. 부엌을 향해 큰소리로 “여보! “ 라고 부르긴 했는데 아무런 답이 내 귀에 돌아오지 않는다.
두달전 아내가 떠난뒤 입안에 구린내를 물고 살만큼 이야기 상대를 모두 잃었다. 항상 재잘대는 성격인 집사람은 사람들에게 광신자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교회일을 해 온 사람이다. 집 전화통은 불이 났었고 집 문지방이 닳도록 사람들이 끓어서 그것이 싫었던 나에게 핀잔도 많이 들었건만 가면서 그 많은 사람들을 모두 데리고 간 모양이다.
준비가 안된 갑작스런 이별이었다. 또한 돌이켜 보면 우리 부부의 삶은 다른집과 달리 내가 수동적인 자세를 가지고 살았기에 이젠 무엇을 하건 엄두가 나지 않고 짜증스럽고 그로 인해 내 자신이 매사에 부정적이고 염세주의적으로 변해감을 나 자신도 느낄수 있다.
두달 동안 교회에 여러 사람들이 다녀갔으나 이제는 더 이상 오지도 않고 또 나라는 사람을 만나길 피하는것을 보고 난 히죽거리는 쓴웃음으로 그저 나 자신을 위로하고 있다. 만나서 교회를 다시 나오라는 사람들에게 못된 말로 신을 헐뜯었으니 나를 피하는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들을 멀리하는 진짜 이유는 교회에 다시 안 나가겠다는 나의 의지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발버둥이도 한 것이다.
집안에서 손이 닿는곳엔 술병뿐이고 정 못견디게 허기가 지면 물을 끓여 라면에 부어먹는것 밖에 할줄 모르고 화장실과 부엌 갈 때를 제외하면 나의 생활반경은 열 발자욱을 넘지않아 쇠사슬에만 묶여있질 않지 마당에 묶여있는 똥개와 다를바 없는것이 요즘 나의 생활이다.
얼마 전까진 나에게도 꿈이 있었다. 열심히 벌어 일찌감치 은퇴를 하고 좋은 옷에 귀한 음식을 먹고 집사람과 여행을 즐기는 노년을 보내겠다는 소박한 꿈. 진솔하고 실현 틀림없고 얼마남지 않은 계획된 삶이었건만 하나님이 필요해서 먼저 천당으로 데리고 갔다며 슬퍼만 하지 말라고들 한다.
그저 어처구니가 없고 화가 날 뿐이다.
“who is it?”
“나요 정형, 나 김문수요”
문을 반쯤 열고 연 문에 막아섰다.
“왠일이요?”
“놀러왔지, 나 여기서 돌려 보낼꺼요?”
이 집 부부는 아내가 살아 있을때도 나는 별로 탐탁하게 생각지 않던 사람들이다. 나이는 동연배로 친구가 될수 있겠지만 모든 언행에 가식이 있어 마음을 열고 싶지 않았던 친구인데 이 사람들 깐에는 친해질려고 접근을해 더욱 부담스러웠다.
부부가 같은 직장에서 만났다는데 원래가 그런지 아니면 미국에 와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면서 그런지 말의 수준을 높이려고 애를 써 말끝마다 적 자를 붙이는 품세가 영 어울리지 않은 어색함을 느낄때가 많았다. 더우기 교회에서 집사가 되고부터는 더욱더 그런것 같았다.
들어와 앉자마자 기도를 한다. 속마음으로 간단하게 끝을 냈으면 좋으련만 소리내어 장황하게 열변을 토하는것을 보니 가슴에서 불기둥을 일 불씨가 싹트는듯 하고 오늘도 또 뜨거운 설전을 할 것 같음을 예고하는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마지막 끝무리에 하나님의 깊은 뜻을 모르고 방황하는 나를 다시 교회로 인도해 주십사 하고 끝을 맺는다.
“김형, 말좀 물읍시다. 하나님이 우리 집사람을 내게서 떼어놔 천당이란 곳에 데리고 간 깊은 뜻을 김형은 알고 있다는거요? 알고 있거던 말좀 해보우.”
물어보는 내 말투는 전투적이었다.
“그야 우리가 다 죄인이지만 시련을 주셔서 그것을 극복하고 더 큰일을 이루려 하시려는 뜻이 아니겠소?”
“아니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소, 어떤생각, 행동이 옳지 못하였소? 단 한번의 경고도 없이 무 자르듯 이렇게 벌을 내리신단 말이요? 여러해를 하나님 당신의 성전에서 머리 조아리고 열심히 당신의 말씀을 몸에 담고 나의 모든 생활을 당신의 종으로 살아왔는데, 그런 내게 무엇을 얼마나 더 원하시기에 이런 시련을 주시는지,… 나는 눈만 뜨면 생각하고 생각해 봐도 받아들일수 없는 마음에 날이 고약스럽게 세워져 이제는 하나님의 존재마저도 의심하는것도 주저하지 않게 된것도 사실이요. 아무리 하나님을 부르고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도 침묵과 공허감이 너무 커서 하나님을 보려해도 보이지 않고 들으려해도 들리지 않소, 전에는 그런대로 삶이 만족해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치 않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절실히 뵙고 여쭈어 보고 싶은데 여의치가 못하오, 김형네는 진정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셨는지요? 아니면 주위의 누구라도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한 것을 보셨는지 묻고 싶소, 나는 60여년을 가깝게 살면서 하나님이 존재해서 어느 사람이나 세상이 바뀐것을 듣도 보도 못했고 세상이다 아는 극악무도한 인간도 죽기전까지도 하나님의 벌을 받는것을 보지 못해 아쉬워했던 일들이 많았오. 하여간 나는 예나 지금도 하나님을 볼수 없는 나의 눈을 원망하며 살고 있오. 내 마음이 이러하니 김형. 앞으로 교회에 관한 일이라면 나를 찾아오지 마시오!”
김문수는 무언가 말을 하려는듯 씨근거리다 돌아갔다.
대문을 닫고 내 자리로 돌아오는 짧은 거리가 황막하게만 느껴진다. 싸늘한 가죽 소파며 내 시야에 들어오면 모든 것들은 다 죽어서 빛을 잃었고 체온을 느낄수 없는 시체고 내 몸이 닿으면 나를 밀어낼 자세로 차갑게 버티고 있는 기세다. 한참을 머뭇거리다 그래도 낯익은 술잔에 술을 부었다. 한숨에 넘기면서 후들거리는 몸 속에서 여보를 부른다.
“여보. 미안하오. 정말 미안해. 내 당신과의 약속을 어기고 또 베드로가 되었오. 난 지금 주님을 모른다고 해서라도 내 찢어진 마음에 위로를 받고싶소. 누구라도 당신을 다시 내게로 돌려줄수 없다는걸 아는 한 상처받은 내 악한 마음을 녹일수는 없을 것이요. 당신이 내 곁에 있어 언제나 그랬듯이 성경책을 펴놓고 나에게 알아듣게 차근차근이 얘기해주면 몰라도…..
28년을 함께 살면서 당신은 나를 너무 무기력한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사람이 되버렸으니….원망스럽소.” 불을 끄고 누웠다. 침침한 어둠과 걸맞게 오싹오싹 춥다. 나는 이 어둠 속에서 이제 갈곳이 어딘지 몰라 허우적거린다. 나는 도무지 모든것에 아직도 자유스럽다는 것이 못마땅하다.
효진이가 전화를 했다. “망할년” 바빠서 오진 못한다며 아빠땜에 속상해서 일도 안되고 모든게 엉망이 되었다면서 앙칼진 목소리로 할 말만 하고 끊었다.
하루에 두세시간 식사, 청소, 빨래등을 돕는 도우미를 보낸단다. 그것도 그 분은 돈보다는 봉사의 차원에서 오시는 분이니 제발 이제 그만 현실을 직시하라는 사무적인 어투였다.
“망할년” 우리가 어떻게 저를 키웠는데. 외동딸이라고 해달라는것은 물론이고 더 해주지 못해 마음이 아팠건만, 어미가 살아있을 때는 뻔질나게 드나들이하며 김치, 밑반찬등은 대놓고 가져가고 옷을 줄여달라 늘여달라 제 방에 못 하나 박는 일에도 애비를 불러 가더니 에미 죽고나서 뜯어갈것이 없는걸 알았는지 일주일에 한번 들르는것도 귀찮아 하니 다 소용 없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부부가 다 C.P.A이면 얼마를 버는지 말 안해도 짐작할수 있는 수입일텐데 애비에게 두세시간 파트타임 도우미를 붙여준다고 말투가 그게 뭔가? 지년이 일주일에 한번만이라도 매번 와서 애비 식성에 맞는 뜨거운 밥 한끼 해주면 난 그걸로 만족할것인데 이것도 지 에미가 있어야 따금하게 한마디 해 버릇을 고쳐주겠건만 평소에 에미하고만 이러쿵 저러쿵 수다를 떨었지 애비 하고는 뭐 대단한 대화 한번 없었던 터라 지금 와서 얘기를 해본들 말빨이나 서겠나 싶다. 하여간 난 지금 줄 떨어진 연같은 신세라는 생각이 들어 그저 화만 치밀 뿐이다.
에리카라는 여자가 왔다. 오십전인것 같기도 하고 깡마른 체구에 신경질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친해지고 싶지 않은 인상이다. 내 집에 허드랫 일이나 도우러온 사람인데 이렇게 생기면 어떻고 저렇게 생기면 뭐 하겠는가만은 그래도 사람 마음이란 참으로 간특한것 같다.
잠깐 들른 식당에서도 옆자리에 앉은 사람을 언뜻 봐도 공연히 얄미운 사람이 있고 또 눈곁에 스쳐가는 사람도 전에 알던 사람과 같이 눈에 익고 호의가 가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고 그런 마음이 잘생기고 못생긴 것과는 상관없는 일이고 보면 편견도 일종의 죄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자기소개를 끝낸 그녀가 소파옆에 무릎을 꿇더니 기도를 시작한다. 그것도 큰소리로 하는 양이 나 들으라면서 군기를 잡으려는지,…그 큰 소리에 질린 나는 내 설자리가 어색해 머쓱해 있는데 기도의 내용이 마음에 병이든 나를 치유해달라고 읊어댄다. 난 끝가지 듣지 못하고 소리내어 막아섰다.
“아주머니 여기 일하러 오신겁니까 아니면 병고치러 오신겁니까? 아프긴 누가 아프다는 겁니까? 이러지 마시고 일을 하시려거던 일이나 하세요.”
말을 마치고 방으로 몸을 피했다.
기도에는 크게 두가지가 있는것으로 안다. 목사님의 기도나 또는 어떤 사람이라도 모여 있는 사람들이 함께 듣고 같은 생각으로 임하고자 할때는 목소리를 높여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철저히 개인적이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도 “너회는 은밀한 중에 기도하라 기도할때 너회는 절대로 위선자 처럼 행동하지 말며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거리의 어귀에서 큰소리로 기도하지 말고 이방인들처럼 중언부언 하지 말라 다만 골방에 들어간 마음으로 마음에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너의 하나님을 만나라!”라고 말씀하셨는데 요즘 대부분의 교인들을 보면 암기나 의식에만 치우쳐 있을뿐 종교가 그들의 맨몸에 젖어들지 못한것 같아 아쉽다.
신앙의 가장 중요한 자세는 겸손이다. 먼저 남의 입장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결핍되고 겸손이 결여된 신앙은 독선과 광신으로 연결될 뿐이다.
부엌에서 오랜만에 요란한 도마소리에 이어 음식 냄새가 진동하더니 한참있다 방문에 노크 소리가 들린다. 문을열고 들어온 에리카 손엔 병원에서나 볼수있는 고무장갑이 끼워져 있었다.
“빨래거리는 어디다 두셨어요?”
옷장안에 구겨 놓았던 빨래를 꺼내 놓았다. 다시 나간 에리카가 빨래 바구니를 들고 들어와서 더러운것이 묻은 물건을 장갑낀 손으로도 만지기 싫은듯 빨래를 하나씩 집어넣는 모습이 불쾌하기 이를데 없었다. 처음엔 내 마음에 병이든 것처럼 기도를 해 내 비위를 건드리더니 이제는 빨래깜에까지 못된 병균이라도 묻은것처럼 저러니 참으로 마음에 안드는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세시간이 채 못되어 갈 채비를 하고 말을 꺼낸다. “빨래는 드라이기 안에 있으니 꺼내 챙기시고 식사 준비는 다 되었으니 찌개만 데워드세요. 청소는 내일부터 슬슬 할께요.”
반찬은 몇가지 안되도 맛은 괜찮은 편인데 생선찌개는 너무 매웠다. 땀이너무 많이나 페이퍼 타월로는 감당이 안되서 화장실에 있던 타월을 가져올 정도였다. 저녁때 효진이가 집에 있을 시간에 맞춰 전화를 해 내일부터 에리카가 올 필요가 없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저녁식사를 하고 마음을 바꾸었다.
어제보다는 풀어진 얼굴로 인사를 한다. 손에는 어제와 같은 수술용 장갑이 끼워져 있다.
“어떻게, 음식이 입에 맞으셨어요?”
“네, 좋은데 찌개가 너무 매웁디다.”
“좀 매콤해야 입맞도 도시고 정신이 번뜩 드셔서 기운을 차리실거 아니에요 그냥 해드리는 대로 드세요.”
“하여간 조금 덜 맵게 해줘요.”
“제가 알아서 할테니 그리 아세요. 전 남자가 음식갖고 짜다, 싱겁다, 까탈스럽게 구는것 딱 질색이거든요.” 말이 끝나자 횡하니 자리를 떴다.
“꼭 새서방 길들이는 식이구먼. 그렇게 막무가내로 할려면 물어보긴 왜 물어봐, 참 상전이 따로없군.” 그 사람같으면 오늘은 뭘 또 잡숫고 싶으슈 생선찌개? 국물 자박자박하게 해서 짭잘하게 할까?
그러면 나는 “고추장을 타 고추가루로 해” 난 그때 그 짧은 말이 고마운줄 몰랐었다.으례 모든 사람들이 그러고 사는 줄만 알았는데….
보고싶다. 보고싶다. 미치도록 보고싶구나!
오늘은 아래층을 치운다기에 위층으로 피해 올라갔다. 시간이 지나 간다기에 내려와보니 짧은 시간에 일은 야무지게 하는 모양이다. 모든것이 깨끗하게 바뀌었다.
“아저씨 집안 치우다 보니 곳곳에 아주머니 물건이 많이 보이던데 갖고 계셔봐야 생각만 나서 속상하실텐데 정리해서 없에는것이 어떻겠어요?원하시면 제가 도와드릴까요.”
“아니에요 딸과 제가 알아서 하지요.”
그러지 않아도 여러번 생각하였는데 동네에서 이사람 저사람 손에 들어가 나중에라도 우연히 보게되면 기분이 좋을것 같지 않아서 GOODWILL에 부탁을 해 멀리 보내려고 마음먹었던 차였다.
여러날이 지났다. 들어오는 에리카 팔에 걸린 낯익은 핸드백이 내 눈을 고정시켜 들숨에서 잠시 정지되어 멎었다. 날숨과 동시에 몸은 스프링처럼 튕겨져 방으로 들어와 옷장을 뒤졌다. 분명 있어야할 곳엔 물론 다른 곳에도 없다 .”분명하군!” 그 핸드백은 효진이의 꼬임에 못이겨 사들고 들어와 몇날을 비싼걸 공연히 샀다고 투정을 하면서도 아끼던 것인데,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히면서 몇일은 기다리려고 마음을 눙쳤다. 혹시라도 몇일간 빌려간 것인가 그렇다면 제자리에 돌려놓겠지 하는 마음과 그래도 말은 했어야지 하는 분노가 뒤엉켰다.
에리카가 일을 마치고 돌아간후 온 집안을 이 잡듯 뒤지고 또 뒤졌다. 더 없어진것이 없나 하고, 아니나 다를까 그 사람이 애지중지 아끼던 물건 네개가 없어졌다. 샌프란시스코에 나가면 피셔맨스 워프에 있는 자그만 소품 가게에서 유리로 만든 마스코트를 사 모아놓고 그렇게 좋아 했었는데….
앙증맞은 피아노, 신데렐라, 야구보이, 천사들이 없어졌다. 이것은 물건의 값이 문제가 아니다. 그 장갑 속 더러운 손으로 훔처가 장갑을 벗고 그것들을 제것이 되었다고 좋아 어루만지겠지, 그리곤 그손으로 성경책 책장을 넘기겠지. 나뿐사람. 다음날이 빨리 오길 기다렸다.
“아주머니, 그 핸드백 우리 그 사람것 맞지요?”
“네, 버리실것 제가 먼저 하나 챙겼는데요 안됩니까?”
“버려도 내가, 누굴 줘도 내가 할것인데, 물어보셨어야지요. 그리고 저기 찬장에 있던 조그만 유리 피아노랑 다른것도 안보이던데 그것도 가져 가셨나요?”
“피아노는 무슨…. 그 장난감들은 몰라요!”
“그건 장난감이 아니고 나에게는 매우 중요한 물건들입니다. 일은 이제 안하셔도 되고요 가져가신 물건들은 모두 돌려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그냥 가라고요?”
“네!”
다시 옛 생활로 돌아왔다. 라면 끓이고 아침엔 해장술이고 점심엔 할일도 없고해서 저녁엔 외로우니까 밤엔 잠이 안와서 술을 마신다. 술은 명약이다. 술을 만들수 있는 지혜를 주신 신께 감사하고 산다. 그래도 기운이 생기는 날에는 밥을 해서 날계란 넣고 간장에 비벼 먹던지 아니면 물말아 멸치를 고추장에 찍어 먹던지 굶고 살지는 않는다. 그저 무슨 음식을 먹고 싶다던지 오늘 저녁은 무슨 음식을 먹겠군 하는 기대등은 음식에 대한 즐거움이 무뎌저서인지 아님 체념을 한것인지 참을만 해졌다.
술을 마시고 드러누으면 천장도 하얗고 벽도 하얗고 내 마음도 하얗다. 나는 나도 모르는 아픔을 안고 산다. 오늘이 어제같고 어제가 오늘같다. 나는 왜 이러고 사는가 앞으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변하고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은 늘 한다. 그런데 자신이 없으니 무엇이 얼마나 달라지길 바라는가?
생각은 멀쩡하다. 우선 술은 절제하고 몸에 좋은 음식을 골라먹고 운동도 해서 기운을 차려야한다. 그다음엔 무엇을 해야하나….혼자서, 혼자서 말이다.
그나저나 무엇을 위한 변화인가 궁극적 목적은 보다 행복한 삶이 되기 위한것이 아닌가, 행복은 내 안에 저 깊은 곳에 있어야 한다. 마음은 다 비어 있는데 행복을 그안에 어떻게 채울수 있단 말인가. 어떤 좋은것도 마음속에 들어가 앉을 공간이 없다. 나는 여태껏 둘이서 하는것만 생각해봤고 그렇게 해왔다.
여행, 등산, 관광, 쇼핑, 외식 모두다 둘이서였다. 그런데 이젠 나 혼자로 바꾸어야한다. 해보나마나 재미가 있을리 없다. 나는 벌써 몇달 동안을 해보지 않았는가. 코메디언의 어릿광대짓에 혼자 웃어봤자 맛도 없다. 이제는 숨쉬는 일도 혼자선 재미가 없다. 그냥 잠을 자다 호흡이 멈춰져 그 사람 곁으로 떠났으면 좋겠다. 아침에 눈을 뜨면 화부터 먼저 난다. 그 다음은 짜증스럽다. 어제와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게 싫어 짜증이난다.
사람이 목표가있어 그것 향한 노력이 힘들고 험한일 일지라도 달성했을때의 기쁨을 미리 조금을 음미하면서 산다는것은 축복과 영광이다. 모험없이 커다란 진취를 바라는것은 요행을 바라는것과 같다. 그러나 그 모험도 목표가 있어야 모든것을 털어버리고 멀리 높은것을 향하여 비상할것 아닌가? 잃어버린 내 목표를 찾자. 목표. 그것이 지금의 나의 난제이다.
오늘은 하는수 없어 효진이를 불렀다. 자고 일어나서인지 아파서 깼는지 아랫배가 몹시 아프다. 화장실에 가 변을 보고나면 괜찮을것 같은데 그것도 아니다. 너무 아파 데굴데굴 구르고 싶을 정도이다. 병원에 도착하기전에 별의 별 생각을 다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렇게 끝나는 것일까?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오장육부가 다 녹아내린것인가? 혹시 위암인가? 죽어도 죽기전 이런 고통은 너무 괴롭다. 이렇게 심한 고통은 내 생전에 처음이다. 하나님이 노하신것인가….만약 위암이나 죽을 병이라면 약이나 치료를 거부할것이다. 거부할 권리는 환자에게 있는 것이겠지. 그래도 진통제는 받아야지. 진땀이 바짝바짝 날 정도로 너무 아프다.
의사가 와 아픈배를 꾸욱 눌러보더니 X-RAY를 찍으란다. 위암이 맞는 모양이다. 급체나 간단한 위장병 같으면 약이나 주고 말텐데 간단한 병은 아닌듯싶다. 그저 담담한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렸다.
담석증이란다. 싱겁게 끝이났다. 치료는 약도 없고 그저 수박을 먹던지 물이나 맥주를 많이 마셔 소변에 담석이 섞여 나오면 다행이고 그렇지 않으면 수술을 해 빼내면 된다고 대수롭지 않게 처방을 내린다. 진통제 처방을 받고 나오는데 효진이의 성화로 다음날 피뽑고 변검사를 해 종합검진을 하기로 했다.
핑계낌에 맥주 몇박스를 샀다. 집으로 오는 도중 진통제도 안먹었는데 통증이 씻은듯이 없어졌다. 종합검사 결과는 엿장수가 고물받고 엿이나 강냉이를 줄때에 늘하는 험한 말과 다를바 없었다. 몸이 다 고장이나서 쓸수 있는것이라고는 별로 없단다. 고혈압에 고지혈, 콜레스트롤 수치도 높고 신장도 안좋고 위벽에 출혈이 있는것같고, 간기능도 떨어졌단다. 생각 했던대로다. 오장육부가 다 녹아내린 것이다. 그 사람이 곁에 있었다면 얼마나 펄펄 뛰었을까? 아니다. 그사람이 옆에 있었다면 이렇게 될리가 없겠지.
몇일동안 담석증 통증은 왔다갔다하더니 소변으로 아주 나갔는지 분해되어 가루가 되 없어졌는지 은둔생활로 자리를 틀은것이지 다행이 더이상 속을 안 썩인다.
생활에 변화가 다시 왔다. 어디서 데려왔는지 효진이가 허름한 옷차림에 화장기 없는 얼굴이 형이 있었다면 형수라고 할 법한 여인을 데리고 왔다.
효진이가 내 식성에 대해서 말을 꺼내더니 나 들으라는 소리로 술은 너무 많이 못드시게 하시고 집안 일이나 운동좀 하시게 잔소리좀 하라는 것이다. 마치 무슨 특권이라도 부여하는 위엄한 자리 같았다. 그리고 “아빠 아주머니는 이층 옛날 내 방을 쓰실거니까 그렇게 아세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밖으로 나가 차에서 트렁크 하나를 끌고 들어와 놓고 가버렸다. 모든게 군대에서 직무 인계인수 하는 식으로 일사분란하게 끝이났다.
사람이 외양으로 봐서는 막 굴러 먹은것 같지는않고 살집도 약간 있는게 지와 덕도 엿보이나 얼굴에 빛을 잃은걸 보면 어떤 사연이 분명 있어 보인다.
늙어 기운없는 몸 하나 의지할데 없어 병든 늙은이 수발 든다는 핑계로 얹혀 살려는 마음까지 먹은걸 보면 사정이 딱한것만은 틀림없는 것인데, 자식이 없는것일까? 자식이 있어도 뭐가 안맞아 함께 살수 없는 것일까? 영감은 없으니까 혼자 나왔을테지 있으면야 아무리 병든 늙은이라도 남자는 남자인데 더군다나 혼자 있는 집엘 들어와 살 생각을 할수 있겠는가? 아픈데를 찌르는것 같아 물어보지는 않으리라 마음을 먹었다. 이 여인도 집안에서 공경받고 손주들 재롱이나 볼 나이인데, 남에 일이라도 안 됐다는 생각도 들고…..그나저나 두 지지리 궁상들이 한 집에 있게 되었으니 폐차장이라는 단어가 뇌리를 스쳤다.
저녁은 겸상을 했다. 오랜만에 맞는 밥상이 무척이나 보기가 좋았는데 첫 수저를 떠 넣은 찌개가 비위를 건드려 울컥하면서 몸을 비틀어 놓았다. 맛이 이상한것은 아니다. 몇달만에 접하는 설은 맛 때문도 아닐텐데 왜 이럴까?
정성들여 만든사람 민망하게 해 미안한 마음에 수저를 다시 움직이기가 두려웠다. 어색해진 분위기로 머뭇거릴 시간도 없었다. 빈그릇을 가져다 밥에 물을 말아 밑반찬으로 속을 달랬다.
“반찬이 입에 안 맞으시나 봐요”
“아니에요 미안합니다. 술에찌들어 간이 뒤집혔나 봅니다.”
초상집 같은 분위기의 밥상이 치워졌다. 저녁 텔레비젼 앞에서 여인은 입을 열었다. “잡수시고 싶은 음식이나 싫으신 양념이라던지 말씀하고 싶으신것 있으시면 하세요.”
“아닙니다. 의사말이 망가진데가 많다던데 갈때가 다 된사람이 입맞 타령은 해서 뭘 하겠읍니까.”
“왜 그런 말씀을…. 지금이라도 술을 조금 줄이시고 방황하지 마시고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만 하시면 좋아지실텐데, 제가 들은 예전의 정 선생님으로 돌아가십시요.”
“예전으로요? 갑자기 잘 살던 사람 데려가서 멀쩡한 사람 알콜 중독자 폐인으로 망가트려 놓고 어떻게 예전으로 돌아가란 말입니까?”
“정선생님 사람은 태어나면 다 죽습니다. 일찍 죽고 나중에 죽는 차이는 있어도 다 죽습니다. 사람도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동물일 따름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신이 주신 영원한 세계가 있지 않습니까? 축복이지요 사모님은 조금 일찍 천당으로 가셨다고 믿으시면 좋지 않겠습니까?”
“만약 천국이 없다면 무엇으로 이 이별을 감당할수 있겠읍니까? 그러나 천국이 있기에 우린 다시 만난다는 희망을 갖고 성난 마음을 다스리며 다시 예수님을 섬기는것입니다.”
“개똥 밭에서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도 있는데 왜 그리 빨리 데리고 갑니까?”
“글쎄요….. 하나님의 깊은 뜻을 어찌 다 알겠읍니까만은 그래도 신은 매우 보편적이십니다. 틀림없는건 신을 믿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든든해집니다.”
“또한 그보편적인 것에는 매우 강인하고 편법없이 직설적이십니다. 우리는 얼마나 오랜 세월을 살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수도 없고 선택할수 없지만 희망, 행복, 사랑, 가족관계, 친구관계, 취미등 실제의 우리 삶을 아름답고 보람있게 할수있는 일들을 추구해 가는 선택은 할수 있습니다. 자신이 선택하고 노력하여 얻는것만이 자신의 것이 되는것입니다. 선택하지도 않고 노력하지도 않고 현재 자신의 처지를 불평하며 심지어 이 모든것을 하나님이 만들어놓은 운명으로 돌린다면 그것보다 한심한 일이 어디 있겠읍니까? 어떻한 경우에도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는 없는것입니다.”
“우선 교회를 나가십시요. 그리고 진심으로 예수님을 영접하십시요. 예수는 천당이나 내가 원하는 대가를 바라고 또는 어떤 기적이나 결과를 보고 믿는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서 실수를 반성하고 사죄함으로서 마음의 치유를 이루어 내면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얻게되어 삶이 즐겁게 되고 그것이 천당으로 갈 자격을 얻게 되는것이겠지요.”
“천당 천당 하시는데 갔다온 사람도 못봤고 가있는 사람 말도 들을수가 없으니 난 더이상 안 믿기로 했습니다..’
“천당이라는 곳을 어렵게 생각하지 마십시요. 몸 건강하게 되시고 마음 편해지시고 부러울것 없이 삶이 즐거우시고 잠자리에서나 깨어나셔서 마음에 불안함이 없으시면 난 지금 천당 문턱에 와있구나 하고 생각하시면 틀림없습니다.”
그동안 사람을 만나는것도 귀찮았고 특히 교인을 만나면 하나같이 주제넘고 억지에 가까운 설교를 늘어놓아 알수없는 분노까지 솟구쳐서 이제는 만나는 그 자체만으로도 알러지가 솟는 느낌이다. 그런데 이 여인은 조금 다른데가 있다 강력하게 밀어낼수 없게 말을 전개하고 듣고 나서도 그말을 다시 음미하게 만드는 재주를 가졌다.
다음날부터 식단이 달라졌다 시원한 콩나물국이나 무국같이 양념을 진하지 않게 해서 물 말아 먹는것같이 부담이 없고 밑반찬도 두 세가지로 간결했다.
식사량이 조금씩 늘어갔다. 술은한잔 따라 놓기가 무섭게 병을 치우는 바람에 매끼 한잔으로 배급을 받는것 같아졌다. 그녀의 일과는 아침 식사후 외출하여 저녁에 돌아와 식사를 함께하고 저녁엔 텔레비젼을 보며 심심치 않을 정도로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헌데 두사람의 대화엔 이상하리만치 종교에 대한 이야기는 안한다. 나야 좋아하지 않아서이지만 나를 배려하는 수지여사의 마음에서일까 하는 생각을했다.
이야기 끝에 낮에는 뭘 하시길래 매일 나가십니까. 물어보니.
“네, 낮에는 병원에서 자원봉사 일을 좀 합니다.”
“좋은 일하시네요.”
“죄 지은게 많아서 사죄하는 마음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여간 바쁘셔서 좋으시겠습니다. 부럽네요.”
“정 선생님도 바빠지셨으면 좋겠는데 생활좀 바꿔보세요.”
“네, 그래야지요.”
몇달 동안을 혼자지내 쓸데없는 생각으로 머리속이 꽉 채워져 현실과 미래는 안중에 없고 오직 과거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살았는데 사람의 훈기를 받아서인지 앞을 조금 내다 보는 여유가 생긴것 같다. 일요일에는 오늘 교회에 가시겠냐고 물었을때. 아니라고 대답하면 더는 묻지 않는다. 사실 수지여사가 집에 들어와서 산다는 말을 듣고 걱정했던것은 짜증스러운 설교와 일요일엔 교회를 가자고 보체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편하게 대해 주어서 너무 고맙다는 생각을 했다.
“정 선생님 저 이것좀 도와주세요. 새로산 새우젖 병을 내 힘으로는 못 열겠네요.”
“그래요? 어디 봅시다. 아니 이게 왜 이렇게 안 열려.?
한참이나 애를 쓰다가 다행이 열었다. 하마터면 망신을 당할 뻔 했구나 하는 생각에 진땀이 났다. 예전엔 집사람이 이런걸 열어 달라면 한번에 열어주면서 이 조그만 일에도 애들마냥 우쭐하는 재미를 느꼈는데 어쩌다 이렇게 망가졌는지 서글픔과 자존심이 가슴에서 쾅 소리를 내며 내려 앉는다.
“안되겠군”
외마디로 운동을 하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잘먹어서 몸무게도 늘었고 틈틈이 차고에 나가 아령을 해 기운을 차리게 되니 자연스레 술도 저녁때 한번으로 줄었다. 거울을 봐도 몇달전 산 송장 같았을 때와는 확연하게 달라 보였다.
저녁에 돌아온 수지는 저녁을 하기전에 내 눈치를 살피며 내 의중을 묻는다.
“오늘 저녁 동네 교인집에서 구역예배가 있는데 가시겠어요.?”
“미안합니다. 교회를 다닐때도 구역예배는 제일 마음에 안들어놔서…제 저녁 걱정은 마시고 다녀 오세요.”
“왜 싫어하시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글쎄요, 몇번 가보았는데 기도하시는 분들 보면 하시는 사업 잘되게 해달라, 부자되게 해 주십사, 아니면 아드님 시험 잘 봐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게 해주십사, 아픈분 낫게 해달라던지 전부 내면이나 영적인 바램이 아니고 물질적인것이나 외적인 문제로 도움을 청하는것이어서 언듯 듣기에 무당이나 그와 유사한 점술가들이 그들의 신에게 주문을 외는 즉 샤머니즘의 행태와 다를게 없는 행사장 같더군요. 적어도 우리는 그들과 다른 우리의 하나님이 들어 주실수있는 영적인 은혜와 내면의 치유를 기원하는 자세가 되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어떤 코메디언이 한 말처럼 “이게 뭡니까?”하고 묻고싶은 충동을 여러번 경험했습니다. 맥아더 장군의 기도문을 읽어 본적이 있는데 정말 평범하면서도 진솔하고 간절하고 얼마나 좋읍니까? 저는 교인들의 의식구조가 바뀌어져야 한다고 각합니다.”
“아 그러셨구나. 정 선생님 교회는 설렁설렁 다니셨다고 들었는데 믿음 수준은 굉장히 성숙된 편이시네요 말하자면 교인으로서의 자세는 되있는 분이란 말입니다. 사실은 저도 그런걸 많이 느낌니다. 그게우리나라 교회의 역사가 짧고 조상 대대로 의지해온 샤머니즘의 뿌리는 아직도 살아있고 또한 한국이나 특히 우리 교포사회 교민들이 경제적인 안정이 되질 못해 아쉬운것이 많은 탓에 이것저것 바라는것이겠지요. 그저 덕담으로 생각하시면 마음이 조금 편해지실거에요.”
“구역예배란 성경공부를 통해 해이해진 신앙생활을 일깨워주고 교인들 간에 결속을 다짐하는 모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인사는 해야지요 부자되세요 자녀분 좋은 학교입학 환자분 쾌유하시길 등의 말들은 인사의 틀에서 끝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식사를 제대로 해 우선은 기운을 차리게 되었다. 무엇을 다시 하고 싶다는 의욕도 생겼다. 몸을 좀 더 정상 궤도에 올려 놓았으면 하는 마음에 아침마다 걷기운동을 시작했다. 수지 말로도 생기가 나 보인다고 한다. 그것 말고도 변한 것이 하나 더 생겼다. 저녁에 늘 하는 대화에서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내가 먼저 꺼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되었다. 집사람이 옆에 있었다면 업어주고 싶다는 말을 꺼내었을것이 분명하다.
새삼 종교에 흥미를 느껴서 그런것은 아니다. 또한 말꼬리를 붙잡고 깐죽거리고 싶어서도 아니다. 질문에 답을 듣는 사람이 항상 듣기 좋게 한다는데에 매력을 느끼고 이런 질문을 하면 어떤 해답이 나올까 하는 궁금함도 자아낸다.
“종교에 대해 많은 걸 아시는 것 같아 물어보고 싶은데 하나님의 침묵에 대해 어떻한 생각을 갖이고 계십니까? 예를 들자면 공중에 떠있는 비행기 내에서 흉악한 테러범이 비행기를 폭파한다고 협박할때 그 안에 타고있는 모든 승객들의 절박한 기도를 침묵으로 일관하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의 침묵을 뼈저리게 체험했던 분은 예수님이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하고 외치셨습니다. 예수님도 그러하실진데 하물며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오죽하겠읍니까? 사실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의 눈으로 분명하게 구별하기는 어렵습니다. 아무것도 행하시지 않는것처럼 생각되고 의심할때가 많지만 하나님은 만물이 침묵에 잠길때 가장 역동적으로 역사하신답니다. 그중에 인간들에게는 인내, 신뢰, 복종과 같은 교인으로서의 자질들을 갖출 수 있도록 응답을 늦추시기도 하고 고뇌와 절망적인 시련을 주시어 그것을 극복하고 영적인 성장과 또 그로인해 진리를 깨닫게 하십니다. 그러한 상처가 없다면 어디서 그상처를 치유할수있는 능력을 배울수 있겠습니까?
수천번의 기도보다는 영적인 성숙이 더 중요하다는걸 깨우처 주시는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 모든 인간들은 몽매하고 나약하여 위급할때, 아쉬울때 그분이 침묵하시는 것을 견디기 힘들어 괴로워하며 왜 나에겐 안 보이시냐고 불평하고 열심히 믿어도 재난이나 불운은 시도때도 없이 오는데 이럴바에야 하나님을 뭐하러 믿나, 남들은 계시나 응답도 잘 받는다던데 나한테는 한번도 체험 한번 겪게 안하시는걸 보면 나는 선택받지 못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이러한 생각으로 하나님과의 거리를 두게되면 거기서부터 인생의 실패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수지의 말을 다 듣고도 난 솔직히 마음에 와닿는게 없어 흡족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인이 가식없이 저렇게 자신있게 말할수 있다는것이 부럽고 분명 내가 모르는 무엇을 알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강해 그말에 어떠한 토도 달수가 없었다.
요즘들어 저녁 때면 수지에게 전화가 자주 걸려온다. 전화받는 소리가 소근소근 작은 소리인데 누구와 다투는 듯도하고 꽤나 짜증스럽게 끊는 모습이고 그 뒤에도 오랜동안 생각에 잠겨 있는것도 같았다. 무슨 문제일까? 혹시 이 여자가 누구에게 빚 독촉을 받는것일까? 아니면 남편과 불화 있어서 뛰처 나온것일까? 이생각 저생각 다 해봐도 다른 생각은 들지 않는데 하여간 무슨일이 있어 그냥 이대로 떠난다면 나에게는 아쉬운 정도가 아니고 “나는 어떻게 하라고” 밖에 말할수 없는 절박한 심정이다.
요즈음은 아침에 눈을 떠 해 뜨는걸 보며 내 들숨과 날숨 속에서 늘 함께 할수있는 사람의 존재를 감사하는 마음과 풍요로은 여정의 꿈을 만끽하는 기분을 가져도 되는가 조심스러웠었다.
그동안 너무 고맙고 편해 집사람이 내게로 보내준 우렁각시인가 하고 고맙게 여겼는데…..불안하다. 차라리 빚을 지고 있으면 얼마나 되는지 내가 갚아줘도 될터인데…. 물어볼까, 아님 그냥 기다릴까? 하여간 수지의 일에 촉각을 곤두 세우게 되었다. 다음에 어디서 전화가 오면 내 먼저 받으리라는 생각도 해놓았다.
잠시 방에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내가 일어날 틈도 없이 수지가 받았다. 대화는 한국말이 아니고 영어로 이어졌다. 들리는 말은 좋은 일을 한다는 칭찬과 자기는 오래전부터 한 곳에 도네이션을 하고있으며 더는 여유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아마도 자선단체의 전화인 모양이다.
헌데 영어 발음이나 문장구사가 대단하다. 생각지도 못한 실력에 뒤통수를 맞은것 같고 점점 이 여인의 정체라 할까, 어떤 사연으로 여기에 와서 묻혀 사는지 궁금증에 빠져들게 한다. 마침 효진이가 집에 들러 물어 볼수가 있었다.
아마 L.A에 사는 아들에게서 온 전화 일거라는 것이며 교회 근처 친구집에 방 하나를 빌려 지내던 여인인데 효진이와 목사님의 부탁을 받고 봉사 차원에서 돈도 안 받고 여기 와 있다는 것이다. 그 외에는 아는게 없지만 많이 배운분임에는 틀림없고 이상할 건 아무것도 없다한다.
그래도 앉았다 섰다 하루 아침에 떠난다는 말을 꺼내지나 않을까 덜컥 내려 는 마음에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요즘 전화가 자주 오던데 무슨 안좋은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안 좋은 일이라니요 그런건 없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수일내로 말씀 드리려 했는데 이젠 정 선생님 몸도 많이 좋아지신것 같아서 전 이만 떠날까 하고 생각중이었습니다.”
“떠나시다니요? 어딜 꼭 가셔야 할일이 있으십니까?
“떠나지 않으면…. 제가 여기오래 있어야할 이유라도 있나요?
“아….네에….”
한참 뜸을 들이다 누구에게 구원을 청하는것이 결코 수치가 될수 없다고 생각해 무슨 말이라도 하여야겠다는 마음이 앞었다.
“저는 수지여사께서 저와 오래오래 이렇게 친구처럼 지내셨으면 하는 엉뚱한 생각을 했습니다.”
“정 선생님 농담도 하실줄 아시네요. 그런 말씀을 하시니 이젠 더 오래 있지도 못하게 만드시네. 저는 살아온 삶에 대한 자책의 돌파구로 봉사를 택해 이곳저곳 떠돌며 지내면서 나 자신을 위로하는 것을 낙으로 삼았는데 그것도 이제는 지쳐 한곳에 정착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헌데오래전에 내동댕이쳤던 아들이 그래도 애미라고 불러들이려 하네요.”
“왜 아드님과 사이가 안 좋으셨읍니까?
“아, 그게아니고 애들 어렸을때 남편과 이혼하고 갈라서면서 애들을 버리고 재가를 했어요. 그러니 제가 어떻게 지금 오란다고 들어갈수가 있겠어요?”
“아 그러셨구나.”
“하여간 하나님이 저에게 새로 기회를 주셨다는 말을 할수있는 영광을 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지금 바다처럼 늘 거기에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다시 하얀 벽만 보고 살아야 한다는걸 생각만 하여도 끔찍합니다. 정말 가혹하다는 마음이 드시면 다시 한번 생각 해주십시요.
“글세요 우리가 조금 일찍 만났더라면 한쪽이 모르는것이 있으면 가르쳐주고 잘못된것이 있으면 바르게 고쳐주고 마음에 안드는것이 있으면 서로가 조금씩 양보하면서 그렇게 지내다 보면 세월이 흘러 차츰 서로 닮아 가는것이 인생인데 이제 우리는 서로 다른 세월로 늙어 서로 다르게 찌그러든걸 어떻게 펴가면서 맞춰 살수 있겠어요?”
“말씀 알겠는데 이제 이 나이에 무슨 고집이 남아 집안에 불화를 만들겠읍니까? 그것도 다 젊었을때 이야기이지요. 아무도 우리에게 삶에 미래를 약속할수는 없겠지요. 우리에게 주어진 이 덧없는 짧은 시간들 속에서 인연과의 여정은 한낫 덧없는 짓이라 하겠지만 이번에 집사람을 잃고나서 절실하게 느낀것은 인생이란 파도가 밀려와 부서지고 부서져서 시간이 지나면 맺었던 인연들도 기억에서 지워지고 다시 새로운 인연에 매달려 있게되는 거역할수 없는 숙명이더군요. 인연은 여행에 잠시 함께한 길동무란 생각을 집사람 잃고 수지여사를 만나고 나서 비로소 터득하게 된 것 같습니다. 하여간 제 마음도 하루 이틀에 정한게 아니니 수지여사도 몇일만 생각해주십시요. 좋은 쪽으로…..”
다음날 여인은 올 때 들고온 트렁크를 가지고 몇일 여행을 다녀오겠다며 떠났다. 여인이 떠난 집안은 너무 공허했고 나는 몸무게의 반을 하루만에 잃어버린양 걸음걸이도 허깨비모양 휘청거렸다. 내가말을 잘못했던 것일까? 아님내가 마음에 안드는 것일까? 하기야 나같은 사람에게 무슨 매력을 느꼈겠는가, 가진 재산이나 많아 돈이나 펑펑쓰는 호강할 조건이라면 몰라도...
아무리 생각해봐도 물 건너 간것같다. 마음을 다잡을 수가 없다. 무엇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얼이 빠져 지냈다.
전화가 왔다. 수지다. 내일저녁 식당에서 만나자는 말만하고 끊었다. 그래도 미안하다는 말을 전화로 안하고 만나자는걸 보면 인정은 있는 여자다.
혹 좋은 소식일까? 생각을 너무 많이해 머리속이 꽉차서인지 교통체증에 멈추어진 차처럼 움직이질 않는다.
잠이 안와 날 밤을 새울 줄 알았는데 새벽녁에 잠들어 집사람을 만났다. 좋은옷 입고 나가 무조건 숙이고 들이대 붙잡으라는 코치를 받았다.
한 열흘만에 보는 수지의 얼굴이 밝아보여 내 마음이 열렸다.
“정 선생님, 아직도 같은 생각을 하고 계십니까?”
“아 그럼은요.”
“그러시다면 우리 그저 친구로 함께 살아요. 헌데조건이 하나 있어요. 우리가 서로를 잘 모르니 종이 한 장에 상대방에게 원하는것을 적어 교환해 그 정도의 약속은 지키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바라는 조건중 일번은 무엇입니까?
“교회는 꼭 나가셔야 합니다. 그리고…. 종이 앞 뒷장에 깨알만한 글씨로 꽉차게 적을께요.”
“네! 그렇게 하세요.”
천군만마를 얻은 듯한 날이었다. 잠이 안왔다. 무엇을 바란다고 쓸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바랄게 없다. 벌떡 일어나 종이위에 커다랗게 두 자를 썼다.
同行 (동행 ).
<끝>
입상 소감-이장원
은퇴를 하고 소일 삼아 시작한 글쓰기가 큰 행운을 안겨줘 뭐라고 형언할수 없이 기쁩니다. 컴퓨터에 눈을 뜨게 해준 며느리와 늘 옆에서 응원을 해준 집사람에게 고맙고 부족한 글에 후한 점수를 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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